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집』은 조선 후기, 문신 이이명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59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시는 주변의 인물 등과 주고받거나 그에 대한 만시가 많으며, 유배지에서 처지를 한탄하는 시도 있다. 차(箚)와 소는 군학(君學)과 시무(時務), 양역(良役)의 폐단 등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였다. 「연행잡지(燕行雜識)」는 고부사(告訃使)로 북경에 갔을 때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자료이다.
1725년(영조 1)에 수습한 유집(遺集)을 바탕으로 손자 이봉상(李鳳祥)이 20권 10책으로 재편차하여 홍봉한(洪鳳漢)의 도움을 받아 1759년(영조 35)에 다른 사대신(四大臣)의 문집과 함께 운각인서체자(芸閣印書體字)로 간행하였다.
권1·2에 부(賦) 1편, 시 175수, 권3∼8에 소차(疏箚) 113편, 계(啓) 8편, 권9에 의(議) 30편, 옥당고사(玉堂故事) 5편, 교서(敎書) 2편, 비답(批答) 1편, 전(箋) 1편, 권10에 서(序) 13편, 기(記) 8편, 제발(題跋) 19편, 권11·12에 찬(贊) 1편, 명(銘) 2편, 잠(箴) 1편, 잡저(雜著) 15편, 권13·14에 능지(陵誌) 1편, 묘지 9편, 묘갈 3편, 묘표 15편, 비(碑) 6편, 권15∼17에 시장(諡狀) 4편, 행장(行狀) 2편, 권18에 제문(祭文) 36편, 애사 1편, 권19·20에 서독(書讀) 109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주변의 인물 등과 주고받거나 그에 대한 만시가 많다. 1704년(숙종 30) 동지사로 연경에 다녀오는 도중의 견문을 쓴 시가 있고, 함께 유배된 조태채(趙泰采), 김창집(金昌集) 등과 주고받은 시도 있다.
차(箚)의 「옥당응지차(玉堂應旨箚)」는 입성지(立聖志) · 근성학(勤聖學) · 목민심(牧民心) · 숭절검(崇節儉) · 엄내치(嚴內治) · 벽언로(闢言路) · 정기강(正紀綱) · 구인재(求人才) · 식융정(飾戎政) 등 9개 조목으로 군학(君學)과 주1에 대해 진언한 내용이다.
소에는 「논척이현석소(論斥李玄錫疏)」 · 「걸가환조진연로소문소(乞暇還朝陳沿路所聞疏)」 · 「옥당청류유현소(玉堂請留儒賢疏)」 · 「걸군겸진소회소(乞郡兼陳所懷疏)」 등 정책적 내용을 담은 것이 많다. 「대양역변통수의차(對良役變通收議箚)」는 양역(良役)의 폐단을 지적하고, 이의 시정책을 건의한 것이며, 「논구재황차(論救灾荒箚)」는 박정(薄征) · 산리(散利) · 완형(緩刑) 등에 대한 의견을 피력한 것이다.
「조진해방사의계(條陳海防事宜啓)」는 강도(江都) · 인천(仁川) · 해서(海西) · 강소(江所) · 백령(白翎) · 호서(湖西) 등지에 진을 설치할 것을 건의한 것이다. 「비국어염사회계(備局魚鹽事回啓)」는 각 도의 어염에 관한 실태를 파악하여 보고한 내용이다.
잡저 가운데 「강역관방도설(疆域關防圖說)」은 삼한분계(三韓分界) · 사군이독부(四郡二督府) · 삼국조기(三國肇基) · 신라강역 · 고구려강역 · 백제강역 · 고려통합 · 아국강역(我國疆域) · 경도(京都) 등으로 구분하여 17개소의 진(鎭)에 대해 도설한 것이다.
「책문(策問)」은 고금인물(古今人物) · 풍수설 · 뇌정(雷霆) · 전화(錢貨) · 인신(人臣) 등의 내용으로 되어 있다. 「연행잡지(燕行雜識)」는 1720년 숙종이 죽자 고부사(告訃使)로 북경(北京)에 갔을 때 보고들은 것을 기록한 것으로 그 곳에서의 활약상을 알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상례정식(喪禮定式)」은 10개 조항으로 되어 있는데, 저자의 선대부터 시행하던 상례에 관한 의절을 후손을 위해 정리 · 보충한 것이다. 이 밖에 「양역변통사의(良役變通私議)」 등 정책적인 내용을 담은 글이 많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원문과 이미지, 해제를 제공하고 있다. (https://db.itk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