"집필자 : 한승훈"
검색결과 총 18건
오희영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한국광복군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9년 2월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여 중국인들에게 일본의 침략상을 알렸다. 이후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제3지대 간부로 푸양에서 초모활동을 비롯한 각종 공작 활동을 수행하였다. 1944년 11월에는 신송식과 함께 푸양의 한국광복군훈련반에서 군사 교육을 받은 졸업생 50여 명을 광복군 총사령부가 있는 충칭으로 인솔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오희영 (吳姬英)
오희영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한국광복군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9년 2월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여 중국인들에게 일본의 침략상을 알렸다. 이후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제3지대 간부로 푸양에서 초모활동을 비롯한 각종 공작 활동을 수행하였다. 1944년 11월에는 신송식과 함께 푸양의 한국광복군훈련반에서 군사 교육을 받은 졸업생 50여 명을 광복군 총사령부가 있는 충칭으로 인솔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오희옥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한국광복군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9년 2월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여 연극, 노래, 무용 공연 등을 통해 중국인들에게 한중연대의 필요성을 알리고,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았다. 그 외, 한국광복군 대원으로 참여하는 한편, 한국독립당 당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오희옥 (吳姬玉)
오희옥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한국광복군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9년 2월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여 연극, 노래, 무용 공연 등을 통해 중국인들에게 한중연대의 필요성을 알리고,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았다. 그 외, 한국광복군 대원으로 참여하는 한편, 한국독립당 당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유순희는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44년 중국 허난성 루이현에서 한국광복군의 지하공작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45년 2월 이후 한국광복군 제3지대 제1구대 본부에서 구호대원으로 활동하였다. 해방 이후 한국광복군 서주 지구 특파단원으로 임명되어 중국인들로부터 한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유순희 (劉順姬)
유순희는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44년 중국 허난성 루이현에서 한국광복군의 지하공작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45년 2월 이후 한국광복군 제3지대 제1구대 본부에서 구호대원으로 활동하였다. 해방 이후 한국광복군 서주 지구 특파단원으로 임명되어 중국인들로부터 한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이국영은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한국혁명여성동맹에 참여하고,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9년 2월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으고, 한중합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활동을 하였다. 1940년 한국혁명여성동맹이 창립되자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43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설치한 생계부의 생계위원을 맡았다. 1944년에는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당원으로 활동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이국영 (李國英)
이국영은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한국혁명여성동맹에 참여하고,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9년 2월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으고, 한중합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활동을 하였다. 1940년 한국혁명여성동맹이 창립되자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43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설치한 생계부의 생계위원을 맡았다. 1944년에는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당원으로 활동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이순승은 일제강점기 한국혁명여성동맹, 한국독립당, 한인애국부인회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남편은 임시의정원 의원,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부관 등을 역임한 조시원이다. 1940년 6월 한국혁명여성동맹에 참여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을 지원하였다. 한국독립당 창립위원, 한국독립당 충칭 강북구당 집행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43년 1월에는 한인애국부인회 재건에 참여하여 교육 및 각종 독립운동 관련 활동을 수행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이순승 (李順承)
이순승은 일제강점기 한국혁명여성동맹, 한국독립당, 한인애국부인회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남편은 임시의정원 의원,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부관 등을 역임한 조시원이다. 1940년 6월 한국혁명여성동맹에 참여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을 지원하였다. 한국독립당 창립위원, 한국독립당 충칭 강북구당 집행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43년 1월에는 한인애국부인회 재건에 참여하여 교육 및 각종 독립운동 관련 활동을 수행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이월봉은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항일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어린 시절 중국으로 건너가 백화점 점원 등으로 근무하다가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들어갔다. 1941년에는 중국전시간부훈련단 제4단 내에 있었던 한국청년특별훈련반을 수료하였다. 이후 시안의 한국광복군 제2지대 제1구대에 편제되어 활동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이월봉 (李月峰)
