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선안주원벽기(善安住院壁記)」를 남긴 최치원(崔致遠)은 9세기 후반에 활동한 학자로서 유교 · 불교 · 선(仙)에 모두 정통했다. 중국 당 나라에서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써서 이름을 떨쳤고 많은 시문을 남겨 문장가로도 널리 알려져있다.
「해인사사적비문(海印寺事蹟碑文)」을 지은 해봉 유기(海峯有璣, 1707~1785)는 호를 호은(好隱)이라고도 하며 충청도 속리산에서 출가한 후 해인사에서 화엄학을 전문적으로 수학하였다. 상봉 정원(霜峯淨源)으로부터 편양파의 정맥을 이었고 해인사에서 개당한 후 15년 동안 화엄을 중심으로 강학을 이끌었다.
『가야산해인사사적(伽倻山海印寺寺蹟)』은 1874년(고종 11)에 집성되어 목판본으로 간행되었고, 1915년 간본에는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의 이름이 적혀 있다.
1874년(고종 11) 해인사 재조대장경의 주1 및 주2 관련 주3과 주4, 대장경 주5에 대한 기록 등을 모아 판각하였다. 앞서 1865년에는 흥선대원군이 남호 영기(南湖永奇)에게 대장경 2질을 인쇄하도록 하여 그것을 오대산 적멸궁(寂滅宮)과 설악산 오세암(五歲庵)에 봉안하였고, 이를 기념하여 지은 해명 장웅(海冥壯雄)의 「인성대장경발(印成大藏經跋)」에서는 세조 때 대장경 50부의 인출과 비교하며 이때의 인경 사업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삼보 가운데 법보인 대장경을 소장한 해인사의 역사와 대장경 조성 및 인출 내역을 기록한 사적기로서 판본에 따라 1874년, 또는 1915년까지 있었던 일들을 상세히 알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