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각경 ()

유각경
유각경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조선여자기독교절제회 회장, 대한예수교장로회여전도회 회장 등을 역임한 개신교인. 친일반민족행위자.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1891년(고종 28) 6월 14일
사망 연도
1966년
본관
기계(杞溪)
출생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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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유각경은 일제강점기 조선여자기독교절제회 회장, 대한예수교장로회여전도회 회장 등을 역임한 개신교인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91년(고종 28)에 태어나 1966년에 사망했다. 1910년 정신여학교를 졸업하고 정신여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1922년 YWCA를 창립하고 회장에 취임했으며 근우회 창립준비위원으로 참여했다. 1939년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이 주관하는 강연과 좌담회에 참여하여 일제의 전시체제와 황민화정책을 옹호하였다. 해방후 건국부녀동맹에 참여하며 한인애국부인회를 창설하였으며, 대한부인회 부회장, 자유당 중앙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 조선여자기독교절제회 회장, 대한예수교장로회여전도회 회장 등을 역임한 개신교인. 친일반민족행위자.
개설

1891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중추원 참의와 충청남도 · 강원도지사를 지낸 유성준(兪星濬)의 장녀이자, 개화운동가 유길준(兪吉濬)의 조카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10년 정신여학교 제4회 졸업생으로 장로교 여선교회의 주선으로 중국으로 유학해 1914년 베이징[北京] 협화여자전문학교(協和女子專門學校) 보육과를 졸업했다. 1914년 9월 귀국해 정신여학교 교사로 1920년까지 재직했다. 1921년 6월 아버지 유성준이 사장으로 있던 신가정사(新家庭社)에서 발행한 『신가정』의 주필을 맡았다.

1922년 김필례(金弼禮) · 김활란(金活蘭) 등과 함께 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연합회(YWCA)를 창립하고 회장에 취임했으며, 서울 종로구 안동교회 내에 안동유치원을 설립해 부원장을 겸했다. 1927년 2월 신간회 창립 직후 선임된 간사 35명 가운데 한 명이었다. 같은 해 4월 여성의 독자적 조직체 구성에 대한 요구를 수렴한 근우회(槿友會) 발기인 총회에 창립준비위원으로 참여했고, 5월 근우회 창립총회에서 부회장에 선임되었다. 이후 근우회 선전조직부원, 감사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1932년 7월부터 YWCA 회장, 1936년 7월부터 총무를 맡아 1941년까지 활동했다. 1935년부터 1940년까지 조선여자기독교절제회(朝鮮女子基督敎節制會) 회장을 겸임했다. 1936년 7월 조선예수교장로회 포교자로 조선총독부에 포교계를 제출한 후, 1937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여전회 회장을 맡아 여자기독교절제회 세계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다. 1937년 8월 애국금차회(愛國金𨥁會) 발기인 겸 간사로 참여했으며, 1938년 5월 ‘시국과 여성의 각오’란 주제로 열린 여성단체연합 시국강연회, 1939년 8월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 주관 국민정신선양전국순회강연 등에 참여해 수많은 강연과 좌담회에서 일제의 전시체제와 황민화정책을 옹호하고 여성들의 동원을 독려했다. 1941년 4월 국민총력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연맹 여자부 중앙위원을 맡았고, 같은 해 8월 조선장로교신도 애국기헌납기성회 부회계를 맡았다. 같은 해 12월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 지도위원이 되었다. 1942년 5월 12일자 『매일신보』에는 징병제 실시를 홍보하는 「어머니 자신부터 가진 ‘야마토 다마시히[大和魂]’」라는 글을 기고했으며, 1943년 5월 7일자 『매일신보』에는 「당신들도 우리도」라는 글을 기고했다.

해방 후인 1945년 8월 17일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외곽조직인 건국부녀동맹(建國婦女同盟)에 집행위원으로 참여했으며, 같은 해 9월 기독교 계통 여성들이 중심이 된 한인애국부인회를 창설해 위원장을 맡았다. 1946년 4월 독립촉성애국부인회(獨立促成愛國婦人會), 11월 전국여성단체총연맹에 참가했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여러 여성단체와 정부, 정당 활동에 참여했다. 1949년 5월 대한부인회가 창설되자 부회장을 맡았고, 1950년 5월 사회부 부녀국 국장에 임명되어 1952년 4월까지 재직했다. 1953년 감찰위원회 위원에 임명되었고, 대한부인회 대표 자격으로 1956년과 1959년 자유당 중앙위원을 맡았다. 1966년 사망했다.

유각경의 이상과 같은 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3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10: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391∼416)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

참고문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Ⅳ-10: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현대문화사, 2009)
『친일인명사전』2(민족문제연구소, 2009)
『친일반민족행위관계사료집』(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2008)
『한국YWCA 80년사』(이세기, 대한YWCA연합회, 2006)
『한국 여성기독교사회운동사』(천화숙, 혜안, 2000)
『친일논설선집』(임종국, 실천문학사, 1987)
『한국공산주의운동사』3(김준엽·김창순, 고려대학교아세아문제연구소, 1973)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김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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