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7.0m. 1933년 동탑과 함께 복원된 이 탑은 동탑에 대칭하여 석등 좌측인 서쪽으로 8.5m 가량 떨어져 서 있다.
동탑과 동일하게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전형양식을 따르고 있는 탑으로, 상대갑석 모서리를 비롯하여 1·2·3층 옥개석의 모서리 일부가 파손되었고, 상륜부(相輪部) 역시 동탑과 마찬가지로 노반(露盤)과 앙화(仰花)만이 남아 있을 뿐, 나머지 부재들은 모두 없어졌다.
여덟 장의 돌로 짜여진 기단부는 상·하 2층으로 상대갑석과 하대갑석 상면에는 2단의 중석받침과 옥신굄이 설정되어 있고, 기단 면석은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와 탱주(撑柱 : 받침기둥)로 3분되어 면마다 3구씩 12구의 십이지상(十二支像)을 조식하였다.
이처럼 상을 새기고 각 부의 끝 단을 둥글려 완만하게 하는 것은 대체로 9세기경의 탑에서 보이는 특징이다. 십이지상은 좌상으로 사람의 몸에 동물머리를 하고 연화좌 위에 앉아 있는데, 경주 지방의 왕릉에서 볼 수 있는 입상의 무인복장 십이지상과는 다르게 평상복을 하고 있다.
옷자락 역시 동탑에서와 같이 머리 위로 휘날리듯 묘사하여 범종이나 조각에서 보이는 비천상(飛天像)의 자태를 연상하게 한다. 상의 방향 또한 동탑처럼 축상(丑像)만이 좌향을 하고 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우향을 하고 있다.
1층을 비롯하여 2·3층 옥개석은 추녀 모서리가 약간 반전되었고, 옥개받침은 5단이며, 각 층간의 탑신도 체감률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각 층 탑신 중 상층기단처럼 장식조각을 한 초층 탑신에는 모서리에 기둥을 새기고, 그 안에 장방형의 구획을 설정하여 각 면에 1구씩 4구의 사천왕상을 조식하였다.
다른 탑들에 비하여 한층 두드러지게 표현된 사천왕상은 남면의 증장천왕상(增長天王像)만이 깨어져 있고, 동·서·북방의 상들은 비교적 완전하게 남아 있다.
거의 완전한 형태로 악귀를 밟고 서 있는 동방의 지국천왕상(持國天王像)은 정면향으로서, 두 손으로는 칼을 받쳐잡고 있으며, 왼쪽 다리에 무게 중심을 두어 신체의 굴곡을 나타내고 있다.
얼굴과 왼쪽 가슴 부분이 모두 깨어진 서방의 광목천왕상(廣目天王像)은 일고저(一鈷杵)로 생각되는 무기를 들고 있는데, 정면향으로 똑바로 서 있어 경직되어 보이며, 오른쪽으로 몸을 살짝 틀어 변화를 주고 있는 북방의 다문천왕상(多聞天王像)은 특이하게도 두 마리의 악귀를 밟고 있다.
들어올린 두 손 중 오른손에는 보주를 잡고 있으며, 왼손에는 방형의 보탑을 받쳐들고 있다. 현재 동서 양탑에 남아 있는 6구의 사천왕상 가운데 서탑에서 보이는 북방상인 다문천왕상이 가장 둔화되고 경직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신체의 유연성 또한 다른 상들에 비하여 뒤떨어짐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사천왕상이 새겨진 1층 탑신과는 달리 2·3층의 탑신에는 모서리의 우주만이 표현되어 있을 뿐 다른 조각은 되어 있지 않다. 전반적으로 높고 날씬해 보이는 이 탑 역시 동탑과 같이 안정감 있고 정연한 8세기 석탑으로부터 장식성이 높은 9세기 석탑으로 변화해 가는 중간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