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생원"
검색결과 총 20건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인적 사항을 항목별로 정리해놓은 책.
국조고사 (國朝故事)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인적 사항을 항목별로 정리해놓은 책.
난삼은 조선 전기 흑선 두른 단령형 옥색 유생복, 또는 조선 후기 생원·진사의 방방복으로 입던 흑선 두른 단령형의 녹색 예복이다. 태종 11년(1411)부터 유생 복식으로 착용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보이는 유생의 청금(靑衿)이 난삼이며 이후 청금은 유생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유생복으로 홍단령을 입게 됨에 따라 18세기 영조 대에 난삼에 대한 논의를 통해 생원과 진사의 방방복으로 입게 되었다. 난삼에 복두라고도 한 연건(軟巾)을 쓰고 목화를 신었으며 허리띠의 일종인 영대(鈴帶)를 어깨에 걸치는 방식으로 착용하였다.
난삼 (襴衫|幱衫)
난삼은 조선 전기 흑선 두른 단령형 옥색 유생복, 또는 조선 후기 생원·진사의 방방복으로 입던 흑선 두른 단령형의 녹색 예복이다. 태종 11년(1411)부터 유생 복식으로 착용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보이는 유생의 청금(靑衿)이 난삼이며 이후 청금은 유생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유생복으로 홍단령을 입게 됨에 따라 18세기 영조 대에 난삼에 대한 논의를 통해 생원과 진사의 방방복으로 입게 되었다. 난삼에 복두라고도 한 연건(軟巾)을 쓰고 목화를 신었으며 허리띠의 일종인 영대(鈴帶)를 어깨에 걸치는 방식으로 착용하였다.
거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과거 시험에 응시하던 사람을 말한다. 조선시대 문과, 생원진사시, 무과, 잡과에는 신분과 지역에 관련된 자격 이외에도 각 시험의 단계마다 요구되는 강독 시험, 원점 규정 등이 있었으며, 모든 응시생은 각 시험의 단계마다 설치되는 녹명소에서 녹명관들이 확인을 마친 뒤라야 응시 자격을 얻어 과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거자 (擧子)
거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과거 시험에 응시하던 사람을 말한다. 조선시대 문과, 생원진사시, 무과, 잡과에는 신분과 지역에 관련된 자격 이외에도 각 시험의 단계마다 요구되는 강독 시험, 원점 규정 등이 있었으며, 모든 응시생은 각 시험의 단계마다 설치되는 녹명소에서 녹명관들이 확인을 마친 뒤라야 응시 자격을 얻어 과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과거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일정한 시험을 거쳐 관리로 등용하는 제도이다. 958년(광종 9)에 고려 광종이 군주권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처음 과거제를 실시하였다. 고려시대의 과거는 제술업, 명경업, 잡업으로 구분된다. 제술업과 명경업은 양대업이라 하였다. 잡업은 기술관 등용을 위한 시험이었다. 조선시대에 과거는 문과, 무과와 역과 · 의과 · 음양과 · 율과로 이루어진 잡과, 생원 · 진사시가 있었다. 문과와 무과는 같이 실시하였으며, 3년마다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식년시와 증광시, 별시, 정시, 알성시 등의 비정기 시험이 있었다.
과거 (科擧)
과거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일정한 시험을 거쳐 관리로 등용하는 제도이다. 958년(광종 9)에 고려 광종이 군주권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처음 과거제를 실시하였다. 고려시대의 과거는 제술업, 명경업, 잡업으로 구분된다. 제술업과 명경업은 양대업이라 하였다. 잡업은 기술관 등용을 위한 시험이었다. 조선시대에 과거는 문과, 무과와 역과 · 의과 · 음양과 · 율과로 이루어진 잡과, 생원 · 진사시가 있었다. 문과와 무과는 같이 실시하였으며, 3년마다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식년시와 증광시, 별시, 정시, 알성시 등의 비정기 시험이 있었다.
조선시대 과거의 생원·진사과 복시(覆試) 합격자인 생원·진사에게 발급한 합격증서.
백패 (白牌)
조선시대 과거의 생원·진사과 복시(覆試) 합격자인 생원·진사에게 발급한 합격증서.
