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문집 ()

방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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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문헌
조선 후기의 학자, 허훈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10년에 간행한 시문집.
정의
조선 후기의 학자, 허훈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10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910년 허훈의 맏아들 허숙(許0x9F75)이 편집·간행하였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노상직(盧相稷)·허채(許埰)가 쓴 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

23권 12책. 목판본. 목록이 따로 한 책으로 되어 있다. 규장각 도서·국립중앙도서관·계명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권1∼5에 시 620여수, 권6에 시 85수, 소 2편, 서(書) 11편, 권7∼10에 서(書) 166편, 권11에 서(書) 38편, 잡저 7편, 권12∼14에 잡저 24편, 권15에 서(序) 41편, 권16에 서(序) 24편, 기 15편, 권17에 기 23편, 발 19편, 권18에 잠(箴)·명(銘)·송(頌)·찬(贊) 각 3편, 부(賦) 2편, 논(論), 상량문 8편, 축문 12편, 제문 8편, 권19에 제문 11편, 애사 5편, 비명 6편, 구묘문(丘墓文) 5편, 권20에 구묘문 26편, 권21에 구묘문 18편, 행장 4편, 권22에 행장 12편, 전(傳) 2편, 권23에 부록으로 묘갈명·가장(家狀)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금오산(金烏山)·해인사 등 명승지를 유람하며 지은 것, 자연의 변화를 즐겨 지은 것 등이 있다. 소는 도산서원(陶山書院)의 위판(位板)을 다시 만들 것을 주장한 것, 이현일(李玄逸)의 관작과 시호를 복구해줄 것을 요청한 것 등이 있다. 서(書)는 스승인 허전·유주목 등에게 보낸 것이 여러 편 있고, 이진상(李震相) 등과 상례(喪禮)·복제(服制) 및 사단칠정(四端七情)·이기설(理氣說) 등 성리학을 논의한 것이 많다.

잡저에는 가야산·주흘산(主屹山)·속리산 등과 백제의 유적을 돌아보고 지은 「서유록(西遊錄)」, 관동팔경을 유람하고 지은 「동유록(東遊錄)」, 주방산을 찾아가 지은 「유주방산록(遊周房山錄)」 등 기행문이 있다. 천문(天文)과 조수(潮水)의 관계에 대한 주희(朱熹)와 한원진(韓元震) 등의 이론을 검토한 「해조설(海潮說)」, 복제·제례 등을 논한 「승중자처종복설(承重者妻從服說)」·「제찬진설도(祭饌陳設圖)」·「변이한주심의설(辨李寒洲深衣說)」 등이 있다.

사단칠정에 대한 주희·이이(李珥)·기대승(奇大升)·김창협(金昌協) 등 선학의 설을 검토하면서 이황의 설을 옹호한 「사칠관견(四七管見)」·「성호선생사칠신편중발변(星湖先生四七新編重跋辨)」 등이 있다. 「춘추기의(春秋記疑)」·「빈풍편례설(豳風編例說)」·「하도낙서설(河圖洛書說)」·「선천도총론(先天圖總論)」 등은 『춘추』·『시경』·『주역』 등에 관한 논설이다. 「패수변(패水辨)」·「수양산변(首陽山辨)」 등은 『당서(唐書)』·『두씨통전(杜氏通典)』 등의 서적을 인용해 지리의 고증을 시도한 글이다.

그밖에 백성의 생활과 국가의 재정에서 소금이 차지하는 비중을 인식해 쓴 「염설(鹽說)」, 총포·전차 등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포설(礮說)」·「차설(車說)」 등이 있다. 서(序)는 『화은집(化隱集)』·『남강집(南岡集)』 등 친지의 문집이나 저술에 붙인 것, 친족간의 결속을 꾀하고 학업을 장려하기 위해 재물을 모아 만든 의장계(義莊契)·돈본계(敦本契) 등의 결성 경위를 밝힌 글 등이 있다. 기(記)는 금오산 등을 유람하고 지은 기행문, 친지의 정자에 관한 기록 등이 있다.

발(跋)에는 복성(復性: 본성으로의 복귀)·신독(愼獨: 혼자 있으면서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삼가함)·거가(居家)·독서 등 일상생활에서 힘써야 할 점들을 권장하고 경계하기 위해 지은 「사잠(四箴)」이 있다. 논의 「공명자비관악론(孔明自比管樂論)」은 패도(覇道)를 한 관중(管仲)이나 악의(樂毅)보다 왕도(王道)의 의리를 추구한 공명(孔明)이 옳음을 지적해 의리의 중대함을 밝힌 글이다. 구묘문에는 묘지명·묘갈명·광지(壙誌) 등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사상사의 흐름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유학근백년(儒學近百年)』(고광직·금장태, 박영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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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오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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