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광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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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상징하는 법신불을 형상화한 불상.
비로자나불상 (毘盧遮▽那佛像)
진리를 상징하는 법신불을 형상화한 불상.
진주민란은 1200년(신종 3) 진주에서 공 · 사 노비가 중심이 되어 일으킨 저항이다. 공 · 사 노비는 관청과 개인에게 예속된 천민으로 가혹한 노역에 동원될 수 있었다. 진주의 공 · 사 노비가 향리[州吏]의 집을 불태웠다는 것은 이들의 노역을 직접 담당했던 자들에 대한 불만이었을 것이다. 특히, 진주는 최씨 무신정권의 집정자 최충헌(崔忠獻)의 식읍(食邑)으로, 지배층의 수탈이 가속화되어 이 지역 일반 백성들의 불만을 일으켰던 것으로 보인다.
진주민란 (晋州民亂)
진주민란은 1200년(신종 3) 진주에서 공 · 사 노비가 중심이 되어 일으킨 저항이다. 공 · 사 노비는 관청과 개인에게 예속된 천민으로 가혹한 노역에 동원될 수 있었다. 진주의 공 · 사 노비가 향리[州吏]의 집을 불태웠다는 것은 이들의 노역을 직접 담당했던 자들에 대한 불만이었을 것이다. 특히, 진주는 최씨 무신정권의 집정자 최충헌(崔忠獻)의 식읍(食邑)으로, 지배층의 수탈이 가속화되어 이 지역 일반 백성들의 불만을 일으켰던 것으로 보인다.
평양시 서성구역 와산동에 있는 과학기술통보사 기관.
중앙과학기술통보사 (中央科學技術通報社)
평양시 서성구역 와산동에 있는 과학기술통보사 기관.
자전거경주에 승자투표권을 발매하고 승자투표 적중자에게 배당금을 주는 오락성 레저스포츠. 자전거경주.
경륜 (競輪)
자전거경주에 승자투표권을 발매하고 승자투표 적중자에게 배당금을 주는 오락성 레저스포츠. 자전거경주.
충청남도 예산군 수덕사에 소장된 고려말 문수사 금동여래좌상의 복장유물.
서산 문수사 금동 여래 좌상 복장유물 (瑞山 文殊寺 金銅 如來 坐像 腹藏遺物)
충청남도 예산군 수덕사에 소장된 고려말 문수사 금동여래좌상의 복장유물.
경기도 광명시 오리로 747번길 5-6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인 이원익의 종가(宗家) 박물관.
충현박물관 (忠賢博物館)
경기도 광명시 오리로 747번길 5-6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인 이원익의 종가(宗家) 박물관.
미추이사금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13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262~284년이다. 석씨족 첨해이사금의 뒤를 이어 김씨족으로서는 처음으로 왕위에 올랐다. 미추이사금은 즉위 후 아버지인 구도를 갈문왕으로 추봉하여 김씨족의 정치적 위상을 고양시켰고, 남당을 통해 왕권을 행사했다. 미추이사금 이후 왕위가 다시 석씨로 넘어간 것을 보면 김씨족이 석씨족을 압도할 만큼 지속적으로 권력 강화를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신라사에서 실질적인 김씨 왕실의 시작으로서 내물왕 이후 김씨 왕실이 세습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미추이사금 (味鄒尼師今)
미추이사금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13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262~284년이다. 석씨족 첨해이사금의 뒤를 이어 김씨족으로서는 처음으로 왕위에 올랐다. 미추이사금은 즉위 후 아버지인 구도를 갈문왕으로 추봉하여 김씨족의 정치적 위상을 고양시켰고, 남당을 통해 왕권을 행사했다. 미추이사금 이후 왕위가 다시 석씨로 넘어간 것을 보면 김씨족이 석씨족을 압도할 만큼 지속적으로 권력 강화를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신라사에서 실질적인 김씨 왕실의 시작으로서 내물왕 이후 김씨 왕실이 세습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인천광역시 부평구 십정동에 있는 사립 특수학교.
