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숙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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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남북국시대 당에 유학하고 통일신라의 학자, 문장가, 관료이다. 당을 중심으로 한 국제 질서를 인정하면서도 신라의 고유성과 토착성을 알리려고 하였다. 특히, 사람에 도가 있고 사람은 나라의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여, 인간 중심의 보편성과 그에 따른 다양성을 강조하여 신라의 세계화를 이끌었다. 다만, 생존 당시 신라가 쇠퇴하여 정치 이념과 사상은 신라 사회에서 실현되지 못하고, 이후 고려 국가의 체제 정비에 영향을 미쳤다. 그의 문장은 동아시아 문서의 형식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어서 조선시대에도 특별히 주목을 받았다.
최치원 (崔致遠)
최치원 남북국시대 당에 유학하고 통일신라의 학자, 문장가, 관료이다. 당을 중심으로 한 국제 질서를 인정하면서도 신라의 고유성과 토착성을 알리려고 하였다. 특히, 사람에 도가 있고 사람은 나라의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여, 인간 중심의 보편성과 그에 따른 다양성을 강조하여 신라의 세계화를 이끌었다. 다만, 생존 당시 신라가 쇠퇴하여 정치 이념과 사상은 신라 사회에서 실현되지 못하고, 이후 고려 국가의 체제 정비에 영향을 미쳤다. 그의 문장은 동아시아 문서의 형식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어서 조선시대에도 특별히 주목을 받았다.
진덕여왕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8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47~654년이며, 신라시대 3인의 여왕 중 한 사람으로, 선덕여왕의 유언에 따라 즉위했다. 즉위하면서 비담의 난을 진압했고, 고구려와 백제의 침략이 빈번해지자 김유신을 중심으로 방어하는 한편, 김춘추를 당나라에 보내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다. 신라 문제에 소극적이던 당나라로부터 군사적 지원을 허락받고 긴밀한 외교관계를 구축했다. 의관을 중국식으로 바꿨고 연호도 중국의 연호를 사용하는 등 한화정책을 폈으며, 집사부 설치, 행정관부의 체계화로 중앙집권적 귀족관료체계를 완성했다.
진덕여왕 (眞德女王)
진덕여왕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8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47~654년이며, 신라시대 3인의 여왕 중 한 사람으로, 선덕여왕의 유언에 따라 즉위했다. 즉위하면서 비담의 난을 진압했고, 고구려와 백제의 침략이 빈번해지자 김유신을 중심으로 방어하는 한편, 김춘추를 당나라에 보내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다. 신라 문제에 소극적이던 당나라로부터 군사적 지원을 허락받고 긴밀한 외교관계를 구축했다. 의관을 중국식으로 바꿨고 연호도 중국의 연호를 사용하는 등 한화정책을 폈으며, 집사부 설치, 행정관부의 체계화로 중앙집권적 귀족관료체계를 완성했다.
도방은 고려시대 무신정권의 사병집단이며 숙위기관(宿衛機關)이다. 정중부를 제거하고 권력을 잡은 경대승이 처음 설치하였다. 경대승의 신변을 보호하는 사병들의 숙소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점차 숙위대의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경대승이 사망하고 해체되었다가 최충헌이 집권하면서 다시 설치되었다. 교대로 숙위하는 것 외에 외적의 방어, 토목공사, 비상시의 경비 등 업무도 수행하였다. 삼별초가 조직된 이후 도방은 숙위만을 맡게 되었다. 최씨정권의 숙위기관으로 정치적, 군사적 무력수단으로 활용되다가 무신정권이 몰락하며 폐지되었다.
도방 (都房)
도방은 고려시대 무신정권의 사병집단이며 숙위기관(宿衛機關)이다. 정중부를 제거하고 권력을 잡은 경대승이 처음 설치하였다. 경대승의 신변을 보호하는 사병들의 숙소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점차 숙위대의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경대승이 사망하고 해체되었다가 최충헌이 집권하면서 다시 설치되었다. 교대로 숙위하는 것 외에 외적의 방어, 토목공사, 비상시의 경비 등 업무도 수행하였다. 삼별초가 조직된 이후 도방은 숙위만을 맡게 되었다. 최씨정권의 숙위기관으로 정치적, 군사적 무력수단으로 활용되다가 무신정권이 몰락하며 폐지되었다.
고려시대 최우정권기에 설치된 숙위(宿衛) 및 문한(文翰) 담당기관.
서방 (書房)
고려시대 최우정권기에 설치된 숙위(宿衛) 및 문한(文翰) 담당기관.
고려시대 궁궐을 지키던 숙위군(宿衛軍).
