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후기에, 병마부사, 좌간의대부, 서북면병마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216년(고종 3) 8월 거란족의 침입으로 5군(五軍)이 편성되자 전군(前軍) 병마부사(兵馬副使)에 임명되었다. 1218년 일단 물러났던 거란족이 다시 군세를 정비해 남하하자 당시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로서 조충(趙沖)을 대신해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의 직임을 띠고 파견되었다. 이때 북계(北界)의 군사들을 지휘해 거란족들을 숙주(肅州: 평안남도 평원군 숙천)와 영청(永淸: 평안남도 평원군 영유) 등지에서 격파, 적 430여 명을 베고 21명을 포로로 하고, 53필의 말을 얻는 등 커다란 승리를 거두었다.
이듬해 의주(義州)의 별장(別將) 한순(韓恂) · 다지(多智) 등이 방수장군(防戍將軍) 조선(趙宣)과 수령 이체(李棣) 등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때 중군병마사(中軍兵馬使)에 임명되어 지모(智謀)로써 적괴(賊魁)의 머리를 베어 반란을 진압하였다.
그러나 적괴의 머리를 보고를 하지 않고 개성으로 보낸 일 때문에 병마사 김취려(金就礪)의 미움과 관하의 녹사(錄事) 노인수(盧仁綬)의 참소를 받아 상공(賞功) 대신 도리어 한남(漢南: 지금의 경기도 수원)으로 귀양가게 되었다. 서북면병마사 재직 중 청백(淸白)과 애민(愛民)으로 이름이 높았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김군수의 귀양을 몹시 애석히 여겼다.
저술활동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동문선(東文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하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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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과거 급제 : 『등과록전편(登科錄前編)』 卷之一(규장각한국학연구원[古465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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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시부 장원 : 『고려사』 권20, 세가, 1195년(명종 25) 3월. "왕이 시제를 낸 시험에 김군수가 장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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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서북면병마사 임명 : 『고려사』 권22, 세가, 1218년(고종 5) 4월. " 김군수를 서북면병마사로 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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