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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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김제군수, 창원부사,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김여량 (金汝亮)
조선 후기에, 김제군수, 창원부사,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가례집람(家禮輯覽)』은 1599년 김장생이 주자의 『가례(家禮)』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돕고, 더 나아가 『가례』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수정하기 위해 편찬한 예법에 관한 책이다. 16세기 조선의 『가례(家禮)』 연구는 초기에 행례의 매뉴얼을 마련하는 수준에서 중기에는 『가례』를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단계에 진입하였고, 후기로 가면서 『가례』의 문제점을 찾아 이를 고증하고 보완하는 차원으로 나아갔다.
가례집람 (家禮輯覽)
『가례집람(家禮輯覽)』은 1599년 김장생이 주자의 『가례(家禮)』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돕고, 더 나아가 『가례』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수정하기 위해 편찬한 예법에 관한 책이다. 16세기 조선의 『가례(家禮)』 연구는 초기에 행례의 매뉴얼을 마련하는 수준에서 중기에는 『가례』를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단계에 진입하였고, 후기로 가면서 『가례』의 문제점을 찾아 이를 고증하고 보완하는 차원으로 나아갔다.
1651년(효종 2) 김자점의 역모로 일어난 옥사(獄事).
김자점의 옥 (金自點의 獄)
1651년(효종 2) 김자점의 역모로 일어난 옥사(獄事).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있는 조선후기 김장생(金長生)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교육시설.
논산 돈암서원 (論山 遯巖書院)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있는 조선후기 김장생(金長生)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교육시설.
박세채(1631~1695)는 조선 후기 대사헌, 이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자는 화숙, 호는 현석, 남계이며, 시호는 문순이다. 1659년 예송논쟁이 벌어지자 송시열 등과 함께 서인의 기년설을 찬성하였다. 1674년 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하자 파직당하고 유배당했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재집권하자 관직에 복귀하였다. 1684년 회니 시비로 인해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당하자 소론의 편에 섰다. 1694년 갑술환국 때 복귀하여 소론의 영수가 되었다. 이이, 성혼의 문묘 종사를 확정하고, 김육의 대동법을 확산시켰다.
박세채 (朴世采)
박세채(1631~1695)는 조선 후기 대사헌, 이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자는 화숙, 호는 현석, 남계이며, 시호는 문순이다. 1659년 예송논쟁이 벌어지자 송시열 등과 함께 서인의 기년설을 찬성하였다. 1674년 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하자 파직당하고 유배당했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재집권하자 관직에 복귀하였다. 1684년 회니 시비로 인해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당하자 소론의 편에 섰다. 1694년 갑술환국 때 복귀하여 소론의 영수가 되었다. 이이, 성혼의 문묘 종사를 확정하고, 김육의 대동법을 확산시켰다.
조선 후기에, 『송촌집』 등을 저술한 학자.
안음 (安崟)
조선 후기에, 『송촌집』 등을 저술한 학자.
『상례비요(喪禮備要)』는 조선시대 학자 김장생(金長生)이 신의경(申義慶)의 초본을 바탕으로 『가례』의 상례와 제례를 기반으로 하고, 예경 및 후대 중국과 조선의 『가례』 연구서를 참고한 뒤 조선의 시속(時俗)을 반영하여 상례와 제례를 시행할 때 지침이 되도록 마련한 예법에 관한 책이다. 조선의 시속을 반영하여 『가례』를 현지화하는 동시에 고례(古禮)를 중심으로 『가례』를 보완하는 작업을 수행하여 『국조오례의』에 수록된 민간 의례 관련 지침을 한 단계 진전시켰을 뿐 아니라, 이후 조선 민간 의례서의 연구를 선도한 저술이다.
상례비요 (喪禮備要)
『상례비요(喪禮備要)』는 조선시대 학자 김장생(金長生)이 신의경(申義慶)의 초본을 바탕으로 『가례』의 상례와 제례를 기반으로 하고, 예경 및 후대 중국과 조선의 『가례』 연구서를 참고한 뒤 조선의 시속(時俗)을 반영하여 상례와 제례를 시행할 때 지침이 되도록 마련한 예법에 관한 책이다. 조선의 시속을 반영하여 『가례』를 현지화하는 동시에 고례(古禮)를 중심으로 『가례』를 보완하는 작업을 수행하여 『국조오례의』에 수록된 민간 의례 관련 지침을 한 단계 진전시켰을 뿐 아니라, 이후 조선 민간 의례서의 연구를 선도한 저술이다.
