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사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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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제25대 철종의 어진을 그린 화가.
김용원 (金鏞元)
조선후기 제25대 철종의 어진을 그린 화가.
금광당사진관은 1925년 김광배가 서울 종로 서린동에 개설한 사진관이다. 1920년대 가장 대중적인 조선인 사진관 중의 하나였다. 관주 김광배는 조선인 사진단체인 경성인상사진연구회를 조직했을 뿐만 아니라 경성사진사협회에 창립회원으로 참여하는 등 사진계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금광당사진관 (金光堂寫眞館)
금광당사진관은 1925년 김광배가 서울 종로 서린동에 개설한 사진관이다. 1920년대 가장 대중적인 조선인 사진관 중의 하나였다. 관주 김광배는 조선인 사진단체인 경성인상사진연구회를 조직했을 뿐만 아니라 경성사진사협회에 창립회원으로 참여하는 등 사진계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암전사진관은1900년경 일본인 사진사 이와타 카나에가 운영한 경성의 사진관이다. 이와타[岩田]사진관이라고도 불린다. 1907년에는 조선을 방문한 일본 황태자 요시히토의 기념사진첩을 제작했다. 1909년 4월 5일 순종 친경식을 기록한 사진첩과 함께 순종, 순종효황후 공식초상사진과 고종태황제의 초상사진을 제작하였다.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의 초상사진엽서를 인쇄해서 팔다가 치안방해죄로 걸리기도 했다.
암전사진관 (岩田寫眞館)
암전사진관은1900년경 일본인 사진사 이와타 카나에가 운영한 경성의 사진관이다. 이와타[岩田]사진관이라고도 불린다. 1907년에는 조선을 방문한 일본 황태자 요시히토의 기념사진첩을 제작했다. 1909년 4월 5일 순종 친경식을 기록한 사진첩과 함께 순종, 순종효황후 공식초상사진과 고종태황제의 초상사진을 제작하였다.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의 초상사진엽서를 인쇄해서 팔다가 치안방해죄로 걸리기도 했다.
한국프로사진협회는 1955년 4월 7일 인물사진을 주로 찍는 사진관 영업 사진사들이 조직한 대한사진가연합회로 출발한 단체이다. 특별행위세 철폐 등 사진 문화 정책을 개선하였고, 『사단』 등의 회보를 발간하였으며, 출판사 광화를 운영하였다. 특히 한국사진사연구소를 건립하고 사진의 날을 제정하는 등 한국사진의 발전을 위해 힘썼다. 일제강점기 경성사진사협회를 모태로 하고, 해방 공간의 다양한 사진관 단체들을 근거로 하는 영업 사진가 단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한국프로사진협회 (韓國프로寫眞協會)
한국프로사진협회는 1955년 4월 7일 인물사진을 주로 찍는 사진관 영업 사진사들이 조직한 대한사진가연합회로 출발한 단체이다. 특별행위세 철폐 등 사진 문화 정책을 개선하였고, 『사단』 등의 회보를 발간하였으며, 출판사 광화를 운영하였다. 특히 한국사진사연구소를 건립하고 사진의 날을 제정하는 등 한국사진의 발전을 위해 힘썼다. 일제강점기 경성사진사협회를 모태로 하고, 해방 공간의 다양한 사진관 단체들을 근거로 하는 영업 사진가 단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사진사연구』는 1983년 5월 한국사진사연구소에서 창간하여 2007년 7월까지 발행한 부정기 사진 연구 잡지이다. 한국사진사 관련 자료의 발굴과 수집, 정리와 연구를 목적으로 창간하여 제14호까지 발행하였다. 제5호까지는 월간 형식으로 발행되다가, 점차 부정기 간행물 형식으로 발간되었다. 한국 사진사 및 한국 사진학 연구의 기반이 되어 후속 연구를 이끌고 사진의 문화적 가치를 널리 알리며 한국의 사진 문화를 견인한 전문 학술지였다는 점에서 사진사적 의의가 있다.
