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상정(橡亭). 1537년(중종 32) 영해부사를 역임하고 1541년 경상우도수군절도사를 지냈다. 1546년 명종이 즉위하자 훈련원도정이 되었으며, 이듬해 평안도병마절도사를 지냈다.
1552년(명종 7) 함경북도병마절도사가 되었는데, 1554년 초곶(草串)에 사는 야인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무리를 지어 변경의 백성들을 노략질해가므로 이를 토벌하여 전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안마(鞍馬)와 특상을 받았으며, 품계가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올랐다. 그러나 그해 군사기밀이 누설되어 야인에게 크게 패한 책임을 지고, 평안도 인산진(麟山鎭)으로 유배되었다.
1555년에 다시 기용되었고, 1560년 황해도 순경사(巡警使)가 되었다. 이듬해 1월에는 강원도순경사 김세한(金世澣)과 함께 임꺽정(林巨正)을 토벌하는 데 무공을 세웠으며, 1565년 평안도병마수군절도사에 올랐다. 무인이면서도 시에 능하여 후세 문인들이 높이 평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