인천혜광학교 (仁川惠光學校)
인천광역시 부평구 십정동에 있는 사립 특수학교.
『합부금광명경석독구결』은 고려본 『합부금광명경』의 한문 원문을 우리말로 풀어 읽을 수 있도록 토를 단 불교경전이며 구결서이다. 문자를 사용하는 자토석독구결과 점을 찍거나 선을 긋는 점토석독구결을 모두 기입한 특이한 형태의 구결서이다. 이 책은 597년 수나라의 보귀가 번역한 『합부금광명경』의 제3권으로 13세기 초에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점토구결은 각필로 찍어 나타낸 것도 있으나 대체로 먹물로 기입하였다. 구결 기입은 13세기 초로 추정된다. 점토구결과 자토구결의 대응 관계를 직접 살펴볼 수 있어 구결 해독에 중요한 자료이다.
합부금광명경석독구결 (合部金光明經釋讀口訣)
『합부금광명경석독구결』은 고려본 『합부금광명경』의 한문 원문을 우리말로 풀어 읽을 수 있도록 토를 단 불교경전이며 구결서이다. 문자를 사용하는 자토석독구결과 점을 찍거나 선을 긋는 점토석독구결을 모두 기입한 특이한 형태의 구결서이다. 이 책은 597년 수나라의 보귀가 번역한 『합부금광명경』의 제3권으로 13세기 초에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점토구결은 각필로 찍어 나타낸 것도 있으나 대체로 먹물로 기입하였다. 구결 기입은 13세기 초로 추정된다. 점토구결과 자토구결의 대응 관계를 직접 살펴볼 수 있어 구결 해독에 중요한 자료이다.
『유가사지론』의 한문 원문을 우리말로 풀어 읽을 수 있도록 각필(角筆)로 토를 단 불교경전. 구결서.
유가사지론각필구결 (瑜伽師地論角筆口訣)
『유가사지론』의 한문 원문을 우리말로 풀어 읽을 수 있도록 각필(角筆)로 토를 단 불교경전. 구결서.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 객사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담양동초등학교 (潭陽東初等學校)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 객사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삼국시대 신라의 제17대 나물왕의 왕비.
보반부인 (保反夫人)
삼국시대 신라의 제17대 나물왕의 왕비.
한중협회는 1921년 9월 27일 중국 광저우[廣州]에서 조직된 한국 독립지원단체이다. 임시정부 및 한국 측 인사와 중국 국민당 및 기타 중국 측 인사들이 한국 독립과 한중 우호를 위한 협조를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기관지 『광명월보(光明月報)』 를 발행하기 위한 기부금을 모집하고, 4개의 부서를 두어 업무를 담당하게 하였다.
한중협회 (韓中協會)
한중협회는 1921년 9월 27일 중국 광저우[廣州]에서 조직된 한국 독립지원단체이다. 임시정부 및 한국 측 인사와 중국 국민당 및 기타 중국 측 인사들이 한국 독립과 한중 우호를 위한 협조를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기관지 『광명월보(光明月報)』 를 발행하기 위한 기부금을 모집하고, 4개의 부서를 두어 업무를 담당하게 하였다.
『금광명경소』는 우리나라에서 찬술된 『금광명경』에 대한 주석서 중 최초의 저술이다. 현재 전해지는 『금광명경』 세 가지 한역본 중 보귀가 편찬한 『합부금광명경(合部金光明經)』을 대본으로 삼아서 각 구절을 상세하게 풀이하였다.
금광명경소 (金光明經疏)
『금광명경소』는 우리나라에서 찬술된 『금광명경』에 대한 주석서 중 최초의 저술이다. 현재 전해지는 『금광명경』 세 가지 한역본 중 보귀가 편찬한 『합부금광명경(合部金光明經)』을 대본으로 삼아서 각 구절을 상세하게 풀이하였다.
개신교 목사 유여대가 위인들의 일화를 편집하여 1935년에 편찬한 전기. 일화집.
