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한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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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오유는 남북국시대 신라군의 지휘관으로 고연무가 이끄는 고구려 부흥군과 함께 오골성 전투를 지휘하여 나당전쟁을 전개한 인물이다. 그의 가계는 전하지 않으나 성씨는 설씨이며, 관등은 사찬(제8관등)을 지냈다. 설총, 설중업 등의 사례를 볼 때 6두품 신분의 인물로 여겨진다.
설오유 (薛烏儒)
설오유는 남북국시대 신라군의 지휘관으로 고연무가 이끄는 고구려 부흥군과 함께 오골성 전투를 지휘하여 나당전쟁을 전개한 인물이다. 그의 가계는 전하지 않으나 성씨는 설씨이며, 관등은 사찬(제8관등)을 지냈다. 설총, 설중업 등의 사례를 볼 때 6두품 신분의 인물로 여겨진다.
성각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선덕왕 대에 병든 노모에게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봉양한 효자이다. 명예와 벼슬을 멀리하며 스스로를 거사라고 칭하였다고 한다. 평민 신분이기보다는 형식상 관직 진출은 할 수 있었던 하급 두품 신분의 인물로 추정된다.
성각 (聖覺)
성각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선덕왕 대에 병든 노모에게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봉양한 효자이다. 명예와 벼슬을 멀리하며 스스로를 거사라고 칭하였다고 한다. 평민 신분이기보다는 형식상 관직 진출은 할 수 있었던 하급 두품 신분의 인물로 추정된다.
성주는 나말려초 시기 신라의 지방관 또는 호족을 지칭하는 말이다. 삼국통일 이후 신라의 지방제도는 9주 체제로 정비되고, 주-군-현-촌에 도독-태수-현령 또는 소수-촌주가 임명되어 지방통치가 이루어졌다. 이후 신라 말에 지방 통치력이 이완되면서 주(州)와 부(府)로 개편되어 지주제군사(知州諸軍事)와 성주(城主) 중심 체제로 전환되었는데, 이 무렵 지방에서 성장한 반독립적 세력도 성주를 자칭하면서 지방관과 호족을 포괄하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성주 (城主)
성주는 나말려초 시기 신라의 지방관 또는 호족을 지칭하는 말이다. 삼국통일 이후 신라의 지방제도는 9주 체제로 정비되고, 주-군-현-촌에 도독-태수-현령 또는 소수-촌주가 임명되어 지방통치가 이루어졌다. 이후 신라 말에 지방 통치력이 이완되면서 주(州)와 부(府)로 개편되어 지주제군사(知州諸軍事)와 성주(城主) 중심 체제로 전환되었는데, 이 무렵 지방에서 성장한 반독립적 세력도 성주를 자칭하면서 지방관과 호족을 포괄하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소율희는 남북국시대 나말여초 시기 김해 지역을 근거지로 하여 활동한 호족이다. 형 소충자와 함께 김해 지역에서 군림하던 김인광을 몰아내고 김해부지군부사가 되어 세력가로 등장하였다. 소율희·소충자 형제는 선승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여 김해 지역이 선종의 요람지로 명성을 떨치는 계기를 만들었다. 진경대사 심희, 낭공대사 행적, 진철대사 이엄, 진공대사 충담 등이 그에 해당한다. 하지만 친신라적 입장으로 인해 신라가 쇠퇴하자 함께 소멸되는 운명을 맞았다.
소율희 (蘇律熙)
소율희는 남북국시대 나말여초 시기 김해 지역을 근거지로 하여 활동한 호족이다. 형 소충자와 함께 김해 지역에서 군림하던 김인광을 몰아내고 김해부지군부사가 되어 세력가로 등장하였다. 소율희·소충자 형제는 선승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여 김해 지역이 선종의 요람지로 명성을 떨치는 계기를 만들었다. 진경대사 심희, 낭공대사 행적, 진철대사 이엄, 진공대사 충담 등이 그에 해당한다. 하지만 친신라적 입장으로 인해 신라가 쇠퇴하자 함께 소멸되는 운명을 맞았다.
아질미는 통일신라 하대 문경 지역에서 활동하던 지방 세력가로,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의 건립 후원자(단월)로 참여한 인물이다. 아질미의 가계와 활동이 자료상으로 나타나지 않아 구체적인 활동 모습을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에서 자금어대, 소판(제3관등 잡찬의 별칭)을 칭하고 있어 나말려초 지방 세력의 존재 양태를 이해하는 데 의의가 있다.
아질미 (阿叱彌)
아질미는 통일신라 하대 문경 지역에서 활동하던 지방 세력가로,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의 건립 후원자(단월)로 참여한 인물이다. 아질미의 가계와 활동이 자료상으로 나타나지 않아 구체적인 활동 모습을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에서 자금어대, 소판(제3관등 잡찬의 별칭)을 칭하고 있어 나말려초 지방 세력의 존재 양태를 이해하는 데 의의가 있다.
