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산의리유적은 1998년 공주와 부여를 연결하는 국도 32호선 확장부지에 대한 조사와 1999년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부지에 대한 조사를 통하여 확인되었다. 조사는 공주대학교박물관에 의해서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청동기시대부터 백제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산의리유적에서 확인된 청동기시대 유적은 생활유적과 분묘유적이 함께 조사된 서기전 7∼6세기대의 것인데, 특히 다량의 저장시설이 남아 있었다. 백제시대 고분은 5세기 후반부터 6세기 중·후반 경에 조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공주 산의리유적은 남북방향으로 길게 연결된 능선의 남향과 남서향사면 일대에 분포한다. 1998년도의 조사지역은 능선의 선상부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청동기시대 주거지와 저장구덩이 그리고 돌널무덤[石棺墓]이 있고, 경사면에는 백제시대의 고분이 자리한다. 1차 조사에서 청동기시대 주거지 8기, 저장구덩이 41기, 돌널무덤 28기, 독널무덤[甕棺墓] 8기, 그리고 백제시대 돌방무덤[石室墳] 40기와 독널무덤 4기가 확인되어 청동기시대 생활문화와 백제시대 고분문화를 모두 파악할 수 있었다. 1999년도의 2차 조사지역은 1차 조사지역에서 남쪽으로 약 0.5㎞의 거리에 있는 고속도로 관통 구간인데, 여기에서 백제시대 돌방무덤 46기가 발굴조사 되었다. 따라서 산의리유적에서 조사된 백제시대 고분은 돌방무덤 86기와 독널무덤 4기가 된다. 이들 돌방무덤은 굴식[橫穴式] 30기, 앞트기식[橫口式] 31기, 구덩식[竪穴式] 17기, 미상 8기로 구분된다.
청동기시대 유적은 생활유구와 분묘유구가 조사되었는데, 각자 구분된 영역에 입지하는 특징을 보인다. 원형 주거지는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있는 소위 ‘송국리형 주거지’ 유형이고 이들 주거지의 주변에는 플라스크형 저장 구덩이가 밀집되어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들 주거지와 이격된 거리에 분묘유적으로 돌널무덤과 독널무덤이 있는데 생활유적과는 별도의 구릉 선상부에 등고선 방향을 따라 장축을 두고 조영한 것이다. 돌널무덤은 지하에 묘광을 파고 여러 매의 판석을 세워서 축조하였다. 독널무덤은 송국리형 토기를 세워서 만든 것으로, 돌널무덤 밀집지역의 외곽에 분포한다.
백제시대의 무덤 중에서 굴식 돌방무덤[橫穴式 石室墳]은 지하에 묘광을 파고 석축으로 평면 장방형의 무덤방[墓室]을 조성하였다. 무덤방의 규모는 길이 200∼385㎝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데, 장단비는 2 : 1 내외이다. 천장은 궁륭식(穹窿式)과 터널형, 그리고 평천장이 확인되며, 연도는 중앙연도도 일부 확인되지만 대부분 우편재이다. 앞트기식 돌방무덤[橫口式 石室墳]은 한쪽 벽면 전체를 입구로 사용한 다음 폐쇄하였는데, 등고선과 직교한다. 무덤방 평면은 세장방형이다. 앞트기식 돌방무덤에서의 단계적 변화상이 확인되는데, 규모는 길이 130∼260㎝ 내외로 굴식 돌방무덤보다 작다. 구덩식 돌덧널무덤[竪穴式 石槨墓]은 단장묘에 등고선과 나란하게 장축을 이루는데, 특히 입구가 없으며 관재가 발견되지 않는다. 산의리 구덩식 돌덧널무덤의 경우는 널받침[棺臺]이 시설되었거나 관정이 수습되는 것이 다수 확인된다. 즉 나무널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판단되는데, 이와 같은 나무널의 사용은 굴식 돌방무덤의 영향에 의한 것으로 판단된다.
출토된 유물은 청동기시대 주거지에서는 토기와 석기가 주종을 이루나 돌널무덤의 부장유물은 거의 없는 상태이다. 백제시대의 무덤에 부장된 유물은 묘제 유형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토기와 장신구, 그리고 널못[棺釘]으로 구분되는데, 토기가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한다. 토기는 세발토기[三足土器]·뚜껑접시[蓋杯]·짧은목항아리[短頸壺]·곧은입항아리[直口壺]·장군항아리[橫缶壺]·어깨있는항아리[有肩壺]·병모양토기[甁形土器]·바리모양토기[鉢形土器]·작은항아리[小形壺] 등이 있다. 장신구는 금동제귀걸이와 옥이 있으며, 철기류는 쇠도끼[鐵斧]와 쇠손칼[鐵刀子] 일부를 제외하면 널못이 대부분이다.
공주 산의리유적 가운데 청동기시대 유적은 주거지 외곽에 대규모의 저장시설을 갖추고 있어 동시대의 생활문화상을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생활유적과 분묘유적이 세트를 이루면서 잔존하는 유적이다. 그리고 백제시대 고분군은 구덩식 돌덧널무덤에서 굴식·앞트기식 돌방무덤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형이 조사되어 백제의 웅진천도를 전후한 시기부터 사비도읍기에 이르는 시기의 고분문화상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