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간, 홍문관부제학,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22년(경종 2) 병조좌랑을 지내고, 1727년(영조 3)에는 만경현령이 되어 이듬해 일어난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사전에 탐지해 영문에 보고하고, 난을 토벌해 공을 세웠다. 1731년 영암군수와 사헌부장령을 지내고, 1733년 양산군수 · 군자감정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같은 해 『퇴계언행록(退溪言行錄)』을 교열해 간행하고, 이듬해 상소해 민폐 근절책과 관기숙정 방안을 건의했다. 홍문관의 계청에 의해 경연에 참석해 소신을 진술했다. 그 해 울산부사가 되어 춘추관편수관을 겸임하고, 구강서원(鷗江書院)을 창립해 학문을 진흥시켰으며, 공씨에게 군역을 면제하는 등 선치를 하였다.
1741년 시강원필선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1745년 봉상시정, 이듬해 사헌부헌납 · 사간원사성 · 사헌부집의 · 동부승지 · 형조참의 등을 역임하고, 1748년 우부승지로 물러났다.
뒤에 대사간 · 판결사(判決事) · 홍문관부제학 · 한성좌윤 · 지중추부사 · 대사헌 등을 역임하고 기로소에 들어갔다. 이황(李滉)을 사숙해 「사칠설(四七說)」을 지어 이(理)와 기(氣)를 완전히 둘로 분리하고, 이는 본연의 성이며 기는 기질의 성이라고 주장했다.
저서로는 『청대집(淸臺集)』 18권, 『초학지남(初學指南)』 · 『관서근사록집해(觀書近思錄集解)』 · 『소대비고(昭代備考)』 · 『가범(家範)』 · 『역대사초상목(歷代史抄常目)』과 『일기(日記)』 30여 권이 있다. 시호는 희정(僖靖)이다. 죽림정사(竹林精舍) · 근암서원(近菴書院)에 향사되었다.
참고문헌
- 『국조방목(國朝榜目)』
- 『영조실록(英祖實錄)』
- 『청대집(淸臺集)』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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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본관 및 가계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三(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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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三(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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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권상일 저술 : 『청대집(淸臺集)』 (한국문집총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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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시호 추증 : 『정조실록』 30권, 1790년(정조 14) 4월 11일. "이조 판서 이연경 등에게 시호를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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