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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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활란은 일제강점기 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연합회 재단이사장, 대한기독교교육자협회 회장 등을 역임한 개신교인이다. 교육자이며 친일반민족행위자이기도 하다. 1899년에 태어나 1970년에 사망했다. 한국 최초의 여성 대학졸업자이며 미국에 유학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3·1운동 비밀결사에 참여하고 YWCA를 창설했으며 여성운동과 개신교 활동에 전념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친일활동에 가담하여 각종 단체를 결성하거나 발기인으로 참석하는 등 일제의 조선인 동원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해방 후에는 교육자·여성운동가·종교활동가로 활약했다.
김활란 (金活蘭)
김활란은 일제강점기 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연합회 재단이사장, 대한기독교교육자협회 회장 등을 역임한 개신교인이다. 교육자이며 친일반민족행위자이기도 하다. 1899년에 태어나 1970년에 사망했다. 한국 최초의 여성 대학졸업자이며 미국에 유학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3·1운동 비밀결사에 참여하고 YWCA를 창설했으며 여성운동과 개신교 활동에 전념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친일활동에 가담하여 각종 단체를 결성하거나 발기인으로 참석하는 등 일제의 조선인 동원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해방 후에는 교육자·여성운동가·종교활동가로 활약했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교관, 조선의용대 부녀복무단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근우회, 의열단 등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박차정 (朴次貞)
일제강점기 때,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교관, 조선의용대 부녀복무단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근우회, 의열단 등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근우회 중앙집행위원, 조선혁명군정학교 교육과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북한에서, 북조선인민위원회 선전부장, 조선민주여성동맹 중앙위원회 서기장 등을 역임한 관료·독립운동가.
허정숙 (許貞淑)
일제강점기 때, 근우회 중앙집행위원, 조선혁명군정학교 교육과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북한에서, 북조선인민위원회 선전부장, 조선민주여성동맹 중앙위원회 서기장 등을 역임한 관료·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조선여성동우회 집행위원, 근우회 중앙집행위원 등을 역임한 여성운동가. 사회주의운동가·정치인.
정칠성 (丁七星)
일제강점기 조선여성동우회 집행위원, 근우회 중앙집행위원 등을 역임한 여성운동가. 사회주의운동가·정치인.
일제강점기 때, 평양에서 여성만세운동을 주도하였고, 대한애국부인회와 근우회 등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으며, 해방 이후, 대한부인회 최고위원,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박현숙 (朴賢淑)
일제강점기 때, 평양에서 여성만세운동을 주도하였고, 대한애국부인회와 근우회 등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으며, 해방 이후, 대한부인회 최고위원,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주세죽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여성해방운동가, 독립운동가이다. 중국 상하이에서 유학 중 사회주의 이론을 학습하였고, 귀국 후 사회주의 여성운동 단체인 조선여성동우회와 근우회를 주도하였다. 소련의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서 공부하였으나, 소련에서 카자흐스탄 유배형을 받는 등 고난을 겪었다.
주세죽 (朱世竹)
주세죽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여성해방운동가, 독립운동가이다. 중국 상하이에서 유학 중 사회주의 이론을 학습하였고, 귀국 후 사회주의 여성운동 단체인 조선여성동우회와 근우회를 주도하였다. 소련의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서 공부하였으나, 소련에서 카자흐스탄 유배형을 받는 등 고난을 겪었다.
근우회 도쿄지회는 1928년 결성된 근우회 일본지회의 하나이다. 1927년 신간회 본부가 결성되자 여성운동계 내부에서 여성운동의 통합운동이 일어나 근우회가 조직되면서, 일본 도쿄에서도 근우회 지회가 조직되었다. 위원장 박화성을 비롯해 이완구, 박봉순 등이 역원으로 선출되었다. 신간회 도쿄지회와 사무실을 함께 쓰며 다수의 활동을 같이 하였다. 근우회 정기 전국대회를 둘러싸고 본부와의 갈등이 있었다. 집행부 조직을 통해 적극적인 사업을 전개하였는데, 1928년 3월부터 전개된 여성문제 대강연회와 같은 선전, 선동활동도 있었다. 신간회 도쿄지회의 해산과 함께 해산하였다.
근우회 도쿄지회 (槿友會 東京支會)
근우회 도쿄지회는 1928년 결성된 근우회 일본지회의 하나이다. 1927년 신간회 본부가 결성되자 여성운동계 내부에서 여성운동의 통합운동이 일어나 근우회가 조직되면서, 일본 도쿄에서도 근우회 지회가 조직되었다. 위원장 박화성을 비롯해 이완구, 박봉순 등이 역원으로 선출되었다. 신간회 도쿄지회와 사무실을 함께 쓰며 다수의 활동을 같이 하였다. 근우회 정기 전국대회를 둘러싸고 본부와의 갈등이 있었다. 집행부 조직을 통해 적극적인 사업을 전개하였는데, 1928년 3월부터 전개된 여성문제 대강연회와 같은 선전, 선동활동도 있었다. 신간회 도쿄지회의 해산과 함께 해산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연맹을 창설하고, 근우회 조직활동에 참여한 교육자·독립운동가.