사진사연구 (寫眞史硏究)
『사진사연구』는 1983년 5월 한국사진사연구소에서 창간하여 2007년 7월까지 발행한 부정기 사진 연구 잡지이다. 한국사진사 관련 자료의 발굴과 수집, 정리와 연구를 목적으로 창간하여 제14호까지 발행하였다. 제5호까지는 월간 형식으로 발행되다가, 점차 부정기 간행물 형식으로 발간되었다. 한국 사진사 및 한국 사진학 연구의 기반이 되어 후속 연구를 이끌고 사진의 문화적 가치를 널리 알리며 한국의 사진 문화를 견인한 전문 학술지였다는 점에서 사진사적 의의가 있다.
경성사진사협회는 1926년 서울의 북촌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던 한국인 사진사들이 조직한 결사체이다. 이 단체의 결성은 직업윤리와 매체의 가치를 바탕으로 하는 한국인 사진단체의 첫 등장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남촌에서 주로 활동한 일본인 사진관들에 대항해 회원 상호 간의 연구 활동을 통해 사진에 대한 지식을 확보하고, 사진표현 능력을 향상시키며, 사진교육을 실시하고 후학을 양성하여 사진의 저변을 확산하려고 노력했다.
경성사진사협회 (京城寫眞師協會)
경성사진사협회는 1926년 서울의 북촌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던 한국인 사진사들이 조직한 결사체이다. 이 단체의 결성은 직업윤리와 매체의 가치를 바탕으로 하는 한국인 사진단체의 첫 등장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남촌에서 주로 활동한 일본인 사진관들에 대항해 회원 상호 간의 연구 활동을 통해 사진에 대한 지식을 확보하고, 사진표현 능력을 향상시키며, 사진교육을 실시하고 후학을 양성하여 사진의 저변을 확산하려고 노력했다.
김진애는 근대 천연당사진관에서 여성 고객을 전담한 한국 최초의 여류 사진가이다. 1868년 태어났으며, 천연당사진관을 설립한 해강 김규진의 부인이다. 1907년 사진관 개업 무렵부터 사진사로 능력을 발휘하였다. 최초의 여성 사진사가 여성 전용 촬영장을 개설하였다는 점에서 당시 큰 화제가 되었다. 자신의 직업을 사진 찍는 것이라고 답할 정도로 직업인으로서 자부심을 갖춘 사진사였다.
김진애 (金眞愛)
김진애는 근대 천연당사진관에서 여성 고객을 전담한 한국 최초의 여류 사진가이다. 1868년 태어났으며, 천연당사진관을 설립한 해강 김규진의 부인이다. 1907년 사진관 개업 무렵부터 사진사로 능력을 발휘하였다. 최초의 여성 사진사가 여성 전용 촬영장을 개설하였다는 점에서 당시 큰 화제가 되었다. 자신의 직업을 사진 찍는 것이라고 답할 정도로 직업인으로서 자부심을 갖춘 사진사였다.
사진사는 지운영이 일본에서 사진을 가르쳐준 헤이무라 도쿠베이의 이름에 붙여 존경의 뜻을 담아 부른 명칭으로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진가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지운영은 한국에 처음 사진을 도입한 선각자 중의 한명이었고, 대한제국 황실사진가를 지낸 해강 김규진도 천연당사진관을 개업하면서 자신의 이름에 자연스럽게 '사진사'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그 이후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진가를 총칭하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사진사 (寫眞師)
사진사는 지운영이 일본에서 사진을 가르쳐준 헤이무라 도쿠베이의 이름에 붙여 존경의 뜻을 담아 부른 명칭으로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진가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지운영은 한국에 처음 사진을 도입한 선각자 중의 한명이었고, 대한제국 황실사진가를 지낸 해강 김규진도 천연당사진관을 개업하면서 자신의 이름에 자연스럽게 '사진사'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그 이후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진가를 총칭하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태평양사진관은 사진사 민충식이 현성린과 함께 1930년 서울의 종로 낙원동에 개업한 사진관이다. 개업 이후 5년간 운영된 사진관은 서울에서 사진 값이 비싸기로도 유명했고 가장 큰 시설을 갖춘 장소로 알려져 있었다. 초상사진 영업을 주로 했지만 일본 헤이번샤가 펴낸 36권짜리 『세계지리풍속대계』에 서울 전경 사진을 찍어 제공하는 등 사진기록 작업도 했던 사진관이었다.