복시는 조선시대 과거 중 식년시와 증광시에서 초시 합격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두 번째 단계의 시험이다. 모두 한양에서 시행하였으며, 문과와 무과 합격자에게는 최종 단계 시험인 전시에 응시할 자격을, 생원·진사시와 잡과 합격자에게는 최종 합격자의 자격을 부여하였다.
복시 (覆試)
복시는 조선시대 과거 중 식년시와 증광시에서 초시 합격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두 번째 단계의 시험이다. 모두 한양에서 시행하였으며, 문과와 무과 합격자에게는 최종 단계 시험인 전시에 응시할 자격을, 생원·진사시와 잡과 합격자에게는 최종 합격자의 자격을 부여하였다.
고려시대의 과거제도.
승보시 (升補試)
고려시대의 과거제도.
앵삼은 젊은 생원과 진사 입격자가 방방의(放榜儀)에서 착용한 황록색 난삼이다. 난삼에서 비롯되었으나 난삼보다 밝은 색으로 제작하였다. 1747년(영조 23)부터 생 · 진사의 방방복으로 난삼과 연건을 착용하였다. 김택영(金澤榮)의 시문집 『소호당집(韶濩堂集)』에 “생원 시험이나 진사 시험에 입격한 나이 어린 사람이 황색 앵삼을 입었다.”라고 한 기록을 통해 앵삼의 용도를 알 수 있다.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 연두색 사(紗) 겉감에 황색 사 안감을 넣고 흑색 가선을 두른 앵삼이 소장되어 있다.
앵삼 (鶯衫)
앵삼은 젊은 생원과 진사 입격자가 방방의(放榜儀)에서 착용한 황록색 난삼이다. 난삼에서 비롯되었으나 난삼보다 밝은 색으로 제작하였다. 1747년(영조 23)부터 생 · 진사의 방방복으로 난삼과 연건을 착용하였다. 김택영(金澤榮)의 시문집 『소호당집(韶濩堂集)』에 “생원 시험이나 진사 시험에 입격한 나이 어린 사람이 황색 앵삼을 입었다.”라고 한 기록을 통해 앵삼의 용도를 알 수 있다.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 연두색 사(紗) 겉감에 황색 사 안감을 넣고 흑색 가선을 두른 앵삼이 소장되어 있다.
사마소는 각 고을에서 생원·진사들의 수학을 위해 설립한 학교 기구이다. 조선 초기부터 등장하였으나 조정의 규제와 서원의 발달로 쇠퇴하였다가 숙종 대에서 정조 대에 걸쳐 다시 중건되는 경향을 보였다. 고을 출신의 역대 생원·진사 명단인 사마안(司馬案)이나 과거 합격자 명단인 연계안(蓮桂案)을 작성하였다.
사마소 (司馬所)
사마소는 각 고을에서 생원·진사들의 수학을 위해 설립한 학교 기구이다. 조선 초기부터 등장하였으나 조정의 규제와 서원의 발달로 쇠퇴하였다가 숙종 대에서 정조 대에 걸쳐 다시 중건되는 경향을 보였다. 고을 출신의 역대 생원·진사 명단인 사마안(司馬案)이나 과거 합격자 명단인 연계안(蓮桂案)을 작성하였다.
관직에 아직 오르지 않았거나 과거를 준비하며 학교에 재학 중인 유생(儒生).
유학 (幼學)
관직에 아직 오르지 않았거나 과거를 준비하며 학교에 재학 중인 유생(儒生).
점자는 손가락으로 읽도록 만든 시각장애인용 문자이다. 점자는 6점으로 구성되고, 왼쪽 위에서 아래로 1, 2, 3점,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4, 5, 6점의 고유 번호를 붙여 사용한다. 1824년에 파리맹학교의 루이 브라유가 6점 점자를 이용하여 알파벳, 숫자, 간단한 문장부호 등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1898년에 감리교 선교사 홀 여사가 뉴욕점자를 기초로 한글점자를 만들어 맹여학생들에게 처음 가르쳤다. 제생원 맹아부의 교사 박두성과 제자들이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하여 1926년 11월 4일 훈맹정음을 창안하여 발표하였다.
