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 4책. 목활자본. 1905년 7대손 병선(秉璿)이 편집, 간행하였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병선의 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규장각 도서·장서각 도서·국사편찬위원회 등에 있다.
권1은 시 103수, 권2는 소(疏) 3편, 서계(書啓) 2편, 서(書) 19편, 권3은 잡저 6편, 권4는 기(記) 2편, 발(跋) 1편, 잠(箴) 1편, 전(箋) 3편, 혼서(婚書) 2편, 상량문 3편, 제문 8편, 권5·6은 행장 2편, 묘표 3편, 권7은 부록으로 행장·묘지명·묘표·시장(諡狀) 각 1편, 제문 5편, 연설(筵說)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진정소(陳情疏)」는 할아버지 송시열(宋時烈)이 윤증(尹拯)의 문도로부터 지탄을 받자 이에 맞서서 사리를 따져가며 변호한 글이다. 서(書)는 복잡한 파당간의 문제와 시사(時事) 등 당시의 상황에 관해 논의한 것이다.
잡저의 「구화사적(構禍事蹟)」은 병자호란 중 강화도에서 있었던 윤증의 아버지 윤선거(尹宣擧)의 일부터 시작해 송시열이 사사(賜死)될 때까지의 사연을 적은 것이다. 윤휴(尹鑴)와의 관계, 윤증과 반목하게 된 전후의 사실, 성혼(成渾) 문도와의 불목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향동문답(香洞問答)」은 이단하(李端夏)와 박세채(朴世采)가 향동으로 송시열을 찾아와 나눈 이야기를 적은 것이다. 태조의 묘호(廟號)를 몇 글자 더 올리는 일, 김익훈(金益勳)에 대한 대간(臺諫)의 탄핵, 오도일(吳道一)의 무례한 언사로 빚어진 일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 「향동문답」은 뒤에 사실과 다르다는 시비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밖에 「추정사기(趨庭私記)」는 이유태(李惟泰)와 자의대비(慈懿大妃) 복제(服制)로 틈이 생긴 전후의 이야기를 설명한 글이다. 가장(家狀)은 모두 3만 5200여 자로 송시열의 생애 가운데 있었던 전후의 사건을 적은 기록이다. 「연설」은 그가 죽은 뒤에 경연에서 그에 대해 논의된 일들을 기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