오주서는 통일신라시대 나당전쟁기에 청주, 완산주, 한산주, 우수주, 하서주 등 5개 주에 설치되었던 기보병 군단이다. 소백산맥을 축으로 전개된 공세적 방어전략에 따라 진행된 것으로, 당나라의 침략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던 신라의 군사전략을 보여준다.
오주서 (五州誓)
오주서는 통일신라시대 나당전쟁기에 청주, 완산주, 한산주, 우수주, 하서주 등 5개 주에 설치되었던 기보병 군단이다. 소백산맥을 축으로 전개된 공세적 방어전략에 따라 진행된 것으로, 당나라의 침략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던 신라의 군사전략을 보여준다.
왕봉규는 남북국시대 나말려초 강주 지역을 근거지로 활동한 호족이다. 천주절도사를 자칭하면서 중국의 후당에 사신을 파견하고, 회화대장군(懷化大將軍)을 제수받는 등 독자적인 외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활발한 대외 활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친후백제 노선을 드러내어 고려 수군의 공격을 받아 몰락하였다.
왕봉규 (王逢規)
왕봉규는 남북국시대 나말려초 강주 지역을 근거지로 활동한 호족이다. 천주절도사를 자칭하면서 중국의 후당에 사신을 파견하고, 회화대장군(懷化大將軍)을 제수받는 등 독자적인 외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활발한 대외 활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친후백제 노선을 드러내어 고려 수군의 공격을 받아 몰락하였다.
우수주계당은 통일신라시대에 신라의 23개 군단 가운데 하나로, 지금의 춘천 지역인 우수주에 설치되었던 기병 부대이다. 무열왕이 즉위한 후, 중앙에 기병 군단인 계금당을 설치한 뒤 지방에도 확대 설치하였는데 나당전쟁 당시 주된 전장인 한산주와 우수주에 각기 배치되면서 우수주계당으로 편성되었다.
우수주계당 (牛首州罽幢)
우수주계당은 통일신라시대에 신라의 23개 군단 가운데 하나로, 지금의 춘천 지역인 우수주에 설치되었던 기병 부대이다. 무열왕이 즉위한 후, 중앙에 기병 군단인 계금당을 설치한 뒤 지방에도 확대 설치하였는데 나당전쟁 당시 주된 전장인 한산주와 우수주에 각기 배치되면서 우수주계당으로 편성되었다.
이화혜정은 통일신라시대, 지방군의 중핵인 10정 군단의 하나로, 명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기보병 군단이다. 통일신라시대 지방군으로서 각 주에 설치된 기보병 군단인 10정 가운데 하나이다. 이화혜정의 경우 명주의 치소인 강릉에서 상당히 후방인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 주둔하여 다른 정들과는 색다른 면을 보여주는데, 10정이 지방 통치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요충지에 주둔하였던 만큼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화혜정 (伊火兮停)
이화혜정은 통일신라시대, 지방군의 중핵인 10정 군단의 하나로, 명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기보병 군단이다. 통일신라시대 지방군으로서 각 주에 설치된 기보병 군단인 10정 가운데 하나이다. 이화혜정의 경우 명주의 치소인 강릉에서 상당히 후방인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 주둔하여 다른 정들과는 색다른 면을 보여주는데, 10정이 지방 통치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요충지에 주둔하였던 만큼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감(弟監)은 삼국시대, 신라 병부 소속의 관원이자 육정, 구서당, 계금당에 설치된 지휘관이다. 관등은 대나마(10관등)에서 사지(13관등)까지의 인물이 임용되었던 것을 참고할 때, 5두품 계층의 인물이 주된 대상이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소속 부대의 중간급 지휘관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제감 (弟監)
제감(弟監)은 삼국시대, 신라 병부 소속의 관원이자 육정, 구서당, 계금당에 설치된 지휘관이다. 관등은 대나마(10관등)에서 사지(13관등)까지의 인물이 임용되었던 것을 참고할 때, 5두품 계층의 인물이 주된 대상이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소속 부대의 중간급 지휘관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보덕국은 삼국시대에 신라가 고구려 정벌 후 지금의 익산 지역인 금마저에 고구려 왕족 안승과 유민들을 이주시켜 세운 자치국 또는 보호국이다. 674년(문무왕 14)에 고구려 유민을 금마저에 이주시키고 고구려 왕족인 안승을 책봉하여 성립시켰다. 삼국 통일 전쟁이 마무리되자 683년(신문왕 3)에 안승을 경주로 이주시키고 소판 벼슬을 하사하면서 보덕국은 소멸되었다.
보덕국 (報德國)
보덕국은 삼국시대에 신라가 고구려 정벌 후 지금의 익산 지역인 금마저에 고구려 왕족 안승과 유민들을 이주시켜 세운 자치국 또는 보호국이다. 674년(문무왕 14)에 고구려 유민을 금마저에 이주시키고 고구려 왕족인 안승을 책봉하여 성립시켰다. 삼국 통일 전쟁이 마무리되자 683년(신문왕 3)에 안승을 경주로 이주시키고 소판 벼슬을 하사하면서 보덕국은 소멸되었다.
