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3년(고종 30) 화승 약효(若效)와 능호(能昊) 등이 제작하였다. 비단 바탕에 채색한 작품으로, 그림의 크기는 세로 149.5㎝, 가로 196.2㎝이다. 1999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세기 후반 경기 지역에서 유행하였던 감로도상과는 전혀 다른 도상에 의해 제작된 작품이다. 화면 가장자리에 청록 산수 기법으로 수목과 산수를 배치한 후 가운데 부분에 상·중·하단을 배치하였다.
상단의 중앙에는 7여래가 작게 묘사되었다. 얼굴은 측면향 또는 정면향을 하고 있다. 하지만 군의(裙衣) 자락이 모두 오른쪽을 향해 휘날리고 있어 형식화된 모습을 보여 준다. 여래의 왼쪽에서는 관음·지장보살, 오른쪽에서는 인로왕보살이 각각 구름을 타고 우람한 수목 사이로 내영하고 있다.
중단 역시 작은 규모로 차려졌는데, 제단 위에는 삼신불번(三身佛幡) 대신 오색 당번(五色幢幡)과 등이 바람에 휘날리듯 달려 있다. 그 아래 화려한 공양물로 제단을 가득 채웠다. 좌우로는 왕후장상과 선왕선후의 모습을 비롯하여 바둑을 두는 선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제단의 좌우 아래에는 화염에 싸인 아귀(餓鬼) 1쌍이 서로 마주보며 합장하고 앉아 있다. 아귀 사이로 보이는 제단 아래의 화려한 꽃무늬가 상당히 장식적이다. 아귀의 좌우로는 9곡 병풍을 치고 의식을 행하는 작법승과 법상 위에 경전을 올려놓고 독경한 승려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하단의 지옥 장면은 비교적 간단하게 처리되었다. 전쟁 장면, 춤추고 싸우는 모습, 호환(虎患), 나무에서 떨어지는 장면, 물 속에서 아귀가 구걸하는 장면, 집이 무너져 깔려 죽는 장면 등이 보인다.
「지장사 감로도」에서 보이는 병풍을 치고 의식을 행하는 모습이라든지 오색 당번을 매단 제단의 모습, 수목을 화면 가장자리에 배치하고 그 안에 상·중·하단을 배치한 기법 등은 1832년 「수국사감로왕도」와 유사하여 도상간의 영향 관계를 짐작케 한다. 황토색을 바탕으로 칠하고 적색과 녹색, 청색, 흰색 등을 함께 사용하였다. 청록 기법으로 묘사된 수목의 표현이 뛰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