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사 응진전 석조석가여래삼존상 복장물 일괄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사 응진전의 석조석가여래삼존상에서 나온, 발원문을 포함하여 후령통, 『묘법연화경』 낱장, 「관세음보살보협수진언」 등의 복장물이다. 이 복장물은 불상과 같은 시기에 제작되어 납입되었고, 응진전의 중창 시기와 참여 인명이 기록되어 있다.
장안사(長安寺) 응진전(應眞殿)의 석조석가여래삼존좌상(石造釋迦如來三尊坐像) 복장물(腹藏物)에는 발원문(發願文)을 포함하여 후령통(喉鈴筒), 『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낱장, 「관세음보살보협수진언(觀世音菩薩寶篋手眞言)」 등이 있다.
가장 윗부분에 발원문이 있고, 다음에 『묘법연화경』, 후령통, 「관세음보살보협수진언」, 다라니(陀羅尼) 순서로 납입되었다. 석가여래좌상의 밑바닥에는 태의(太儀)가 시주한 다라니가 발견되었다.
『법화경(法華經)』은 1668년(현종 9) 울산 운흥사(雲興寺)에서 개판한 동일 판본의 인출지이다. 원래 7권본이지만 권1만을 간행하였다.
『법화경』의 구성은 권두에 2장으로 된 변상도(變相圖), 「묘법연화경홍전서(妙法蓮華經弘傳序)」, 「묘법연화경요해서(妙法蓮華経要解序)」 및 계환해(戒環解)가 있다.
변상도는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로 2매의 판에 새겼는데, 광곽 바깥 좌우 하단에는 시주자 명이 새겨져 있다.
제1판의 우측 하단에는 ‘태영비구(太英比丘)’, 좌측 하단에는 ‘이립양주(李立兩主)’, 제2판의 우측 하단에는 ‘김천수(金千秀)’, 좌측 하단에는 ‘막덕양주(莫德兩主)’라는 시주자 명이 각각 새겨져 있다.
본문이 끝난 다음에 간기(刊記)와 간역질(刊役秩)이 있다.
간기는 “강희칠년칠월일(康熙七年七月日) 경상도울산서운흥사개판(慶尙道蔚山西雲興寺開板)”이므로 1668년에 울산 운흥사에서 개판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각수(刻手)는 계신(戒信)이고 화주(化主)는 학훈(學勳)과 연희(演熙)이다.
석가여래좌상에서는 62장이 수습되었는데, 변상도부터 권말까지 권1의 전체가 결장(缺張) 없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
미륵보살좌상에서는 14장이 수습되었는데, 변상도 2장과 장40~51의 12장이다. 좌측 여백에 ‘지득선(池得先)’이라는 시주자 이름이 묵서되어 있다.
제화갈라보살좌상에서는 23장이 수습되었는데, 변상도 2장과 장31~51의 21장이다. 좌측 여백에 ‘수찬(粹贊)’이라는 시주자 명이 묵서되어 있다.
석가여래좌상에서 수습된 조성 발원문은 앞면의 1행에 “강희이십삼년갑자오월일(康熙貳拾參年甲子五月日) 경상도기장현중북면불광산장안사(慶尙道機張縣中北面佛光山長安寺)"라는 기록과 함께 나한인권화주(羅漢引勸化主)로 영각(靈覺)을 비롯한 인명이 나열되어 있다.
이어 장안사의 승려 조직과 법명, 147명의 시주질(施主秩)이 기록되어 있다.
발원문을 보면 응진전 불상의 제작 시기가 1684년(숙종 10)이며, 이 불사에 참여한 시주자들은 주로 승려와 재가신도들로 구성되었다.
또한, 「관세음보살보협수진언」, 다라니에 시주자 이름을 묵서한 예가 많으며 경전을 시주하거나 불상 조성에 참여한 인물과 일치한다.
김방한(金邦翰, 1635~1698)이 1660년(현종 1)에 쓴 「장안사대웅전기(長安寺大雄殿記)」에 1638년(인조 16)에 태의(太儀)가 좌우 전각을 중건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응진전과 명부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복장물 가운데 다라니의 시주자로 태의가 등장하므로 응진전의 중창자가 복장물의 다라니에서도 확인된다.
장안사 응진전의 복장물은 발원문과 후령통, 각종 전적, 다라니 등이 불상과 같은 시기에 제작되어 납입되었고, 응진전의 중창 시기와 참여 인명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자료는 지역 사원의 동향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므로 조선 후기 지역 불교사, 미술사 연구에 도움이 된다. 국가유산의 가치를 인정받아 2016년 9월 21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