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재판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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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군사정변 직후인 1961년 7월 「국가재건비상조치법」에 따라 설치되었던 특별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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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혁명재판소는 5·16군사정변 직후인 1961년 7월 〈국가재건비상조치법〉에 따라 설치되었던 특별재판소이다. 1961년 6월 21일 공포하고, 같은 해 7월 7일 혁명재판소 및 혁명검찰부가 발족되었다. 심판부 5부와 상소심판부 2부를 두고 있는데, 심판관들은 대부분 군 관련 인사들로 혁명재판소장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었다. 혁명재판소는 5·16군사정변 전후의 반국가적·반민족적 부정행위 또는 반혁명적 행위를 심판절차에 따라 심판했다. 혁명재판은 약 9개월 동안 진행되었는데, 영구미제 3건 14명을 제외하고 총 205건 697명에 관한 모든 사건의 심판을 완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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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5·16군사정변 직후인 1961년 7월 「국가재건비상조치법」에 따라 설치되었던 특별재판소.
내용

5·16군사정변 후 혁명정부는 「국가재건비상조치법」 제22조 2항에 근거하여 5·16군사정변 이전 또는 이후의 반국가 · 반민족행위사건, 반혁명행위사건 또는 제2공화국(민주당 집권) 때의 특별재판소 및 특별검찰부에서 기결 및 공판계속중인 사건 등을 처리하기 위해 「혁명재판소 및 혁명검찰부조직법」을 1961년 6월 21일 공포하고, 같은 해 7월 7일 혁명재판소혁명검찰부가 발족되었다.

혁명재판소는 서울특별시에 두고 재판소장은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제청에 따라 대통령이 임명하며, 재판소장은 혁명재판소장의 일반사무를 관장하고, 소속직원을 지휘, 감독한다고 되어 있다. 혁명재판소에는 심판부 5부와 상소심판부 2부를 두고 각 심판부는 5인의 심판관으로 구성하는데 재판장 1인, 법무사 1인, 심판관 3인이다.

이들 심판관들의 자격은 재판장은 국군현역장교 중에서 임명하고, 법무사는 군법무관 중에서, 심판관은 군법무관 · 법관 및 변호사 중에서 각 1인씩을 임명하는데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승인을 얻어 혁명재판소장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상소심판부는 7인의 심판관으로 구성하는데 재판장 1인, 법무사 1인, 심판관 5인으로 구성된다.

이들 심판관의 자격은 재판장은 현역장교 중에서, 법무사는 군법무관 중에서, 심판관은 법관 2인과 현역장교 · 군법무관 · 변호사 중에서 각 1인씩을 임명한다. 이들도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승인을 얻어 혁명재판소장이 임명한다.

혁명재판소는 다음 범죄에 관한 사건을 심판한다. 즉, 「국가재건비상조치법」 제22조 1항의 5·16군사정변 이전 또는 이후에 반국가적 · 반민족적 부정행위 또는 반혁명적 행위를 한 자를 처벌하기 위하여 제정된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 및 「부정축재처리법」에 규정된 죄와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에 규정된 죄 등에 관해서이다. 혁명재판소의 심판부는 검찰관으로부터 공소제기된 사건을 「국방경비법」의 심판절차에 따라 심판한다.

이 밖의 소송절차에 관하여는 「형사소송법」「법원조직법」을 준용한다고 하였다. 심판부의 판결에 대하여 다음 이유가 있을 때에는 상소심판부에 상소할 수 있다. 즉, 「헌법」 또는 「국가재건비상조치법」에 위반하거나 「헌법」이나 「국가재건비상조치법」의 해석에 착오가 있을 때, 「형사소송법」 제383조 2호 내지 15호에 국정된 사유가 있을 때이다.

그리고 사형 · 무기징역에 대하여도 상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다만, 혁명재판소의 판결에 따른 형의 집행은 국가재건최고회의의 확인을 받아야 하고, 국가유공자, 죄상이 경미한 자, 개전의 정이 농후한 자 등에 대하여는 형의 전부 또는 일부를 감형할 수 있다고 하였다. 혁명재판소는 1961년 7월 15일 최영규(崔英圭) 혁명재판소장의 취임식과 심판관에 대한 임명장수여가 있었다.

혁명재판의 개정은 1961년 7월 29일부터 ① 전내무부장관 최인규(崔仁圭)피고인 외 3인, ② 전자유당기획위원회위원장 한희석(韓熙錫)피고인 외 11인, ③ 전국무위원 송인상(宋仁相)피고인 외 7인, ④ 전서울특별시장 임흥순(任興淳)피고인 외 9인, ⑤ 전대한반공청년단장(세칭 고려대학생데모대습격사건) 신도환(辛道煥)피고인 외 17인 등에 관한 재판부터 시작하였다.

혁명재판은 1962년 4월 27일을 최후공판으로 하여 9개월 반 만에 끝을 맺었으나 이 기간 동안 심판부의 총판결 건수는 총 205건에 697명으로서 영구미제 3건 14명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건의 심판을 완료하였다.

상소심판부는 판결건수 총 105건 324명으로서 판결확정자는 심판부판결확정피고인 121명과 상소심판부확정피고인 325명 등 모두 446명에 달하였다.

참고문헌

『한국혁명재판사』 제2집(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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