견룡 (牽龍)
고려시대 궁궐을 지키던 숙위군(宿衛軍).
숙위학생은 통일신라 때 중국의 문물과 제도를 익히게 하려고 당나라 국자감에 파견한 유학생이다. 유학승(留學僧)과 함께 신라 대당 외교의 상징이다. 이들은 당 중심의 국제 질서를 인용하면서, 인적 · 물적 교류를 활발히 전개하는 데 기여하였다. 또한, 신라 고유 문화와 제도를 당은 물론 주변 국가에 알리는 데 공헌하였다. 다만, 신라 골품제 사회의 구조적 한계 때문에 능력과 경험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오히려 새로운 국가에서 발휘하게 되었다. 도당유학생(渡唐留學生), 견당유학생(遣唐留學生)이라고도 한다.
숙위학생 (宿衛學生)
숙위학생은 통일신라 때 중국의 문물과 제도를 익히게 하려고 당나라 국자감에 파견한 유학생이다. 유학승(留學僧)과 함께 신라 대당 외교의 상징이다. 이들은 당 중심의 국제 질서를 인용하면서, 인적 · 물적 교류를 활발히 전개하는 데 기여하였다. 또한, 신라 고유 문화와 제도를 당은 물론 주변 국가에 알리는 데 공헌하였다. 다만, 신라 골품제 사회의 구조적 한계 때문에 능력과 경험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오히려 새로운 국가에서 발휘하게 되었다. 도당유학생(渡唐留學生), 견당유학생(遣唐留學生)이라고도 한다.
밀직사(密直司)는 고려 후기에 몽골의 압력으로 추밀원에서 개편되어 왕명의 출납, 궁중의 숙위, 군기(軍機)의 정사를 맡아 보던 관서이다. 밀직사는 고려 전기의 중추원과 마찬가지로 상층의 밀직과 하층의 승지로 구분되었고 첨의부와 함께 양부(兩府)로 불리었다.
밀직사 (密直司)
밀직사(密直司)는 고려 후기에 몽골의 압력으로 추밀원에서 개편되어 왕명의 출납, 궁중의 숙위, 군기(軍機)의 정사를 맡아 보던 관서이다. 밀직사는 고려 전기의 중추원과 마찬가지로 상층의 밀직과 하층의 승지로 구분되었고 첨의부와 함께 양부(兩府)로 불리었다.
조선 후기 궁중을 호위하기 위해 설치된 군영.
호위청 (扈衛廳)
조선 후기 궁중을 호위하기 위해 설치된 군영.
남북국시대 발해의 시조 대조영의 둘째 아들인 왕자.
대문예 (大門藝)
남북국시대 발해의 시조 대조영의 둘째 아들인 왕자.
신충은 통일신라 성덕왕 25년(726) 당에 하정사로 파견되어 숙위하여 성덕왕 32년(733) 초가을 당 현종의 칙서를 가지고 귀국한 성덕왕의 종제이다. 그는 성덕왕 33년(734) 정월 당 현종에게 성덕왕을 대신하여 표문을 올린 좌령군위 원외장군(左領軍衛員外將軍) 김충신(金忠信)과 동일 인물이다. 그는 귀국하여 효성왕 대에 이찬으로서 중시를, 경덕왕 대에 상대등을 역임하였다.
신충 (信忠)
신충은 통일신라 성덕왕 25년(726) 당에 하정사로 파견되어 숙위하여 성덕왕 32년(733) 초가을 당 현종의 칙서를 가지고 귀국한 성덕왕의 종제이다. 그는 성덕왕 33년(734) 정월 당 현종에게 성덕왕을 대신하여 표문을 올린 좌령군위 원외장군(左領軍衛員外將軍) 김충신(金忠信)과 동일 인물이다. 그는 귀국하여 효성왕 대에 이찬으로서 중시를, 경덕왕 대에 상대등을 역임하였다.
중국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빈공과(賓貢科) 과거시험의 응시자.
빈공 (賓貢)
중국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빈공과(賓貢科) 과거시험의 응시자.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숙위학생으로 당나라에 파견된 문인.
최광유 (崔匡裕)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숙위학생으로 당나라에 파견된 문인.
남북국시대 때, 숙위학생으로 당나라에서 유학하여 빈공과에 급제하였으며, 훗날 신라와 발해의 쟁장사건의 발단이 된 통일신라의 학자.
이동 (李同)
남북국시대 때, 숙위학생으로 당나라에서 유학하여 빈공과에 급제하였으며, 훗날 신라와 발해의 쟁장사건의 발단이 된 통일신라의 학자.
고려시대 왕명의 출납과 궁중의 숙위(宿衛)·군기(軍機)를 맡아보던 관청.