점자 (點字)
점자는 손가락으로 읽도록 만든 시각장애인용 문자이다. 점자는 6점으로 구성되고, 왼쪽 위에서 아래로 1, 2, 3점,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4, 5, 6점의 고유 번호를 붙여 사용한다. 1824년에 파리맹학교의 루이 브라유가 6점 점자를 이용하여 알파벳, 숫자, 간단한 문장부호 등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1898년에 감리교 선교사 홀 여사가 뉴욕점자를 기초로 한글점자를 만들어 맹여학생들에게 처음 가르쳤다. 제생원 맹아부의 교사 박두성과 제자들이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하여 1926년 11월 4일 훈맹정음을 창안하여 발표하였다.
직부법은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초시를 면제받고 바로 회시에 응시하거나 초시·회시를 면제받고 전시에 바로 응시할 수 있게 한 특전 제도이다. 직부는 학교 교육 장려책으로 마련된 것으로 1432년(세종 14) 사학 생도에게 처음 적용되었고 각 지방 도회 생도, 성균관 유생에게까지 확대되었다. 1433년(세종 26) 혁파되었다가 1459년(세조 5년) 부활되어 과거법이 폐지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무과의 경우 16세기 중종 때 직부법을 적용하기 시작하였다. 17세기 이후 직부법이 정기적으로 적용되는 각종 과시들이 정비되어 법제화되었다.
직부법 (直赴法)
직부법은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초시를 면제받고 바로 회시에 응시하거나 초시·회시를 면제받고 전시에 바로 응시할 수 있게 한 특전 제도이다. 직부는 학교 교육 장려책으로 마련된 것으로 1432년(세종 14) 사학 생도에게 처음 적용되었고 각 지방 도회 생도, 성균관 유생에게까지 확대되었다. 1433년(세종 26) 혁파되었다가 1459년(세조 5년) 부활되어 과거법이 폐지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무과의 경우 16세기 중종 때 직부법을 적용하기 시작하였다. 17세기 이후 직부법이 정기적으로 적용되는 각종 과시들이 정비되어 법제화되었다.
조선시대 소과의 하나인 진사시에 합격한 사람이다. 고려 때에는 과거에 합격한 이를 '진사'라 칭하였다. 반면 조선시대에는 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문과를 별도로 두고, 생원진사시에 합격한 이를 '생원', '진사'라 하고 이들에게 문과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다. 더욱이 조선 전기에는 신유학의 학풍을 따라 경학을 중시하여 진사시가 일시적으로 폐지되기도 하였다. 진사는 문과에 응시하여 관직에 나갈 수 있었고, 음관이 될 수 있는 후보군이었다. 또한 지방의 엘리트 사족으로서 지방민 교화, 여론 형성 등 사족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진사 (進士)
조선시대 소과의 하나인 진사시에 합격한 사람이다. 고려 때에는 과거에 합격한 이를 '진사'라 칭하였다. 반면 조선시대에는 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문과를 별도로 두고, 생원진사시에 합격한 이를 '생원', '진사'라 하고 이들에게 문과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다. 더욱이 조선 전기에는 신유학의 학풍을 따라 경학을 중시하여 진사시가 일시적으로 폐지되기도 하였다. 진사는 문과에 응시하여 관직에 나갈 수 있었고, 음관이 될 수 있는 후보군이었다. 또한 지방의 엘리트 사족으로서 지방민 교화, 여론 형성 등 사족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조흘강은 조선시대에 문과와 생원진사시의 초시 전에 실시된 경서 강독 시험이다. 문과와 생원진사시의 초시가 실시되기 전에 미리 응시생들이 충분히 공부하여 초시에 응시할 자격이 있는지, 혹은 공부가 부족하여 응시할 자격이 없는데도 무리하게 대술이나 차술의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등을 확인하기 위한 시험이었다. ‘초시 조흘강’은 대체로 초시가 실시되기 한 달 전부터 서울은 사학(四學)이 주관하는 조흘시소(照訖試所)에서, 지방은 시소에 설치된 녹명소(錄名所)에서 실시되었다.
