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개운사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 및 발원문 (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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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서울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조각
유물
문화재
개운사에 봉안된 고려시대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그 발원문.
정의
개운사에 봉안된 고려시대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그 발원문.
개설

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274년의 중수기를 가지고 있는 고려 1200년경 전후의 불상으로 고려 중엽 내지 후반기를 대표하는 걸작이다.

내용

대좌와 광배를 잃어버렸지만 불신만은 완전하게 남아 있는 편이다. 머리는 육계가 크고 나발이 촘촘하며 중앙계주도 큼직한 것이 봉림사 아미타불상과 상당히 유사하다. 얼굴은 갸름하면서도 단아한 편으로, 이마가 넓고 턱은 뾰족하며 가는 눈과 코, 작고 단정한 입은 얼굴 중심부로 몰려 있는데, 역시 봉림사 불상 얼굴과 거의 동일한 편이다.

결가부좌로 앉아 있는 불상의 체구는 단아하면서도 당당하다. 어깨의 곡선이나 가슴, 허리, 무릎의 양감은 세련미 넘치게 표현되었는데 특히 오른발을 왼 무릎 위로 올린 길상좌의 하체가 깔끔하게 처리되어 있다. 오른손은 가슴에서 손바닥을 보이도록 외장하고 왼손은 허리까지 들어 손바닥을 위로 하면서 엄지와 중지를 모은 하품중생인 변형을 짓고 있는 수인은 봉림사 목아미타불좌상, 문수사 아미타불좌상, 국립부여박물관 소장의 아미타불상 등 대부분의 고려 후기 아미타불상 수인과 유사하다. 손가락은 가늘고 길어 수려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통견의를 입은 불의는 신라 불의보다는 두터워졌지만 양감을 뚜렷이 표현할 정도로 비교적 얇은 편이다. 통견한 대의는 양쪽 어깨를 다 덮었지만 가슴은 거의 노출된 상태이며 왼쪽 어깨는 밖으로 접혀 층단을 이루었고 이 아래에서 팔로 내려간 옷은 여러 줄의 주름이 타이트하게 잡혀 팔굽에서 Ω자를 이루었다. 오른쪽 어깨에는 왼쪽 어깨 뒤로 넘어간 자락이 반달형을 이루고 있는데 삼국시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이중 착의의 대의(大衣) 끝자락일 것이다. 하체는 대의 선이 간략화되었는데 왼무릎에는 옷자락이 구불구불한 삼각형을 이루면서 내려오고 있다. 가슴 아래에 표현된 승각기는 곡선을 이루고 있는데 띠 매듭이 없는 것이 당시의 다른 예들과는 다른 편이다. 이런 전체적인 형태는 봉림사 아미타불상이나 개심사 목아미타불상 또는 수국사 목아미타불상 등과 거의 동일한 것으로 착의법과 주름 등이 모두 일치하고 있다.

이 불상의 복장에서 다량의 복장물이 발견되었는데 1274년 불상 중수기와 많은 불교전적, 다라니 등 고려 불상 연구는 물론 고려 불교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불상으로 크게 중요시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 목불상은 1274년의 중수기를 가지고 있어 고려 후기 복장이 나온 장곡사 금동약사불상이나 문수사 금동아미타불좌상 등에 비견할 수 있는 귀중한 불상이다. 1200년경 전후의 목불상을 대표하는 고려 아미타불상일 뿐 아니라 형식과 양식, 복장물 내용에서도 고려 목불상의 가치를 알려주는 대표적 걸작으로 큰 의의가 있다고 판단된다.

참고문헌

「고려 13세기 조각양식과 개운사 소장 축봉사 목 아미타불상의 연구」(문명대, 『강좌미술사』8, 한국미술사연구소,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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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문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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