북원경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지방 행정 구역이다. 신라의 5소경 가운데 하나이다. 본래 고구려의 평원군이었는데 678년에 북원소경을 설치하고 757년에 북원경으로 개편되었다. 신라가 편입한 경기도 북부와 철원 지역 및 강원도 지역을 통제하기 위해 강원도 원주 지역에 배치하였다. 원주천 서쪽 부근에서 치악산 방면으로 통일신라시대 유적이 넓게 분포하고 있다. 특히 학성동 유적과 반곡동 고분에서 7세기 후반에서 8세기 전반에 해당하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고 수도의 편재성을 보완하려고 했던 신라의 집권력 강화의지를 보여준다.
북원경 (北原京)
북원경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지방 행정 구역이다. 신라의 5소경 가운데 하나이다. 본래 고구려의 평원군이었는데 678년에 북원소경을 설치하고 757년에 북원경으로 개편되었다. 신라가 편입한 경기도 북부와 철원 지역 및 강원도 지역을 통제하기 위해 강원도 원주 지역에 배치하였다. 원주천 서쪽 부근에서 치악산 방면으로 통일신라시대 유적이 넓게 분포하고 있다. 특히 학성동 유적과 반곡동 고분에서 7세기 후반에서 8세기 전반에 해당하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고 수도의 편재성을 보완하려고 했던 신라의 집권력 강화의지를 보여준다.
신라시대의 지방행정구역.
서원경 (西原京)
신라시대의 지방행정구역.
신라시대의 지방행정구역.
금관경 (金官京)
신라시대의 지방행정구역.
통일신라 경덕왕 때, 대규모 사절단을 이끌고 일본에 방문한 왕족.
김태렴 (金泰廉)
통일신라 경덕왕 때, 대규모 사절단을 이끌고 일본에 방문한 왕족.
신라시대의 지방행정구역.
남원경 (南原京)
신라시대의 지방행정구역.
중원경은 신라시대의 지방행정구역이다. 신라의 5소경 가운데 하나이며 충주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통치거점이다. 본래 삼한시대 마한의 소국이었던 백제국이 성장하면서 그 지배 영역에 포함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5세기에 이르러 고구려가 중원(충주)지역까지 남하하고 국원성을 설치하였다. 6세기 신라 진흥왕의 영토 확장으로 신라의 영역이 되었고 557년 국원소경이 설치되었다가 757년 군현개편으로 중원경이 되었다.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하며 남한강 수운을 이용한 수상교통과 계립령로(죽령로)를 이용한 육상교통이 발달하였다. 현재 충청북도 충주시 일대로 추정된다.
중원경 (中原京)
중원경은 신라시대의 지방행정구역이다. 신라의 5소경 가운데 하나이며 충주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통치거점이다. 본래 삼한시대 마한의 소국이었던 백제국이 성장하면서 그 지배 영역에 포함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5세기에 이르러 고구려가 중원(충주)지역까지 남하하고 국원성을 설치하였다. 6세기 신라 진흥왕의 영토 확장으로 신라의 영역이 되었고 557년 국원소경이 설치되었다가 757년 군현개편으로 중원경이 되었다.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하며 남한강 수운을 이용한 수상교통과 계립령로(죽령로)를 이용한 육상교통이 발달하였다. 현재 충청북도 충주시 일대로 추정된다.
삼국시대에 창건되어 고려 중기까지 강원도 영월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 흥교사.
세달사 (世達寺)
삼국시대에 창건되어 고려 중기까지 강원도 영월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 흥교사.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10구체 향가 「안민가」·「찬기파랑가」 등을 저술한 승려.
충담 (忠談)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10구체 향가 「안민가」·「찬기파랑가」 등을 저술한 승려.
돈황문서는 중국 서부 감숙성의 돈황시 남동쪽 외곽에 위치한 석굴에서 발견된 우리나라와 관련된 고문서이다. 돈황시 남동쪽 외곽 20㎞ 지점에 위치한 석굴에서 5만 점 이상의 고문서가 발견되었다. 영국 런던의 영국박물관 13,700여점, 프랑스 파리의 국립도서관 5천여 점,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에 일부 소장되어 있다. 출토된 자료와 유물을 중심으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여 ‘돈황학’이라 불릴 만큼 학술적인 성과를 쌓아 가고 있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비롯하여 고구려와 발해 등 고대 한반도와 관련된 기록들이 다수 확인되었다.
돈황문서 (燉煌文書)
돈황문서는 중국 서부 감숙성의 돈황시 남동쪽 외곽에 위치한 석굴에서 발견된 우리나라와 관련된 고문서이다. 돈황시 남동쪽 외곽 20㎞ 지점에 위치한 석굴에서 5만 점 이상의 고문서가 발견되었다. 영국 런던의 영국박물관 13,700여점, 프랑스 파리의 국립도서관 5천여 점,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에 일부 소장되어 있다. 출토된 자료와 유물을 중심으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여 ‘돈황학’이라 불릴 만큼 학술적인 성과를 쌓아 가고 있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비롯하여 고구려와 발해 등 고대 한반도와 관련된 기록들이 다수 확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