김성무 (金聖姆)
일제강점기 때,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연맹을 창설하고, 근우회 조직활동에 참여한 교육자·독립운동가.
경성여자소비조합은 1930년 경성에 설립되었던 여성 소비조합이다. 설립 목적은 생산자와의 직거래를 통해 조합원의 경제생활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조합원은 경성 및 인근에 거주하는 여성으로 한정하였으며, 1구좌당 5원의 가입비를 납부하였다. 직접 대리점을 개업하거나 타 상점과 특약을 맺어 조합원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학교와 병원 등에 상품을 공급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경성여자소비조합 (京城女子消費組合)
경성여자소비조합은 1930년 경성에 설립되었던 여성 소비조합이다. 설립 목적은 생산자와의 직거래를 통해 조합원의 경제생활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조합원은 경성 및 인근에 거주하는 여성으로 한정하였으며, 1구좌당 5원의 가입비를 납부하였다. 직접 대리점을 개업하거나 타 상점과 특약을 맺어 조합원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학교와 병원 등에 상품을 공급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윤선녀는 1930년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는 만세시위를 주도하고 근우회 회원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보흥여학교 재학 중이던 1930년 1월 근우회 회령지회 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다. 같은 달 보흥여학교에서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는 만세시위를 주도하였고, 2월에는 청진고등여학교 학생들과 만세시위를 모의하였다. 그러나 시위 모의가 발각되어 체포되었고,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윤선녀 (尹仙女)
윤선녀는 1930년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는 만세시위를 주도하고 근우회 회원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보흥여학교 재학 중이던 1930년 1월 근우회 회령지회 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다. 같은 달 보흥여학교에서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는 만세시위를 주도하였고, 2월에는 청진고등여학교 학생들과 만세시위를 모의하였다. 그러나 시위 모의가 발각되어 체포되었고,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이혜경은 일제강점기에 대한민국애국부인회와 근우회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진성여학교 교사로 있던 1919년 10월 김마리아와 함께 대한민국애국부인회의 개편을 주도하였고, 부회장 및 원산지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11월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만기 출옥 후에 성경학원 교사로 재직하였으며, 1928년에는 근우회 대구지회에서 활동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이혜경 (李惠卿)
이혜경은 일제강점기에 대한민국애국부인회와 근우회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진성여학교 교사로 있던 1919년 10월 김마리아와 함께 대한민국애국부인회의 개편을 주도하였고, 부회장 및 원산지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11월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만기 출옥 후에 성경학원 교사로 재직하였으며, 1928년에는 근우회 대구지회에서 활동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강평국은 일제강점기 3·1운동에 참여하고, 제주여자청년회, 근우회 도쿄지회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에 재학 중 서울의 3·1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말 졸업 후, 7년여간 제주 및 전라남도 일대에서 보통학교 교원으로 재직하였다. 또한 제주 지역에 여러 여성 단체를 설립하여 여성의 지위 향상에 힘썼다. 1926년 도쿄에서 유학하며, 근우회 도쿄지회, 동경조선노동조합 동부지부 부인부 등에서 활동하였다. 201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강평국 (姜平國)
강평국은 일제강점기 3·1운동에 참여하고, 제주여자청년회, 근우회 도쿄지회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에 재학 중 서울의 3·1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말 졸업 후, 7년여간 제주 및 전라남도 일대에서 보통학교 교원으로 재직하였다. 또한 제주 지역에 여러 여성 단체를 설립하여 여성의 지위 향상에 힘썼다. 1926년 도쿄에서 유학하며, 근우회 도쿄지회, 동경조선노동조합 동부지부 부인부 등에서 활동하였다. 201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안애자는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대한애국부인회 진남포지회 회장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5월 평양에서 대한애국부인회 진남포지회를 조직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후원,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 외 민립대학설립운동, 근우회, 신간회 등에 참여하였으며, 진남포 지역 사회사업에도 헌신하였다.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안애자 (安愛慈)
안애자는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대한애국부인회 진남포지회 회장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5월 평양에서 대한애국부인회 진남포지회를 조직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후원,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 외 민립대학설립운동, 근우회, 신간회 등에 참여하였으며, 진남포 지역 사회사업에도 헌신하였다.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차사백은 일제강점기 중앙보육학교 교원을 역임한 친일 여성 교육가이다. 오사카 램버드여학원 보육전수부에서 유학한 후 중앙유치원 교사를 거쳐 중앙보육학교 교원으로 재직하였다. 유치원 교사 양성에 주력하였는데, 교육법에 있어서는 특히 율동유희를 강조하였다. 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근우회 간부도 지냈다.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을 전후로 애국금차회,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 등에서 활동하며 일제 식민 통치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차사백 (車士伯)
