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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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4년(헌종 10) 한산거사(漢山居士)가 지은 풍물가사(風物歌辭).
내용 요약

한양가는 1844년(헌종 10) 한산거사(漢山居士)가 지은 풍물가사이다. 4음보 1행을 기준으로 모두 704행이다. 조선 왕도인 한양성의 연혁, 풍속, 문물, 제도, 도국(都局) 및 왕실에서 능(陵)에 나들이하는 광경 등을 노래하였다. 작자의 본명은 알 길이 없고, ‘한산’을 작자의 호로 보았다. 한산거사가 지은 「한양가」는 ‘한양태평가’ 또는 ‘한양풍물가’라고도 하는 이본들이 있다. 한산거사 「한양가」의 축약형으로 이용기의 「한양가」가 있다. 내용은 한산거사의 「한양가」를 모두 10개 문단에 간결히 발췌, 요약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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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844년(헌종 10) 한산거사(漢山居士)가 지은 풍물가사(風物歌辭).
내용

형식은 4음보 1행을 기준으로 모두 704행이다. 조선 왕도인 한양성(漢陽城)의 연혁 · 풍속 · 문물 · 제도 · 주1 및 왕실에서 능(陵)에 나들이하는 광경 등을 노래하였다.

내용이 다른, 같은 이름의 이본이 많으므로, 조선 도읍지 한양을 노래한 이 작품을 ‘향토한양가(鄕土漢陽歌)’라 하고, 조선 왕조의 흥망성쇠를 노래한 작품을 ‘왕조한양가(王朝漢陽歌)’라고 분류한다. 한산거사가 지은 「한양가」는 ‘한양태평가(漢陽太平歌)’ 또는 ‘한양풍물가(漢陽風物歌)’라고도 하는 이본들이 있다.

현재 전하고 있는 이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궁체(宮體) 주2 목판본으로 ‘세경진국추석동신간’이라는 주3와 함께 본문 이외에 ‘신증동요’만을 책 끝에 싣고 있는 국립중앙도서관본 계통의 것이다. 그 다음은 간기는 같지만 책 끝에 ‘신증동요’외에 ‘한양가시’와 ‘갑술경가’가 부록된 목판본이다.

또 지은이와 지어진 연대는, 목판본의 「한양가」 본문 끝에 ‘세재갑진계춘 한산거사저’라고 기록된 연기(年記)에 따라 ‘1844년(헌종 10), 한산거사’임을 알 수 있다. 작자의 본명은 알 길이 없고, ‘한산’을 작자의 호로 보아, 「한양가」의 주해본을 펴낸 송신용(宋申用)은 ‘한산(漢山)’이라 쓰고, 이병기(李秉岐)는 ‘한산(寒山)’이라고 달리 표기하였다.

이 가사는 “천개지벽하니/일월이 생겼어라.”로 시작하여 “우리나라 우리임금/본지백세 무강휴를/여천지로 해로하게/비나이다 비나이다.”로 끝맺고 있다. 중요한 내용을 문단별로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제1문단은 한양의 주9와 도국을 노래하였고, 제2문단은 궁전 주4, 제3문단은 궁방(宮房) · 내시(內侍) · 나인(內人), 제4문단은 승정원(承政院) · 의정부(議政府), 제5문단은 육조관아(六曹官衙), 제6문단은 주5과 여러 관서(官署), 제7문단은 선혜청(宣惠廳)과 여러 관서, 제8문단은 주6과 백각육의전(白各六矣廛), 제9문단은 마루저자 · 광통교와 구리게 전방(廛方), 제10문단은 유희와 유희처, 제11문단은 주10과 복식(服飾) 및 기생점고(妓生點考)와 가무(歌舞), 제12문단은 주7하는 광경, 제13문단은 과거 시험장의 풍경(風景)과 장원 급제자의 주8하는 광경을 입심 좋게 그려내어 독자들에게 조선시대 서울의 면모와 풍속까지를 자세히 알려 주고, 마지막 문단에서는 한양을 찬탄하며 나라와 왕과 한양성이 무한히 태평하기를 축원하였다.

특히, 끝부분에서 “원생고려 한단말은/중원사람 말이로세/추차언이 관지하면/제일강산 가지로다/산악수기 받아나니/충효인물 총총하다/범절이 이러하니/천하제국 제일일다.”라고 노래하여 구구절절 애국 · 애족의식을 드높이고 있다.

이밖에 한산거사 「한양가」의 축약형으로 줄여서 향토 한양을 찬미한 이용기(李用基)의 「한양가」가 있는데, 분량은 4음보 1행을 기준으로 85행의 상대적으로 짧은 작품이다. 그 내용은 한산거사의 「한양가」를 모두 10개 문단에 간결히 발췌, 요약한 듯하다.

참고문헌

『악부(樂府)』(고려대학교 소장본)
『아악부가집(雅樂部歌集)』(서울대학교 소장본)
『한양가』(송신용, 정음문고, 1949)
『농가월령가 한양가』(박성의, 민중서관, 1974)
「한양가에 나탄난 서울의 모습」(이병기, 『향토서울』창간호, 1957)
「한양가에 나타난 이조풍물고」(최강현, 『고대문화』3, 1961)
「왕조한양가의 이본에 대하여」(최강현, 『국어국문학』32, 1966) 논문제목
「향토한양가의 이본을 살핌」(최강현, 『배달말』8, 1983)
『주해악부』(정재호 외,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92.)
주석
주1

음양가(陰陽家)에서, 산에 둘러싸여서 이루어진 땅의 모양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2

반쯤 흘려 쓴 글. 우리말샘

주3

동양의 간행본에서, 출판한 때ㆍ곳ㆍ간행자 따위를 적은 부분. 우리말샘

주4

옥좌

주5

거둥의 절차대로 말을 연습시키던 일

주6

성 위에 낮게 쌓은 담

주7

임금이 능에 거둥함. 우리말샘

주8

과거 급제자가 광대를 데리고 풍악을 울리면서 시가행진을 벌이고 시험관, 선배 급제자, 친척 등을 찾아보던 일. 보통 사흘에 걸쳐 행하였다. 우리말샘

주9

땅의 생긴 모양이나 형세. 우리말샘

주10

조선 후기에, 별감들이 중심이 되어 관기와 악공을 데리고 노래와 춤으로 즐기던 행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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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최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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