이월봉은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항일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어린 시절 중국으로 건너가 백화점 점원 등으로 근무하다가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들어갔다. 1941년에는 중국전시간부훈련단 제4단 내에 있었던 한국청년특별훈련반을 수료하였다. 이후 시안의 한국광복군 제2지대 제1구대에 편제되어 활동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임소녀는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입대하여 항일 투쟁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전라남도 나주 출신이며, 남편은 함께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한 박성화이다. 1940년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였고, 1945년 5월 당시 한국광복군 제2지대 제2구대 2분대원으로 편제되어 활동하였다. 남성 대원과 동일하게 교육 훈련을 받았으며, 초모활동, 선전 활동, 첩보 훈련에 참여하였다. 여기에 여성 대원으로서 세탁, 재봉, 구호대 활동 등을 추가로 수행하는 고된 일과를 보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임소녀 (林小女)
임소녀는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입대하여 항일 투쟁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전라남도 나주 출신이며, 남편은 함께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한 박성화이다. 1940년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였고, 1945년 5월 당시 한국광복군 제2지대 제2구대 2분대원으로 편제되어 활동하였다. 남성 대원과 동일하게 교육 훈련을 받았으며, 초모활동, 선전 활동, 첩보 훈련에 참여하였다. 여기에 여성 대원으로서 세탁, 재봉, 구호대 활동 등을 추가로 수행하는 고된 일과를 보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장경숙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입대하여 항일 투쟁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평안남도 대동군 출신이며, 남편은 같은 고향 출신의 김영준이다. 결혼 후 남편과 함께 상하이에 거주하다가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제2지대 제2구대 1분대원으로 편제되어 활동하였다. 남성 대원과 함께 교육 훈련을 받고, 초모활동, 선전 활동, 정보 수집 등을 수행하였으며, 여성 대원으로서 세탁, 재봉, 구호대 활동 등의 일과를 추가로 수행하였다. 1946년 귀국한 것으로 추정되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장경숙 (張京淑)
장경숙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입대하여 항일 투쟁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평안남도 대동군 출신이며, 남편은 같은 고향 출신의 김영준이다. 결혼 후 남편과 함께 상하이에 거주하다가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제2지대 제2구대 1분대원으로 편제되어 활동하였다. 남성 대원과 함께 교육 훈련을 받고, 초모활동, 선전 활동, 정보 수집 등을 수행하였으며, 여성 대원으로서 세탁, 재봉, 구호대 활동 등의 일과를 추가로 수행하였다. 1946년 귀국한 것으로 추정되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방치성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일 충청남도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의 아우내 장터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아우내 시장에 모여 시위를 전개하였고, 면사무소를 파괴하는 데 참여하다가 일본 군경의 총격을 받아 다음날인 4월 2일 순국하였다.
방치성 (方致成)
방치성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일 충청남도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의 아우내 장터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아우내 시장에 모여 시위를 전개하였고, 면사무소를 파괴하는 데 참여하다가 일본 군경의 총격을 받아 다음날인 4월 2일 순국하였다.
배방우는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안동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1~22일 경상북도 안동군 임동면의 편항시장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고 면사무소를 공격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었다.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1920년 5월 16일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배방우 (裵方于)
배방우는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안동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1~22일 경상북도 안동군 임동면의 편항시장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고 면사무소를 공격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었다.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1920년 5월 16일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배영환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거창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2일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장기리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에 참여하여 체포된 인사들을 구출하고 거창읍으로 행진하다 일본 군경의 발포로 총상을 입고 3월 27일 순국하였다.
배영환 (裵永煥)
배영환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거창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2일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장기리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에 참여하여 체포된 인사들을 구출하고 거창읍으로 행진하다 일본 군경의 발포로 총상을 입고 3월 27일 순국하였다.