태평양사진관 (太平洋寫眞館)
태평양사진관은 사진사 민충식이 현성린과 함께 1930년 서울의 종로 낙원동에 개업한 사진관이다. 개업 이후 5년간 운영된 사진관은 서울에서 사진 값이 비싸기로도 유명했고 가장 큰 시설을 갖춘 장소로 알려져 있었다. 초상사진 영업을 주로 했지만 일본 헤이번샤가 펴낸 36권짜리 『세계지리풍속대계』에 서울 전경 사진을 찍어 제공하는 등 사진기록 작업도 했던 사진관이었다.
독립사진관은 1930년 사진사 박만달이 서울 종로 관철동에 개업해서 운영한 사진관이다. 사진관 시설과 사진사의 실력이 좋아 한국인들 뿐만 아니라 일본인 고객도 많았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탄압의 상징인 종로경찰서 부근에 '독립'이란 상호를 달고 영업해 일본 경찰과 충돌이 잦았다. 한국 사진사들의 독립정신을 상징하는 사진관이었다.
독립사진관 (獨立寫眞館)
독립사진관은 1930년 사진사 박만달이 서울 종로 관철동에 개업해서 운영한 사진관이다. 사진관 시설과 사진사의 실력이 좋아 한국인들 뿐만 아니라 일본인 고객도 많았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탄압의 상징인 종로경찰서 부근에 '독립'이란 상호를 달고 영업해 일본 경찰과 충돌이 잦았다. 한국 사진사들의 독립정신을 상징하는 사진관이었다.
허바허바사장은 1946년 1월 김진수와 김주성이 지금의 서울 을지로 입구에서 공동으로 창업한 사진관이다. 촬영부터 현상과 인화 그리고 앨범 제작에 이르기까지 사진의 전 영역을 포괄하여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영업 방침을 천명했다. 한편 1947년 서울에 창립한 좌익 계열의 사진단체인 조선사진동맹의 본부 사무실로 사용하며, 동시에 조직의 활동 자금을 마련할 목적도 있었다. 사진관의 사진사와 영업장소는 몇 차례 바뀌었지만 현재도 영업을 하고 있으며, 서울시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허바허바사장 (―寫場)
허바허바사장은 1946년 1월 김진수와 김주성이 지금의 서울 을지로 입구에서 공동으로 창업한 사진관이다. 촬영부터 현상과 인화 그리고 앨범 제작에 이르기까지 사진의 전 영역을 포괄하여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영업 방침을 천명했다. 한편 1947년 서울에 창립한 좌익 계열의 사진단체인 조선사진동맹의 본부 사무실로 사용하며, 동시에 조직의 활동 자금을 마련할 목적도 있었다. 사진관의 사진사와 영업장소는 몇 차례 바뀌었지만 현재도 영업을 하고 있으며, 서울시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박필호는 경성사진사협회에 참여하고,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한 사진가이다. 1920년대 초에 경성일보 주최 공모전에서 입선하였으며, 1925년 종로3가에 연우사진관을 개업하면서 영업 사진사의 길로 들어섰다. 1926년 경성사진사협회 창립에 참여하였으며, 각종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하였다. 해방 후에는 한국사진작가협회, 한국사진협회 등에서 고문을 맡는 한편, 서라벌예술대학과 중앙대학교에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사진 이론과 사진사 연구에도 열정을 보여 다수의 글을 남겼다.
박필호 (朴弼浩)
박필호는 경성사진사협회에 참여하고,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한 사진가이다. 1920년대 초에 경성일보 주최 공모전에서 입선하였으며, 1925년 종로3가에 연우사진관을 개업하면서 영업 사진사의 길로 들어섰다. 1926년 경성사진사협회 창립에 참여하였으며, 각종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하였다. 해방 후에는 한국사진작가협회, 한국사진협회 등에서 고문을 맡는 한편, 서라벌예술대학과 중앙대학교에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사진 이론과 사진사 연구에도 열정을 보여 다수의 글을 남겼다.
