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청지(淸之), 호는 감모재(感慕齋). 함양(咸陽) 개평촌(介坪村) 출신. 할아버지는 노정국(盧楨國)이고, 아버지는 호조참판에 추증된 노석규(盧錫奎)이며, 어머니는 밀양박씨로 박내오(朴來吾)의 딸이다. 신성진(愼性眞)의 문인이다.
1814년(순조 14)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819년 전적이 되었고 그 뒤 지평(持平)·이조좌랑 등을 역임하였고, 1826년(순조 26) 자인현감(慈仁縣監)이 되어 많은 선정을 베풀었다.
1836년(헌종 2) 장령에 제수되어, 임금의 나이가 아직 어리니 이륜(彛倫)과 도덕으로 잘 보도(輔導)하여야 한다 하고, 경전(經傳) 중에서 절실한 것만을 뽑아 책을 만들어 올리니 충성이 지극하다 하여 특별히 동부승지에 승진되었고, 1851년(철종 2) 호조참판에 이르렀다.
말년에는 노광리(盧光履)와 함께 아버지의 글 중에서 요지를 뽑아 「가학십도(家學十圖)」를 만들었고, 후학을 양성하는 데 전념하였다. 저서로는 『감모재집(感慕齋集)』 2권 1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