위인기담 (偉人奇談)
개신교 목사 유여대가 위인들의 일화를 편집하여 1935년에 편찬한 전기. 일화집.
명신여학교는 1913년 중국 길림성 간도 용정에 설립한 기독교계 학교이다. 중국 길림성 간도 용정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캐나다 장로파 선교사 박걸(朴傑, A.H.Barker)과 그의 부인 레베카가 조선인 소녀들의 교육을 목적으로 설립한 기독교계 학교이다. 1920년 6월 중학교로 승격되어 명신여자중학교가 되었다. 1941년 설립자들이 용정에서 철수한 후, 1943년 다른 학교와 병합되었다가 1945년 다시 회복되었고, 1946년 다른 5개의 중학교와 함께 길림성립용정중학교가 되었다.
명신여학교 (明新女學敎)
명신여학교는 1913년 중국 길림성 간도 용정에 설립한 기독교계 학교이다. 중국 길림성 간도 용정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캐나다 장로파 선교사 박걸(朴傑, A.H.Barker)과 그의 부인 레베카가 조선인 소녀들의 교육을 목적으로 설립한 기독교계 학교이다. 1920년 6월 중학교로 승격되어 명신여자중학교가 되었다. 1941년 설립자들이 용정에서 철수한 후, 1943년 다른 학교와 병합되었다가 1945년 다시 회복되었고, 1946년 다른 5개의 중학교와 함께 길림성립용정중학교가 되었다.
한이순은 1919년 천안에서 3·1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06년 충청남도 천안군에서 태어났다. 사립 여학교인 광명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13세의 나이로 3·1운동에 참여하였다. 학교 인근의 천안 양대리장터에서 광명학교 학생 80여 명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어 다수의 일반 시민과 함께 이웃 마을 장터로 옮겨가 시위를 지속하다가 군경에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한이순 (韓二順)
한이순은 1919년 천안에서 3·1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06년 충청남도 천안군에서 태어났다. 사립 여학교인 광명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13세의 나이로 3·1운동에 참여하였다. 학교 인근의 천안 양대리장터에서 광명학교 학생 80여 명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어 다수의 일반 시민과 함께 이웃 마을 장터로 옮겨가 시위를 지속하다가 군경에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황금순은 1919년 천안 양대리장터 3·1운동을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02년 충청남도 천안군에서 태어났다. 1919년 사립 여학교인 광명학교 재학 중에 천안 양대리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30년에는 홍성공립공업전문학교 학생들이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여 일으킨 동맹휴학의 배후 인물로 지목되어 고초를 겪었다.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황금순 (黃金順)
황금순은 1919년 천안 양대리장터 3·1운동을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02년 충청남도 천안군에서 태어났다. 1919년 사립 여학교인 광명학교 재학 중에 천안 양대리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30년에는 홍성공립공업전문학교 학생들이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여 일으킨 동맹휴학의 배후 인물로 지목되어 고초를 겪었다.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민옥금은 일제강점기 천안 양대리 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사립 광명여학교 재학 중에 임영신, 한이순 등과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후 3월 17일 태극기를 제작하고 3월 20일에 학생 80여 명과 함께 양대리 장터로 나가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불어난 시위대와 함께 입장 장터로 향하던 중 체포되어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1920년 2월 7일 가출옥하였으며, 이후 호수돈여학교와 감리교신학교에서 수학하였다. 해방 후 조선여자국민당 상무간사를 역임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민옥금 (閔玉錦)
민옥금은 일제강점기 천안 양대리 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사립 광명여학교 재학 중에 임영신, 한이순 등과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후 3월 17일 태극기를 제작하고 3월 20일에 학생 80여 명과 함께 양대리 장터로 나가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불어난 시위대와 함께 입장 장터로 향하던 중 체포되어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1920년 2월 7일 가출옥하였으며, 이후 호수돈여학교와 감리교신학교에서 수학하였다. 해방 후 조선여자국민당 상무간사를 역임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