『사진을 말한다』는 1982년 사진 평론가 박필호의 육필 원고와 자료를 정리해 엮은 사진 이론서이다. 한국 사진 이론과 평론의 1세대인 박필호의 사망 1주기를 기념하여 최인진이 출간하였다. 총 5개 장으로 구분하여 저자의 사진론, 사진 비평, 예술적 표현 방법, 인상 사진, 사진의 역사 등을 종합적으로 다루었다. 예술사진에 대한 저자의 입장을 잘 보여 주고 있으며, 한국 사진사에 대한 개략적 서술을 포함하고 있다. 2003년 복간되었다.
사진을?말한다 (寫眞을 말한다)
『사진을 말한다』는 1982년 사진 평론가 박필호의 육필 원고와 자료를 정리해 엮은 사진 이론서이다. 한국 사진 이론과 평론의 1세대인 박필호의 사망 1주기를 기념하여 최인진이 출간하였다. 총 5개 장으로 구분하여 저자의 사진론, 사진 비평, 예술적 표현 방법, 인상 사진, 사진의 역사 등을 종합적으로 다루었다. 예술사진에 대한 저자의 입장을 잘 보여 주고 있으며, 한국 사진사에 대한 개략적 서술을 포함하고 있다. 2003년 복간되었다.
한국사진역사전은 1998년, "98 사진영상의 해"를 맞이하여 한국사진 120여 년의 역사를 한자리에서 다각도로 조명하기 위해 기획된 대규모 사진전이다. 한국사진사연구소가 기획과 실행을 맡았으며 오리지널 프린트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하였다. 전시는 총 3개의 영역으로 분류하여 한국 사진의 역사적 전개 과정과 장르별 특성을 보여주는 한편 사료전을 통해 실물 자료를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한국 현대사진을 조망할 수 있는 특별전도 함께 개최되었다.
한국사진역사전 (韓國寫眞歷史展)
한국사진역사전은 1998년, "98 사진영상의 해"를 맞이하여 한국사진 120여 년의 역사를 한자리에서 다각도로 조명하기 위해 기획된 대규모 사진전이다. 한국사진사연구소가 기획과 실행을 맡았으며 오리지널 프린트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하였다. 전시는 총 3개의 영역으로 분류하여 한국 사진의 역사적 전개 과정과 장르별 특성을 보여주는 한편 사료전을 통해 실물 자료를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한국 현대사진을 조망할 수 있는 특별전도 함께 개최되었다.
경성사구회는 1930년대 YMCA 황성 기독교 청년회 학관 사진과 출신을 중심으로 결성된 사진가 단체이다.일제강점기 경성 사진사 협회, 경성 아마추어 사진 구락부, 백양 사우회 등과 더불어 한국인 사진가들로만 결성된 단체로서 다수의 재한 일본인 사진가 단체들과 경쟁을 하며 사진 예술의 방향을 모색하였다.
경성사구회 (京城寫究會)
경성사구회는 1930년대 YMCA 황성 기독교 청년회 학관 사진과 출신을 중심으로 결성된 사진가 단체이다.일제강점기 경성 사진사 협회, 경성 아마추어 사진 구락부, 백양 사우회 등과 더불어 한국인 사진가들로만 결성된 단체로서 다수의 재한 일본인 사진가 단체들과 경쟁을 하며 사진 예술의 방향을 모색하였다.
경성사진학강습원은 1934년 경성사진사협회의 주도로 경성부에 설립되었던 사진 교육기관이다. 한국 최초의 공식적인 사진 교육기관이었던 YMCA 사진과가 폐과되자, 경성사진사협회는 경성인상사진연구회와 경성사구회 등과 협력하여 사진 교육의 정상화를 꾀하였다. 당시 사진계의 역량이 총동원된 교육기관이었으며, 『사진요람』을 간행하여 교재로 사용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체계적인 교육의 기틀을 갖춘 대표적인 사진 교육기관이었다.