조선 중기에, 『원통록』 등을 저술한 학자.
심약기 (沈若沂)
조선 중기에, 『원통록』 등을 저술한 학자.
조선후기 예조좌랑, 제천현감, 사간원정언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윤문거 (尹文擧)
조선후기 예조좌랑, 제천현감, 사간원정언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조선 후기에, 『가례원류』, 『후천도설』, 『노서유고』 등을 저술하였으며, 절친했던 송시열과 학문적으로 대립하면서 노소분파의 계기가 된 학자.
윤선거 (尹宣擧)
조선 후기에, 『가례원류』, 『후천도설』, 『노서유고』 등을 저술하였으며, 절친했던 송시열과 학문적으로 대립하면서 노소분파의 계기가 된 학자.
조선 후기에, 형조참판, 대사헌, 동지경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목 (李楘)
조선 후기에, 형조참판, 대사헌, 동지경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윤증은 조선후기 『명재유고』, 『명재의례문답』, 『명재유서』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629년(인조 7)에 태어나 1714년(숙종 40)에 사망했다. 김집의 문하에서 주자에 관해 배웠고, 송시열에게서 『주자대전』을 배웠다. 효종 말년 학업과 행실이 뛰어난 인물로 조정에 천거되어 여러 관직이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아버지 윤선거의 묘지명을 계기로 송시열과 사제간의 의리가 끊어졌다. 이후 윤증이 송시열을 배반하고 헐뜯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진 치열한 당쟁에서 소론의 영수로서 송시열과 대립했다.
윤증 (尹拯)
윤증은 조선후기 『명재유고』, 『명재의례문답』, 『명재유서』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629년(인조 7)에 태어나 1714년(숙종 40)에 사망했다. 김집의 문하에서 주자에 관해 배웠고, 송시열에게서 『주자대전』을 배웠다. 효종 말년 학업과 행실이 뛰어난 인물로 조정에 천거되어 여러 관직이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아버지 윤선거의 묘지명을 계기로 송시열과 사제간의 의리가 끊어졌다. 이후 윤증이 송시열을 배반하고 헐뜯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진 치열한 당쟁에서 소론의 영수로서 송시열과 대립했다.
조선 후기에, 형조참판, 형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서필원 (徐必遠)
조선 후기에, 형조참판, 형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형조참의, 대사헌,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상 (李翔)
조선 후기에, 형조참의, 대사헌,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재조번방지』 등을 저술한 학자.
신경 (申炅)
조선 후기에, 『재조번방지』 등을 저술한 학자.
조선 후기에, 경양찰방, 사복시주부, 면천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선기 (李善基)
조선 후기에, 경양찰방, 사복시주부, 면천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의례문해(疑禮問解)』는 김장생이 그의 지인 또는 제자들과 의심스러운 예문(禮文)이나 변례(變禮)적 상황 등 이른바 ‘의례(疑禮)’와 관련하여 강론한 자료들을 모아서 엮은 예법에 관한 책이다. 17세기에는 의례(疑禮) 또는 변례(變禮) 문제를 두고 다양한 논변과 문답으로 전개되었는데, 이와 같은 논변과 문답의 과정은 조선의 예학이 스스로 예학적 의제를 제기하고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수준에 도달했음을 뜻한다. 김장생의 『의례문해(疑禮問解)』는 이러한 배경에서 편찬되었다.
의례문해 (疑禮問解)
『의례문해(疑禮問解)』는 김장생이 그의 지인 또는 제자들과 의심스러운 예문(禮文)이나 변례(變禮)적 상황 등 이른바 ‘의례(疑禮)’와 관련하여 강론한 자료들을 모아서 엮은 예법에 관한 책이다. 17세기에는 의례(疑禮) 또는 변례(變禮) 문제를 두고 다양한 논변과 문답으로 전개되었는데, 이와 같은 논변과 문답의 과정은 조선의 예학이 스스로 예학적 의제를 제기하고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수준에 도달했음을 뜻한다. 김장생의 『의례문해(疑禮問解)』는 이러한 배경에서 편찬되었다.
조선 후기에, 청산현감 등을 역임하였으며, 『치암집』 등을 저술한 학자.
이지렴 (李之濂)
조선 후기에, 청산현감 등을 역임하였으며, 『치암집』 등을 저술한 학자.
조선 후기에, 공조참판, 도승지,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이직보 (李直輔)
조선 후기에, 공조참판, 도승지,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정언, 지평,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이익선 (李益烍)
조선 후기에, 정언, 지평,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