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무위사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때 전라남도 강진군에 창건된 것으로 전하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로, 선각대사 형미(迥微, 864~917)가 주지로 있던 시기를 전후하여 창건 및 중창되었다. 조선 세종(世宗, 재위 1418~1450) 12년(1430)에 극락보전이 건립되었고,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木造阿彌陀三尊佛坐像)과 함께 아미타여래삼존벽화(阿彌陀如來三尊壁畫), 백의관음도(白衣觀音圖) 등 극락보전에 29점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15세기 후반에 수륙사(水陸社)로 지정되었다.
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때, 전라남도 강진군에 창건된 것으로 전하는 사찰.
변천
고려 정종(定宗, 재위 946~949) 1년(946)에 무위사에 건립된 선각대사탑비(先覺大師塔碑)에 선각대사 형미(迥微, 864~917)가 905년에 당나라에서 귀국한 후 무위갑사(無爲甲寺)에 머물렀다고 하므로 이 시기를 전후하여 창건 및 중창되었을 것이다. 조선 태종(太宗, 재위 1400~1418) 7년(1407)에는 천태종(天台宗) 자복사(資福寺) 중의 하나가 되었다. 당우는 본절이 23동, 암자가 35개로 모두 58동에 이르는 대찰이었으나, 그 뒤 화재 등으로 규모가 크게 축소되었다. 당우는 [극락보전(極樂寶殿)](E19188) · 명부전(冥府殿)과 요사채뿐이었으나 조선 숙종(肅宗, 재위 1674~1720) 4년(1678)에 극락보전 앞에 괘불대를 조성하였고, 조선 영조(英祖, 재위 1724~1776) 15년(1739)에는 해초(海超) · 극잠(克岑) 등이 전각을 보수하였다. 1975년 벽화보존각(壁畵保存閣)과 해탈문(解脫門) · 봉향각(奉香閣) · 천불전(千佛殿) · 미륵전(彌勒殿) 등을 중건하였으며, 1991년에 산신각을 짓고 1995년에 동쪽 요사를 증축하여 오늘에 이른다.
형태와 특징
이 밖에도 극락보전에는 29점의 벽화가 그려졌고, 이들은 성보 박물관에서 전시, 보존하고 있다. 이 벽화들은 법당이 완성된 뒤에 찾아온 한 노거사(老居士)가 49일 동안 이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당부한 뒤에 그렸다는 전설이 있다. 49일째 되는 날, 주지가 문에 구멍을 뚫고 들여다보니 파랑새 한 마리가 입에 붓을 물고 마지막으로 후불벽화 뒷면의 관음보살 눈동자를 그리고 있었는데, 새는 인기척을 느끼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지금도 후불벽화의 관음보살상에는 눈동자가 없다.
명부전에는 목조 지장삼존상과 시왕상 10구 등 목조각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들은 조성 발원문을 통해 1661년 조각승 회감(懷鑑)에 의해 조성되었다. 선각대사 탑비는 1969년 보물로 지정되었고, 그 옆에 1984년 전라남도 문화유산 자료로 지정된 무위사 삼층석탑은 석탑 형식을 취한 보기 드문 승탑이다. 또한 미륵전 안에는 고려 말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불 입상이 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전라좌도월출산무위사사적기(全羅左道月出山無爲寺寺蹟記)』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논문
- 손성필, 「15세기 강진 무위사의 국가적 위상-승정체제의 개혁, 운용과 관련하여-」 (『동국사학』 75,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2022)
- 이계표, 「無爲寺 先覺大師遍光靈塔碑 校勘」 (『불교문화연구』 8, 남도불교문화연구회, 2001)
- 장모창, 「강진 무위사의 연혁 및 성보문화재」 (『향토문화』 37, 향토문화개발협의회, 2018)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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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중국 청나라 고종 때의 연호(1736~1795).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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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건물이나 조직체 따위를 처음으로 세우거나 만들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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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선종에서, 승려가 입산하여 안주하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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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정당(正堂)과 옥우(屋宇)라는 뜻으로, 규모가 큰 집과 작은 집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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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규모가 크거나 이름난 절.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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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절에 있는 승려들이 거처하는 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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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학교나 공공 단체의 기숙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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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으뜸가는 부처라는 뜻으로, ‘석가모니불’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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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법당의 불단 뒤쪽의 벽.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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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신이나 부처에게 소원을 비는 내용을 적은 글.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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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고승(高僧)의 사리를 안치한 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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