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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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 옥연정사
하회 옥연정사
건축
개념
신앙에 따라 수행을 계속하는 사람들이 머무르는 종교건축물.
내용 요약

정사는 신앙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들이 머무는 종교 건축물이다. 사찰을 보통 정사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사찰에 명명한 예는 드물다. 도교나 유교를 숭상하는 이들의 수련처도 정사라 불렀다. 산천에서 인격을 함양하고자 했던 지식인들도 정사를 지었다. 그 정사에서 스스로의 함양 및 자제들을 훈도하였다. 유성룡이 『징비록』을 집필한 하회리의 옥연정사가 대표적이다. 현존하는 정사 중에 널리 알려진 것은 무계정사, 풍림정사 등이다. 선비들이 사랑채의 당호를 정사라고 하기도 했다. 정사는 배례소나 연찬소에 비해 질박하게 경영되는 특성이 있다.

목차
정의
신앙에 따라 수행을 계속하는 사람들이 머무르는 종교건축물.
내용

인도 중부 마갈타국의 가란타마을에 세워진 불교의 죽림정사(竹林精舍, 주1가 효시이다. 석가세존이 성도(成道)한 뒤에 가란타장자가 부처에게 귀의하여 비구 1,250명의 승단 거처를 마련하기 위하여 가란타의 죽림원(竹林園)을 희사하고, 그 터에 빈바사라왕이 건물을 지은 것이 불교 최초의 절이라 할 수 있는 죽림정사이다.

우리나라에도 불교가 전파되어 삼국시대 이래로 무수한 사원이 경영된다. 그러나 국가에서 조성한 중요한 사원들을 비롯하여 유명한 사찰에 정사(精舍)라고 쓴 명호(名號)의 예는 아주 드물다. 주2이 지었다고 하는 절의 이름도 죽림사(竹林寺)로서, 죽림정사를 염두에 두었다고 생각되나 정사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도교유교를 숭상하는 이들이 그 업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는 중에 뛰어난 주3에 수행처를 만들고 원력을 세워 수행하기도 하였다. 그들이 경영한 질박한 수련처를 정사라 불렀다. 송나라의 주4는 경관이 뛰어난 무이산(武夷山)에 정사를 지어 무이구곡(武夷九曲)을 감상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였다.

산천이 공여하는 정기가 인간에게 투여되면서 인격이 함양된다고 믿던 우리나라의 지식인들도 그 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이이(李珥)는 황해도 해주의 석담천(石潭川)을 사랑하여 고산구곡(高山九曲)을 설정하고 굽이도는 고장마다 뛰어난 아름다움을 감상하여 정사를 지었다. 그 정사에서는 스스로의 함양뿐만 아니라 자제들의 훈도를 더욱 착실하게 하였다.

낙동강가의 경치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안동 하회리의 원지정사(국가민속문화재, 1979년 지정)는 바위벼랑이 솟은 부용대(芙蓉臺)와 그 주변을 바라볼 수 있는 강가에 자리잡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반통의 작은 규모로 방 2칸에 대청 1칸, 그리고 3칸에 걸쳐 앞퇴가 설치되어 있는 구조로 채색도 하지 않았다. 이 정사는 유성룡(柳成龍)이 34세 때 벼슬을 쉬면서 머물던 별서(別墅 : 별장)였다고 한다.