광정원 (光政院)
고려시대 왕명의 출납과 궁중의 숙위(宿衛)·군기(軍機)를 맡아보던 관청.
겁설관은 고려 후기 국왕을 숙위하고 궁궐의 관리를 담당하던 몽골풍의 조직에 대한 총칭이다. 고려 충렬왕이 몽골의 제도를 차용하여 조직한 근시(近侍) 조직으로, 주로 의관자제(衣官子弟)와 문신관료(文臣官僚)들로 구성되었다. 겁설관으로는 군사적 역할을 하는 홀치[忽赤], 문서 행정 관련의 필도치[必闍赤] 등을 비롯하여 우달치[迂達赤], 속고치[速古赤], 파오치[波吾赤], 조라치[詔羅赤], 팔가치[八加赤] 등이 있었다.
겁설관 (怯薛官)
겁설관은 고려 후기 국왕을 숙위하고 궁궐의 관리를 담당하던 몽골풍의 조직에 대한 총칭이다. 고려 충렬왕이 몽골의 제도를 차용하여 조직한 근시(近侍) 조직으로, 주로 의관자제(衣官子弟)와 문신관료(文臣官僚)들로 구성되었다. 겁설관으로는 군사적 역할을 하는 홀치[忽赤], 문서 행정 관련의 필도치[必闍赤] 등을 비롯하여 우달치[迂達赤], 속고치[速古赤], 파오치[波吾赤], 조라치[詔羅赤], 팔가치[八加赤] 등이 있었다.
고려시대의 숙위군(宿衛軍).
공학 (控鶴)
고려시대의 숙위군(宿衛軍).
조라치는 고려 후기에 몽골의 영향으로 새롭게 등장한 국왕 숙위 조직의 하나이다. 몽골에서 황제의 측근 조직인 겁설의 한 종류로, 고려 후기에 새로운 국왕 근시 조직으로 등장하였다. 『고려사』 병지의 1344년(충혜왕 복위 5)에 단 한 번 나온다. 곧 내승(內乘)과 응방(鷹坊)을 폐지하면서 여기에 속해 있던 대정(隊正)과 산직(散職)을 조라치를 비롯해 팔가치(八加赤), 순군(巡軍) 등에 나누어 소속시켰다.
조라치 (詔羅赤▽)
조라치는 고려 후기에 몽골의 영향으로 새롭게 등장한 국왕 숙위 조직의 하나이다. 몽골에서 황제의 측근 조직인 겁설의 한 종류로, 고려 후기에 새로운 국왕 근시 조직으로 등장하였다. 『고려사』 병지의 1344년(충혜왕 복위 5)에 단 한 번 나온다. 곧 내승(內乘)과 응방(鷹坊)을 폐지하면서 여기에 속해 있던 대정(隊正)과 산직(散職)을 조라치를 비롯해 팔가치(八加赤), 순군(巡軍) 등에 나누어 소속시켰다.
남북국시대 때, 파진찬, 이찬 관등에 임명된 통일신라의 귀족·관리.
김삼광 (金三光)
남북국시대 때, 파진찬, 이찬 관등에 임명된 통일신라의 귀족·관리.
백제시대의 관직.
위사좌평 (衛士佐平)
백제시대의 관직.
간수군은 고려시대, 금오위(金吾衛)나 감문위(監門衛)에 소속되어 관청, 창고, 사원 등을 수비하던 군사이다. 또한 벌채 및 화재를 감시하거나 능을 돌보기도 하였다. 『고려사』 병지 2 숙위조와 별도로 병지 3 간수군조가 기술된 것은 부대를 배치하는 일이 항상 이루어졌고 주요 시설 감시는 국왕의 숙위와는 별도의 임무였기 때문이었다. 총 101개 관청에 배치되었고, 장상 4인, 잡직장상 6인, 장교 84인, 잡직장교 96인, 산직장교 64인, 산직장상 14인, 군인 109인, 감문위군 10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간수군 (看守軍)
간수군은 고려시대, 금오위(金吾衛)나 감문위(監門衛)에 소속되어 관청, 창고, 사원 등을 수비하던 군사이다. 또한 벌채 및 화재를 감시하거나 능을 돌보기도 하였다. 『고려사』 병지 2 숙위조와 별도로 병지 3 간수군조가 기술된 것은 부대를 배치하는 일이 항상 이루어졌고 주요 시설 감시는 국왕의 숙위와는 별도의 임무였기 때문이었다. 총 101개 관청에 배치되었고, 장상 4인, 잡직장상 6인, 장교 84인, 잡직장교 96인, 산직장교 64인, 산직장상 14인, 군인 109인, 감문위군 10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