차사백은 일제강점기 중앙보육학교 교원을 역임한 친일 여성 교육가이다. 오사카 램버드여학원 보육전수부에서 유학한 후 중앙유치원 교사를 거쳐 중앙보육학교 교원으로 재직하였다. 유치원 교사 양성에 주력하였는데, 교육법에 있어서는 특히 율동유희를 강조하였다. 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근우회 간부도 지냈다.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을 전후로 애국금차회,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 등에서 활동하며 일제 식민 통치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호진은 일제강점기 천도교여성동맹 중앙집행위원, 근우회 중앙집행위원, 조선청년동맹 중앙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한 여성운동가이다. 1906년 12월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사회주의자이자 천도교인인 이황과 결혼하였다. 중국 광동국립대학 문학과에서 수학한 후 귀국하여 천도교여성동맹, 근우회, 조선청년동맹 등에서 활동하였다. 조선공산당재건협의회 사건으로 피검되어 1932년 3월 25일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박호진 (朴昊辰)
박호진은 일제강점기 천도교여성동맹 중앙집행위원, 근우회 중앙집행위원, 조선청년동맹 중앙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한 여성운동가이다. 1906년 12월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사회주의자이자 천도교인인 이황과 결혼하였다. 중국 광동국립대학 문학과에서 수학한 후 귀국하여 천도교여성동맹, 근우회, 조선청년동맹 등에서 활동하였다. 조선공산당재건협의회 사건으로 피검되어 1932년 3월 25일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김필수는 일제강점기 중앙여자청년동맹, 근우회 등에서 활동하고, 태평양노동조합운동과 조선공산당재건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26년 12월 서울 낙원동에서 중앙여자청년동맹에 참여하였고, 1928년 7월에는 근우회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그해 10월 소련으로 건너가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서 수학 후 수차례 국내를 오가며 활동하였다. 1933년 5월부터 흥남, 함흥 등지를 중심으로 태평양노동조합운동과 조선공산당재건운동에 참여하였다.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김필수 (金必壽)
김필수는 일제강점기 중앙여자청년동맹, 근우회 등에서 활동하고, 태평양노동조합운동과 조선공산당재건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26년 12월 서울 낙원동에서 중앙여자청년동맹에 참여하였고, 1928년 7월에는 근우회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그해 10월 소련으로 건너가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서 수학 후 수차례 국내를 오가며 활동하였다. 1933년 5월부터 흥남, 함흥 등지를 중심으로 태평양노동조합운동과 조선공산당재건운동에 참여하였다.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강향란은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최초의 단발 여성이자, 근우회 경성지회 설립에 참여한 민족운동가이다. 기생 출신이며, 일제 강점기에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단발을 해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경성의 배화여학교에 다녔고, 남자 강습소에서도 배우려고 하였다. 일본에서 잠시 유학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1925년에 기자로 활동하였고, 1926년에는 이경손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였다. 이후 1928년부터는 항일 여성운동 단체인 근우회 경성지회 설립에 참여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강향란 (姜香蘭)
강향란은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최초의 단발 여성이자, 근우회 경성지회 설립에 참여한 민족운동가이다. 기생 출신이며, 일제 강점기에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단발을 해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경성의 배화여학교에 다녔고, 남자 강습소에서도 배우려고 하였다. 일본에서 잠시 유학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1925년에 기자로 활동하였고, 1926년에는 이경손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였다. 이후 1928년부터는 항일 여성운동 단체인 근우회 경성지회 설립에 참여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길정희는 일제강점기 경성여자의학강습소를 설립하고 운영한 여성 의사이다. 1923년 도쿄여자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도쿄제국대학 의학부 연구실을 거쳐 조선총독부의원 소아과에서 수련의 생활을 하였다. 1924년부터는 동대문여성병원 산부인과와 소아과에서 근무하였다. 1928년 5월 로제타 셔우드 홀과 조선여자의학강습소를 개소하였고, 1933년에는 강습소의 운영권을 인수해 경성여자의학강습소로 이름을 바꾸었다. 1927년 근우회 창립에 발기인으로 참여하는 등 여성 운동에도 적극적이었다.
길정희 (吉貞姬)
길정희는 일제강점기 경성여자의학강습소를 설립하고 운영한 여성 의사이다. 1923년 도쿄여자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도쿄제국대학 의학부 연구실을 거쳐 조선총독부의원 소아과에서 수련의 생활을 하였다. 1924년부터는 동대문여성병원 산부인과와 소아과에서 근무하였다. 1928년 5월 로제타 셔우드 홀과 조선여자의학강습소를 개소하였고, 1933년에는 강습소의 운영권을 인수해 경성여자의학강습소로 이름을 바꾸었다. 1927년 근우회 창립에 발기인으로 참여하는 등 여성 운동에도 적극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