경성사진학강습원 (京城寫眞學講習院)
경성사진학강습원은 1934년 경성사진사협회의 주도로 경성부에 설립되었던 사진 교육기관이다. 한국 최초의 공식적인 사진 교육기관이었던 YMCA 사진과가 폐과되자, 경성사진사협회는 경성인상사진연구회와 경성사구회 등과 협력하여 사진 교육의 정상화를 꾀하였다. 당시 사진계의 역량이 총동원된 교육기관이었으며, 『사진요람』을 간행하여 교재로 사용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체계적인 교육의 기틀을 갖춘 대표적인 사진 교육기관이었다.
『한국사진사 1631-1945』는 1999년 사진 역사가 최인진이 저술한 한국 최초의 사진 역사서이다. 1631년 『원경설』의 유입을 한국 사진사의 출발점으로 제시하며, 카메라 옵스큐라와 ‘칠실 파려안’의 전래, 서양·일본을 통한 사진 유입, 일제강점기 사진 문화의 전개를 사료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총 14장 구성으로 구성된 이 책은 사진을 한국사의 맥락 속에서 해석하며, 서양 중심의 사진사 서술을 넘어 한국 사진사 연구의 기초를 마련하고 발전을 이끈 중요한 업적이다.
한국사진사?1631-1945 (韓國寫眞史 一六三一 一九四五)
『한국사진사 1631-1945』는 1999년 사진 역사가 최인진이 저술한 한국 최초의 사진 역사서이다. 1631년 『원경설』의 유입을 한국 사진사의 출발점으로 제시하며, 카메라 옵스큐라와 ‘칠실 파려안’의 전래, 서양·일본을 통한 사진 유입, 일제강점기 사진 문화의 전개를 사료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총 14장 구성으로 구성된 이 책은 사진을 한국사의 맥락 속에서 해석하며, 서양 중심의 사진사 서술을 넘어 한국 사진사 연구의 기초를 마련하고 발전을 이끈 중요한 업적이다.
이홍경은 일제강점기 여성으로서 사진관을 운영한 최초의 사진사이다. 남편 채상묵에게 사진을 배워 서울 관철동에서 1921년 5월 부인사진관을 개설하였다. 1924년 사진관 이름을 조선사진관으로 변경하였으며, 1926년부터는 조선사진관을 양도하고 인사동에서 경성사진관을 운영하였다. 실명으로 활동한 조선 최초의 여성 사진사이며, 여성으로서 사진관을 운영한 것도 그녀가 최초였다. 또한 근화여학교 여자사진과의 초대 교사로 초빙되어 여성 사진 교육의 선구적 역할도 하였다.
이홍경 (李弘敬)
이홍경은 일제강점기 여성으로서 사진관을 운영한 최초의 사진사이다. 남편 채상묵에게 사진을 배워 서울 관철동에서 1921년 5월 부인사진관을 개설하였다. 1924년 사진관 이름을 조선사진관으로 변경하였으며, 1926년부터는 조선사진관을 양도하고 인사동에서 경성사진관을 운영하였다. 실명으로 활동한 조선 최초의 여성 사진사이며, 여성으로서 사진관을 운영한 것도 그녀가 최초였다. 또한 근화여학교 여자사진과의 초대 교사로 초빙되어 여성 사진 교육의 선구적 역할도 하였다.
사진업조합은 1922년 사진관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경성의 사진업자들이 결성한 사진조합이다. 초대 조합장은 금옥당사진관의 김경집이 맡았으며 조합 사무소도 종로 공평동에 위치한 금옥당사진관 안에 두었다. 조합장이 조선인이었다는 점에서 경성 지역 최초의 조선인 사진단체로 평가되고 있다.
사진업조합 (寫眞業組合)
사진업조합은 1922년 사진관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경성의 사진업자들이 결성한 사진조합이다. 초대 조합장은 금옥당사진관의 김경집이 맡았으며 조합 사무소도 종로 공평동에 위치한 금옥당사진관 안에 두었다. 조합장이 조선인이었다는 점에서 경성 지역 최초의 조선인 사진단체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