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복은 1925년평안북도에서 나서 아버지 원강(元剛)을 따라 계룡산 암용추에 와서 백옥성(白玉聲) 밑에서 기도생활을 하였다.
백옥성이 사망하자 백옥성의 사위이기도 하였던 계속 수도에만 전념하는 생활한 결과 상당한 치병능력이 생겨 점차 사람들이 모여들고 특히 신도안 삼신당은 당시 독립운동을 하다가 숨어지내는 사람들의 은신처가 되기도 하였다.
1930년대 후반에는 서울의 삼각산에 기도 장소를 마련하고 삼각산과 계룡산 두 곳에서 조선 독립을 위한 기도를 하고 신도안 지서 습격 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정원강은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은 끝에 1942년 6월 25일에 사망하였다.
정원강은 백옥성의 뜻을 받아 그 곳에 삼신당·칠성각(七星閣)·산신각(山神閣)·정심원(靜心院) 등의 건물을 짓고 기도생활을 하였는데, 정원강이 사망하자 정운복이 삼신당이라는 이름을 걸고 충청남도 논산시 두마면 용둥리에서 포교를 시작하였다.
그 뒤 1984년계룡산 민간인 철거계획에 따라 충청남도 대덕군 기성면 장만리(지금의 대전광역시 대덕구)로 이전하여 1,500평의 대지에 신도안 삼신당과 똑같은 규모의 삼신당을 신축하였다. 정운복은 1995년에 사망하였고, 현재는 그의 부인 박인숙(朴仁淑)이 삼신당을 이끌고 있다.
한때 신도수가 수백 명에 이르렀다고 하나 1997년 현재는 약 100여 명 정도이며, 그나마 1923년생인 박인숙 여인이 너무 고령인데도 후계자를 찾지 못하여 장혜명이라는 스님을 맞아 별당에 부처님을 모시고 본 삼신당을 유지시켜 달라고 부탁하는 형편이라고 한다.
신앙의 대상은 천(天)·지(地)·인(人) 삼신이다. 삼신당에는 삼신을 모셨는데, 중앙에 천신, 왼쪽에 지신, 오른쪽에 인신을 모셨다. 칠성각에는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성좌를 그려놓았다. 불단에는 백옥태상노군상(白玉太上老君像)이 안치되어 있다.
신도들은 삼신당에서 치성을 드리게 되면 복을 받고 소원성취할 수 있다고 믿고 치성을 드리러 온다. 삼신당은 계룡산에서 쫓겨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여기고 있다.
수시로 산신령의 계시가 있을 때마다 계룡산만 잘 지키고 있으며 이 나라가 태평성대가 된다고 하였는데 계룡산을 지키지 못하고 쫓겨난 것이나, 일제 때 세운 항일운동이 제대로 평가되지 않는 것에 대한 감정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위치에 계룡산 산신당과 같은 규모의 건물을 짓고 활동하고 있으나 언젠가는 계룡산으로 복귀하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다. 정기 기도일로는 춘분, 하지, 추분, 동지에 드리는 4철기도가 있다.
이 때는 시까지 정확하게 맞춰 기도를 한다. 기도할 때는 30여 가지의 주문을 외운다. 기도를 성심으로 하면 삼신께서 우주정기를 내려준다고 믿는다. 그러나 확립된 경전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