유성룡이 『징비록(懲毖錄)』을 집필하였다고 하는 하회리의 옥연정사(국가민속문화재, 1979년 지정)는 원지정사에서 바라다보이는 부용대의 동쪽 기슭에 있다. 옥연정사는 일곽 안에 3채의 건물이 들어서 있고, 대문채까지 4채가 된다. 주사(廚舍 : 부엌)와 사랑채와 별당채가 강가에 흩어져 있는데, 그 중 별당채를 정사라 부른다. 방 2칸과 마루 1칸, 그리고 앞퇴가 있는 정면 3칸, 측면 1칸반의 구조로 유성룡이 45세 때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덕리의 겸암정사(국가민속문화재, 1979년 지정)는 유성룡의 맏형인 유운룡(柳雲龍)이 젊어서 지은 것이다. ㄱ자평면의 주사와 다락집처럼 지은 정사(정면 4칸, 측면 1칸반통)가 앞뒤로 배치되어 있다. 하회리에 있는 빈연정사(국가민속문화재, 1979년 지정)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구조이다. 송시열이 별업을 경영한 남간정사(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1989년 지정)는 연못 위에 걸쳐 있다.

현존하는 정사 중에 널리 알려진 것의 예는 다음과 같다. 무계정사(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 · 풍림정사(충청북도 기념물, 1976년 지정) · 고봉정사(충청북도 기념물, 1984년 지정) · 현곡정사(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 · 용오정사(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980년 지정) · 남강정사(전라북도 기념물, 1983년 지정) · 석문정사(石門精舍,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상리리) · 작산정사(경상북도 민속문화재, 1980년 지정) · 동청정사(東廳精舍,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면 신계리) · 검암정사(儉巖精舍, 경상북도 영주시 상출동) · 금양정사(錦陽精舍,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금계동) · 화수정사(花樹精舍,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오록리) · 노봉정사(蘆峰精舍,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오록리) · 청량정사(淸凉精舍,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 북곡일리) · 천운정사(경상북도 민속문화재, 1987년 지정) · 율리정사(栗里精舍,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 · 덕암정사(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7년 지정) · 용진정사(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 보산정사(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6년 지정). 이 밖에 1984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군지촌정사(전라남도 곡성군 입면 제월리)가 있다.

그리고 선비의 집 사랑채의 당호를 정사라 하기도 하였다. 흥선대원군이 철폐하기 이전의 서원(書院) 중에도 정사로 그 이름을 지은 것이 있었다. 영주의 구산정사(龜山精舍), 용궁의 기천정사(箕川精舍), 예안의 동계정사(東溪精舍), 함창의 도계정사(陶溪精舍) · 아곡정사(雅谷精舍), 영해의 구봉정사(九峰精舍) · 도계정사(陶溪精舍), 안동의 묵계정사(默溪精舍) 등이 그것이다.

정사는 여러 가지 용도로 쓰였음을 이로써 알 수 있다. 정사의 특성은 다른 예배처나 배례소나 연찬의 처소에 비하여 아주 질박하게 경영된다는 데 그 특성이 있다.

주석
주1

중인도(中印度) 마가다에 있었던 최초의 불교 정사. 천축국 다섯 정사의 하나로 인도 승원(僧院)의 시초이다. 왕사성(王舍城) 남쪽 가란다(迦蘭陀)에 있었기 때문에 ‘가란다 죽림’이라고도 한다. 석가모니가 성도하던 초년에 대밭 속에 세운 정사로 석가모니는 가끔 이곳에 와 살면서 설법하였다고 한다. 우리말샘

주2

고구려의 승려(?~?). 신라 십성의 한 사람으로 아두(阿頭)라고도 한다. 신라 미추왕 2년(263)에 신라에 가서 불교를 전하였다. 우리말샘

주3

산이나 들, 강, 바다 따위의 자연이나 지역의 모습. 우리말샘

주4

중국 송나라의 유학자(1130~1200). 자는 원회(元晦)ㆍ중회(仲晦). 호는 회암(晦庵)ㆍ회옹(晦翁)ㆍ운곡산인(雲谷山人)ㆍ둔옹(遯翁). 도학(道學)과 이학(理學)을 합친 이른바 송학(宋學)을 집대성하였다. ‘주자’라고 높여 이르며, 학문을 주자학이라고 한다. 주요 저서에 ≪시전≫, ≪사서집주(四書集註)≫, ≪근사록≫, ≪자치통감강목≫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집필자
신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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