조흘강 (照訖講)
조흘강은 조선시대에 문과와 생원진사시의 초시 전에 실시된 경서 강독 시험이다. 문과와 생원진사시의 초시가 실시되기 전에 미리 응시생들이 충분히 공부하여 초시에 응시할 자격이 있는지, 혹은 공부가 부족하여 응시할 자격이 없는데도 무리하게 대술이나 차술의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등을 확인하기 위한 시험이었다. ‘초시 조흘강’은 대체로 초시가 실시되기 한 달 전부터 서울은 사학(四學)이 주관하는 조흘시소(照訖試所)에서, 지방은 시소에 설치된 녹명소(錄名所)에서 실시되었다.
한성시(漢城試)는 문과·무과·생원진사시의 1차 시험인 초시(初試) 중 한성부에서 시행한 시험이다. 향시 등 다른 초시와 마찬가지로 합격자에게 복시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으며, 시험 날짜나 시험 과목도 동일하였다. 한성시에는 다른 지역 거주자도 응시할 수 있었다.
한성시 (漢城試)
한성시(漢城試)는 문과·무과·생원진사시의 1차 시험인 초시(初試) 중 한성부에서 시행한 시험이다. 향시 등 다른 초시와 마찬가지로 합격자에게 복시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으며, 시험 날짜나 시험 과목도 동일하였다. 한성시에는 다른 지역 거주자도 응시할 수 있었다.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 생존한 문신·학자, 이행 등 여흥이씨 문중의 유고와 실기를 모아 1872년에 간행한 시문집.
철감록 (掇感錄)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 생존한 문신·학자, 이행 등 여흥이씨 문중의 유고와 실기를 모아 1872년에 간행한 시문집.
『사마방목(司馬榜目)』은 1501년(연산군 7) 2월에 실시된 생원진사시에 합격한 사람들의 명단을 수록한 명부이다. 1434년(세종 16)에 주조한 초주 갑인자(初鑄甲寅字)로 인쇄한 금속활자본으로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마방목 (司馬榜目)
『사마방목(司馬榜目)』은 1501년(연산군 7) 2월에 실시된 생원진사시에 합격한 사람들의 명단을 수록한 명부이다. 1434년(세종 16)에 주조한 초주 갑인자(初鑄甲寅字)로 인쇄한 금속활자본으로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1920년 박두성과 그의 제자들이 점자 연구를 위하여 구성한 위원회.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 (朝鮮語點字硏究委員會)
1920년 박두성과 그의 제자들이 점자 연구를 위하여 구성한 위원회.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위치한 국립 청각장애 특수학교.
서울농학교 (서울聾學校)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위치한 국립 청각장애 특수학교.
윤백원은 해방 이후 국립맹아학교 초대교장을 역임한 교육자이다. 1908년 서울 출생으로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경성효창공립보통학교에 재직하였다. 1939년 제생원 훈도로 부임하며 1948년까지 맹아부 교육과 농아동 교육에 헌신하였다. 해방 후 제생원을 인수받았다. 교명을 국립맹아학교로 변경하였으며, 초대교장이 되었다. 1946년 9월 한글 지문자를 창안하여 보급하였다. 1959년 교육공로표창과 1960년 녹조훈장, 1972년 교육공로표창을 받았다. 농교육과 특수교육 발전에 공헌한 것을 기리기 위해 서울농학교 교정에 기념비가 세워졌다.
윤백원 (尹伯元)
윤백원은 해방 이후 국립맹아학교 초대교장을 역임한 교육자이다. 1908년 서울 출생으로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경성효창공립보통학교에 재직하였다. 1939년 제생원 훈도로 부임하며 1948년까지 맹아부 교육과 농아동 교육에 헌신하였다. 해방 후 제생원을 인수받았다. 교명을 국립맹아학교로 변경하였으며, 초대교장이 되었다. 1946년 9월 한글 지문자를 창안하여 보급하였다. 1959년 교육공로표창과 1960년 녹조훈장, 1972년 교육공로표창을 받았다. 농교육과 특수교육 발전에 공헌한 것을 기리기 위해 서울농학교 교정에 기념비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