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관무량수불경(御製觀無量壽佛經)』은 조선 후기 1611년(광해군 3)에 간행한 목판본 불경이다. 충청북도 단양군 구인사 도서인 이 불경은 명의 인종이 그의 선왕 태종의 명복을 빌기 위해 간행한 『관무량수불경』의 목판본이다.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의 하나로서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조선시대의 불교 신앙을 살펴보는 데 있어서 자료적 가치가 높다.
원가원년(元嘉元年)인 424년에 건업(建業)에 온 서역 출신 승려 강량야사(畺良耶舍, 383~442)가 한역(漢譯)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53년(철종 4)에 삼각산(三角山) 내원암(內院庵)에서 간행한 판본(서울대학교 규장각 도서)은 10행 20자로 되어 있지만, 국가유산청 국가기록문화유산 포털에 소개된 이 책의 이미지는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 사이트의 실상사 개판본(1611년)과 동일하게 7행 16자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실상사 개판본을 인출(印出)한 것으로 보인다. 크기는 세로 34.0㎝, 가로 20.9㎝, 장정은 선장본(線裝本)이며, 1권 1책으로서 유실된 표지를 제외한 본문은 총 53장으로 되어 있다.
「어제서(御製序)」는 홍희원년(洪熙元年)[1425년(세종 7)]에 작성되었지만, 「후서(後序)」는 대명경태2년 세차신미(大明景泰二年 歲次辛未)[1451년(문종 1)]에 도부(道孚, 1372~1456)에 의해 작성되었다. 또한, 책 마지막의 시주질(施主秩)은 만력 39년 신해(萬曆三十九年 辛亥)[1611년(광해군 3)]에 작성되었다.
곧 이 책은 명나라 제4대 인종(14241425 재위) 때의 초판본과 제7대 대종(14491457 재위) 때의 재판본에 기초하여 조선시대 광해군(1608~1623 재위) 대에 간행된 것이다. 다만, 시주질은 단지 시주자의 명단만을 기록하고 있어서 자세한 간행 경위는 알 수 없다.
『관무량수불경(觀無量壽佛經)』은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무량수불경(無量壽佛經), 무량수불관경(無量壽佛觀經), 십육관경(十六觀經), 관경(觀經) 등으로 불린다.
여기에서 ‘16관’이란 인도 마가다국의 왕인 빔비사라(Bimbisāra=頻婆娑羅)가 왕자인 아자타샤트루(Ajātaśatru=阿闍世)에 의해 감옥에 갇히고 나서 왕비 와이데히(Vaidehī=韋提希)와 함께 기도하자 이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부처가 알려 준 열여섯 가지 관법을 가리킨다.
구체적으로는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태어나기 위해 그곳의 해지는 모습, 그곳의 칠보(七寶)로 된 연못의 물, 그곳의 땅, 관세음, 대세지 등의 보살의 모습 등을 관찰하는 방법 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어제서」와 본문 앞에는 16관(觀)과 관련된 변상도(變相圖)가, 「후서」 다음의 제37장에는 허주 덕진(虛舟 德真)의 『 정토감주(淨土紺珠)』에 나오는 16관에 대한 게송(偈頌)이 수록되어 있다.
『관무량수불경』은 많은 학자들이 위경(僞經)으로 간주하고 있지만, 『 무량수경(無量壽經)』 및 『 아미타경(阿彌陀經)』과 함께 정토삼부경으로 불릴 만큼 정토신앙에서는 중시되었다.
후자의 두 경전이 아미타불(무량수불)의 이름을 외우는 수행, 곧 칭명염불(稱名念佛)을 강조한다면, 이 경전은 이 부처가 있는 극락세계의 구체적 모습을 떠올리는 관상(觀想) 수행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는 정토신앙을 보다 풍부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였다고 볼 수 있다.
구인사 도서인 이 판본은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16관과 변상도가 포함되어 있는 등 조선시대의 불교 신앙과 관련하여 자료적 가치가 높다. 2004년 10월 22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