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소 ()

대구 동화사 인악당대사 의첨 진영
대구 동화사 인악당대사 의첨 진영
불교
인물
조선 후기, 경상도에서 주로 활동한 교학승이자 화성 용주사 관련 기문을 쓴 편양파 승려.
이칭
인악(仁岳), 홍제(弘濟)
법명
의첨(義沾), 의침(義砧)
자의(字宜)
성명
이의선(李義宣)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46년(영조 22)
사망 연도
1796년(정조 20)
본관
성산 이씨(星山李氏)
출생지
대구광역시 달성군
주요 저서
인악집, 각종 사기
주요 작품
인악집, 각종 사기
내용 요약

의소(義沼)는 조선 후기에 경상도에서 주로 활동한 교학승이자 화성 용주사(龍珠寺) 관련 기문을 쓴 편양파(鞭羊派) 승려이다. 용연사(龍淵寺)에서 출가하고 동화사(桐華寺)에서 활동하였으며, 상봉 정원(霜峰淨源)의 법을 이었다. 저서로 문집인 『인악집(仁岳集)』, 이력 과정의 사교과(四敎科) 및 화엄 관련 사기(私記) 등이 있다.

정의
조선 후기, 경상도에서 주로 활동한 교학승이자 화성 용주사 관련 기문을 쓴 편양파 승려.
가계 및 인적사항

의소(義沼)는 경상도 달성(현재 대구광역시 달성군) 출신으로 성은 이(李), 본관은 성산(星山), 이름은 의선(義宣)이다. 는 자의(字宜), 주1는 인악(仁岳), 주2은 의첨(義沾)이며, 의소(義沼), 의침(義砧)으로도 전한다.

주요 활동

의소는 8세 때 『소학』을 배우면서 한 번 듣고 세 번 읽으면 곧 주3하여 신동으로 알려졌다. 15세에 주4 · 주5 · 『주역(周易)』을 읽고 뜻을 통달하였고 문장도 뛰어나 학자로서 장래가 기대되었다.

1764년(영조 40) 달성 용연사에 가서 유학을 공부하던 의소는 주6 수행하는 승려들을 보고 감동하여 출가를 하게 된다. 벽봉(碧峯)에게 구족계를 받고 『금강경』 · 『능엄경』 등의 경전을 배웠으며, 서악(西岳) · 추파(秋波) · 농암(聾巖) 등의 고승을 찾아가서 수학하였다.

1768년 의소는 벽봉에게 편양파의 주7 정원(1627~1709)으로부터 법을 전해받았으며, 영원정사(靈源精舍)에서 주8의 종장이었던 설파 상언(雪坡尙彦, 1707~1791)에게 『화엄경』 등을 배워 그 이치를 깨달았다. 그 뒤 비슬산 · 팔공산 · 불영산 등 영남 지역에서 주9을 열어 후학을 양성하였다.

1789년(정조 13) 정조가 부친 사도 주10의 묘를 수원으로 이장하여 주11을 조성하고, 다음 해에 그 주12으로 수원 용주사(龍珠寺)를 창건하였다. 용주사에 불상을 점안(點眼)할 때 의소는 주13로 뽑혀 3개월 동안 용주사에 머물게 되었다. 이때 의소는 「불복장봉안문(佛腹藏奉安文)」, 「제신장문(祭神將文)」 등을 지었는데, 그의 문장에 감탄한 정조가 그에게 홍제(弘濟)라는 호를 내렸다.

1796년(정조 20) 비슬산 명적암(明寂庵)에서 입적하였다. 입적 후 동화사와 용연사에 의소의 주15이 세워졌고, 1808년(순조 8) 동화사에 비가 세워졌다.

학문과 저술

주로 용연사, 동화사 등에서 활동했던 의소는 영남 지방의 주14을 대표하는 학승이었다. 그는 문집인 『인악집』 외에 이력 과정의 주16 및 대교과의 화엄 등에 관한 강의 노트이자 주석서인 사기(私記)를 다수 남겼다. 의소는 자신이 배운 설파 상언의 『화엄청량소은과(華嚴淸凉疏隱科)』에 의거해 주17의 『화엄소초(華嚴疏鈔)』에 대한 사기를 썼는데, 의첨의 화엄사기는 잡화기(雜貨記)로 부른다. 그가 남긴 저서들은 영남 강학의 지침서가 되었다.

의첨은 일심(一心)이 만법의 근원이고 각각의 주18마다 일심을 갖추고 있으며, 몸을 주관하는 심(心)과 리(理)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고 보았다.

참고문헌

원전

『인악집(仁岳集)』

단행본

김용태, 『조선 불교사상사』(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21)
高橋亨, 『李朝佛敎』(寶文館, 1929)

논문

김진현, 「인악 의첨의 일심관 연구」(『불교학연구』 30, 불교학연구회, 2011)
이승범, 「조선후기 연담과 인악의 화엄십지사기 비교연구」(『남도문화연구』 35, 순천대 남도문화연구소, 2018)

인터넷 자료

기타 자료

주석
주1

승려의 호. 우리말샘

주2

승려가 되는 사람에게 종문(宗門)에서 지어 주는 이름. 우리말샘

주3

글을 보지 아니하고 입으로 욈. 우리말샘

주4

≪시경≫의 내용을 알기 쉽게 풀이한 책. 우리말샘

주5

중국 송나라 때에, 주희의 제자 채침(蔡沈)이 ≪서경≫에 주해를 달아 편찬한 책. 10책. 우리말샘

주6

불경을 소리 내지 않고 속으로 읽다. 우리말샘

주7

가장 높은 봉우리. 우리말샘

주8

만행(萬行)과 만덕(萬德)을 닦아 덕과(德果)를 장엄하게 함. 우리말샘

주9

강의나 강연 또는 설교를 하는 자리. 우리말샘

주10

영조의 둘째 아들(1735~1762). 이름은 선(愃). 자는 윤관(允寬). 호는 의재(毅齋). 영조와의 갈등으로 세자에서 폐위되어 서인으로 강등되었고, 영조의 명으로 뒤주 속에 갇혀 굶어 죽었다. 이후 영조가 아들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내린 시호가 ‘사도(思悼)’이며, 정조가 다시 ‘장헌 세자(莊獻世子)’로 시호를 바꾸었다. 우리말샘

주11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사도 세자의 묘. 정조 때 영우원을 고친 것으로, 후에 사도 세자를 장조로 추존(追尊)하고부터 ‘융릉’이 되었다. 우리말샘

주12

각 고을에 있는 문묘. 우리말샘

주13

법회를 증명할 임무를 맡은 법사(法師). 우리말샘

주14

학문을 닦고 연구함. 우리말샘

주15

한 종파의 조사(祖師)나 한 절의 창시자, 또는 덕이 높은 승려의 화상(畫像)을 모신 집. 우리말샘

주16

조선 중기 이후에, 학인(學人)이 경전을 공부하는 강원 이력 과정의 하나. 치문과(緇門科)와 사집과를 마치고 경전을 연구하는 다음 단계로서, 능엄경, 기신론, 금강반야경, 원각경 따위를 배운다. 우리말샘

주17

중국 당나라의 승려(738~839). 속성은 하후(夏候). 존칭은 청량 대사(淸涼大師)ㆍ화엄 보살. 화엄종의 제4대조로, 법장(法藏)의 화엄 교학을 부흥하였다. 저서에 ≪화엄경소≫ 60권, ≪수소연의초(隨疏演義鈔)≫ 90권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18

현상, 개체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김용태(동국대학교 교수, 지역불교 및 불교사 연구(조선시대 불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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