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적(李彦迪: 1491~1553)의 본관은 여강(驪江) · 여주(驪州)이며, 자는 복고(復古), 호는 회재(晦齋)이다. 초명은 이적(李迪)이었으나 중종의 명으로 ‘언(彦)’ 자를 더하였다. 예조판서, 형조판서, 좌찬성 등을 역임하였다.
본집 4책에 세계도 · 연보 · 부록 1책을 포함해 총 13권 5책의 목판본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동국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본집은 14책으로, 권1은 고시 102수, 권2·3은 율시 208수, 권4·5는 시 83수, 사(詞) 1수, 고이(考異) 1편, 부(賦) 3편, 잡저 7편, 권6은 잠명(箴銘) 10편, 기(記) 1편, 제문 5편, 행장 1편, 비명 3편, 권710은 소(疏) 2편, 전(箋) 2편, 사장(辭狀) 6편, 차자(箚子) 6편, 권11은 서(序) 6편, 전(傳) 1편, 제문 1편, 축문 1편, 비명 2편, 권12는 소 1편, 권13은 습유(拾遺)로 장(狀) 8편, 차자 5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집에 이어 5책은 세계도 · 연보 · 부록이 실려 있고 연보 끝에는 1574년 노수신이 쓴 후서가 있다. 부록에는 행장 · 신도비명 · 묘지 등 6편의 글이 실려 있다.
권1~3에는 고시와 율시가 저작순으로 실려 있다. 권4는 「서천록(西遷錄)」으로 1547년 강계(江界)에 안치되면서부터 몰년에 이르기까지의 시가 실려 있고, 각 체의 습유시(拾遺詩) 및 시구의 이작(異作)을 밝힌 고이(考異)가 포함되어 있다.
권5의 잡저에는 「서망재망기당무극태극변후(書忘齋忘機堂無極太極辨後)」 · 「답망기당(答忘機堂)」 제일서(第一書) · 제이서(第二書) · 제삼서(第三書) · 제사서(第四書)와 「송원전한계채서 (送元典翰繼蔡序)」 · 「이윤오취탕론 伊尹五就湯論」이 있다. 특히 손숙돈(孫叔暾)과 조한보(曺漢輔)에게 보낸 글은 당시 학자들이 노장사상이나 불교에 휩쓸리는 경향에 대해 성리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시사한 내용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권7의 「일강십목소(一綱十目疏)」는 시정(時政)에 관한 의견을 진술한 것이다. 인주심술(人主心術)의 일강(一綱)과 엄가정(嚴家政) · 양국본(養國本) · 정조정(正朝廷) · 신용사(愼用舍) · 순천도(順天道) · 정인심(正人心) · 광언로(廣言路) · 계치욕(戒侈欲) · 수군정(修軍政) · 심기미(審幾微)의 10가지 항목을 들어 정치의 폐단을 막고 재정을 절약하며 군비를 보수하여 국방을 튼튼히 함으로써 국가의 기본을 수립할 것을 주장하는 글이다.
권8의 「수진팔규(修進八規)」는 1550년(명종 5) 강계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임금의 진덕(進德) · 수업(修業)을 위하여 올린 상소이다. 명도체(明道體) · 입대본(立大本) · 체천덕(體天德) · 법왕성(法往聖) · 광총명(廣聰明) · 시인정(施仁政) · 순천심(順天心) · 치중화(致中和)의 8개 항목으로, 임금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밝힌 글이다.
권11의 「대학장구보유(大學章句補遺)」는 주희(朱熹)가 지은 『대학장구』의 잘못된 점을 보완한 독창적인 저술이다. 「중용구경연의(中庸九經衍義)」는 『중용』의 구경(九經)에 대하여 설명을 덧붙인 글로서 미완성작이다. 「구인록(求仁錄)」은 인(仁)을 구하는 방법을 여러 경전에서 뽑아 엮은 책이다. 「봉선잡의(奉先雜儀)」는 주자의 『가례』를 바탕으로 하여 시속(時俗)의 잡다한 예절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아들 이전인에게 전해 준 글로서, 이전인이 후에 저술한 책이다. 「사벌국전()沙伐國傳」은 한문으로 된 단편소설의 일종이다.
권12의 「일강구목소(一綱九目疏)」는 1541년 홍문관에 있을 때 올린 상소문이다. 치중화(致中和)를 강(綱)으로 하고 궁금불가불엄(宮禁不可不嚴) · 기강불가부정(紀綱不可不正) · 인재불가불변(人材不可不辨) · 제사불가불근(祭祀不可不謹) · 민은불가불휼(民隱不可不恤) · 교화불가불명(敎化不可不明) · 형옥불가불신(刑獄不可不愼) · 사치불가불금(奢侈不可不禁) · 간쟁불가불납(諫諍不可不納)의 9개 항목으로, 정치 등 각 분야에 대한 원칙을 논하고 있다.
습유의 「시강원차자(侍講院箚子)」는 1522년 시강원 설서로 있을 때 올린 차자로, 세자의 보양(輔養)을 철저하게 하기 위해서는 서연(書筵)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이언적의 성리설(性理說)은 누구에게 배워서 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노력에 의하여 정립한 독창적인 이론이다. 뒤에 이황과 이이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한국 성리학사에서 높이 평가할 만한 것이다.
그는 생애의 대부분을 관직에 투신하였다. 말년에 강계에서 유배 생활하는 6년 동안 저술한 「대학장구보유」 · 「중용구경연의」 · 「구인록」 · 「봉선잡의」 등은 모두 별도로 간행되었으며, 이 책에는 그 서문만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