백남식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가납리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가납리 3 · 1운동을 주도하였다. 3 · 1운동 소식을 듣고 이용화, 김진성과 함께 광적면의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준비하였다. 3월 28일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선두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일제 군경의 총격을 받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백남식 (白南式)
백남식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가납리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가납리 3 · 1운동을 주도하였다. 3 · 1운동 소식을 듣고 이용화, 김진성과 함께 광적면의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준비하였다. 3월 28일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선두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일제 군경의 총격을 받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변갑섭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북면 · 진동면 연합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3일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북면 · 진동면에서 일어난 삼진 연합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진전면 양촌리 냇가에 모여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일본 헌병의 저지에 맞서 선두에서 시위대를 이끌다가 일본 헌병의 총칼을 맞고 4월 4일 순국하였다.
변갑섭 (卞甲燮)
변갑섭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북면 · 진동면 연합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3일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북면 · 진동면에서 일어난 삼진 연합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진전면 양촌리 냇가에 모여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일본 헌병의 저지에 맞서 선두에서 시위대를 이끌다가 일본 헌병의 총칼을 맞고 4월 4일 순국하였다.
변상복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북면 · 진동면 연합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3일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북면 · 진동면에서 일어난 삼진 연합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진전면 양촌리 냇가에 모여 만세시위를 전개하였고, 일본 헌병의 저지에 맞서 격렬한 시위를 벌이다 일본 헌병의 발포로 총상을 입고 4월 4일 순국하였다.
변상복 (卞相福)
변상복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북면 · 진동면 연합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3일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북면 · 진동면에서 일어난 삼진 연합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진전면 양촌리 냇가에 모여 만세시위를 전개하였고, 일본 헌병의 저지에 맞서 격렬한 시위를 벌이다 일본 헌병의 발포로 총상을 입고 4월 4일 순국하였다.
서병순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일 충청남도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아우내 시장에 모인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일본 군경의 발포로 총상을 입었고 1920년 8월 11일 순국하였다.
서병순 (徐秉舜)
서병순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일 충청남도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아우내 시장에 모인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일본 군경의 발포로 총상을 입었고 1920년 8월 11일 순국하였다.
서한종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읍에서 일어난 3 · 1 만세시위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9일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읍 함안시장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는 함안읍에 모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함안경찰서와 주재소로 행진하였고, 함안군청 · 등기소 · 우편국 등을 습격하였으며, 일본 수비대의 무력 진압에 극력 저항하였다. 시위 참여 인사 색출 과정에서 체포되어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순국하였다.
서한종 (徐漢鍾)
서한종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읍에서 일어난 3 · 1 만세시위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9일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읍 함안시장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는 함안읍에 모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함안경찰서와 주재소로 행진하였고, 함안군청 · 등기소 · 우편국 등을 습격하였으며, 일본 수비대의 무력 진압에 극력 저항하였다. 시위 참여 인사 색출 과정에서 체포되어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순국하였다.
손계묵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사천군에서 일어난 3 · 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경상남도 사천군에서 일어난 3 · 1운동에 참여하였다. 사천공립보통학교 만세시위를 주도한 학생들의 고문 소식을 듣고 격분하여, 4월 14일 사천 중서포 도로공사 인부들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일본 헌병의 가혹한 고문으로 그해 5월 부산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손계묵 (孫桂默)
손계묵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사천군에서 일어난 3 · 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경상남도 사천군에서 일어난 3 · 1운동에 참여하였다. 사천공립보통학교 만세시위를 주도한 학생들의 고문 소식을 듣고 격분하여, 4월 14일 사천 중서포 도로공사 인부들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일본 헌병의 가혹한 고문으로 그해 5월 부산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손두원은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안동 3 · 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1~22일 경상북도 안동 길안면 천지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고, 길안면사무소와 주재소에서 투석전을 전개하였다. 3월 24일 시위에 참여하였다는 명목으로 체포하려고 하자, 극력 저항하다가 일본 경찰의 발포로 총상을 입고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손두원 (孫斗源)
손두원은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안동 3 · 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1~22일 경상북도 안동 길안면 천지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고, 길안면사무소와 주재소에서 투석전을 전개하였다. 3월 24일 시위에 참여하였다는 명목으로 체포하려고 하자, 극력 저항하다가 일본 경찰의 발포로 총상을 입고 현장에서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