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공주 산의리 유적은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백제시대 돌방무덤·독무덤 관련 생활유적이다. 산의리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8기, 저장구덩이 41기와, 백제시대 고분은 돌방무덤 86기와 독널무덤 4기가 있다. 돌방무덤은 굴식[橫穴式] 30기, 앞트기식[橫口式] 31기, 구덩식[竪穴式] 17기, 미상 8기로 구분된다. 공주 산의리 유적은 청동시 시대의 생활유적과 분묘유적이 동시에 잔존하며, 백제의 웅진천도를 전후한 시기부터 사비도읍기에 이르는 시기의 고분 문화상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돌방무덤·독무덤 관련 생활유적.
개설
내용
청동기시대 유적은 생활유구와 분묘유구가 조사되었는데, 각자 구분된 영역에 입지하는 특징을 보인다. 원형 주거지는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있는 소위 ‘송국리형 주거지’ 유형이고 이들 주거지의 주변에는 플라스크형 저장 구덩이가 밀집되어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들 주거지와 이격된 거리에 분묘유적으로 돌널무덤과 독널무덤이 있는데 생활유적과는 별도의 구릉 선상부에 등고선 방향을 따라 장축을 두고 조영한 것이다. 돌널무덤은 지하에 묘광을 파고 여러 매의 판석을 세워서 축조하였다. 독널무덤은 송국리형토기를 세워서 만든 것으로, 돌널무덤 밀집지역의 외곽에 분포한다.
백제시대의 무덤 중에서 굴식 돌방무덤(橫穴式 石室墳: 굴식 고분)은 지하에 묘광을 파고 석축으로 평면 장방형의 무덤방[墓室]을 조성하였다. 무덤방의 규모는 길이 200∼385㎝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데, 장단비는 2 : 1 내외이다. 천장은 궁륭식(穹窿式)과 터널형, 그리고 평천장이 확인되며, 널길(연도)은 중앙 연도도 일부 확인되지만 대부분 우편재이다. 앞트기식 돌방무덤(橫口式 石室墳: 앞트기식 고분)은 한쪽 벽면 전체를 입구로 사용한 다음 폐쇄하였는데, 등고선과 직교한다. 무덤방 평면은 세장방형이다. 앞트기식 돌방무덤에서의 단계적 변화상이 확인되는데, 규모는 길이 130∼260㎝ 내외로 굴식 돌방무덤보다 작다. 구덩식 돌덧널무덤(竪穴式 石槨墓: 구덩식 고분)은 단장묘에 등고선과 나란하게 장축을 이루는데, 특히 입구가 없으며 관재가 발견되지 않는다. 산의리 구덩식 돌덧널무덤의 경우는 널받침[棺臺]이 시설되었거나 관정이 수습되는 것이 다수 확인된다. 즉 나무널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판단되는데, 이와 같은 나무널의 사용은 굴식 돌방무덤의 영향에 의한 것으로 판단된다.
출토된 유물은 청동기시대 주거지에서는 토기와 석기가 주종을 이루나 돌널무덤의 부장유물은 거의 없는 상태이다. 백제시대의 무덤에 부장된 유물은 묘제 유형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토기와 장신구, 그리고 널못[棺釘]으로 구분되는데, 토기가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한다. 토기는 세발토기[三足土器] · 뚜껑접시[蓋杯] · 짧은목항아리[短頸壺] · 곧은 입 항아리[直口壺] · 장군항아리[橫缶壺] · 어깨있는항아리[有肩壺] · 병모양토기[甁形土器] · 바리모양 토기[鉢形土器] · 작은항아리[小形壺] 등이 있다. 장신구는 금동제귀걸이와 옥이 있으며, 철기류는 쇠도끼(철부(鐵斧))와 쇠손칼(철도자(鐵刀子)) 일부를 제외하면 널못이 대부분이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산의리 백제고분』(공주대학교박물관, 2002)
- 『공주 산의리유적』(공주대학교박물관,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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