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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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역대 왕비의 부모로부터 시조에까지 이르는 직계의 세계(世系)를 수록한 족보.
열성황후왕비 세보 (列聖皇后王妃 世譜)
조선조 역대 왕비의 부모로부터 시조에까지 이르는 직계의 세계(世系)를 수록한 족보.
공주는 조선시대에 왕의 정실부인인 왕비가 낳은 딸의 명칭이다. 조선 초기에 궁주(宮主), 옹주(翁主), 왕녀(王女) 등과 혼용되다가 1440년(세종 22) 이후 왕비가 낳은 딸만을 공주로 칭하도록 규정되었다. 이 규정은 『경국대전』 「이전」 외명부(外命婦)에 그대로 법제화되었다.
공주 (公主)
공주는 조선시대에 왕의 정실부인인 왕비가 낳은 딸의 명칭이다. 조선 초기에 궁주(宮主), 옹주(翁主), 왕녀(王女) 등과 혼용되다가 1440년(세종 22) 이후 왕비가 낳은 딸만을 공주로 칭하도록 규정되었다. 이 규정은 『경국대전』 「이전」 외명부(外命婦)에 그대로 법제화되었다.
명성왕후는 조선 후기 제18대 현종의 왕비이며, 숙종의 어머니이다. 며느리 인경왕후가 사망하자 신하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7개월 만에 계비 인현왕후를 맞아들였으며, 당시 숙종의 은총을 받던 궁녀 장씨[희빈 장씨]를 경계하여 궁궐 밖으로 내보내는 등 대비로서의 역할을 확실히 하였다.
명성왕후 (明聖王后)
명성왕후는 조선 후기 제18대 현종의 왕비이며, 숙종의 어머니이다. 며느리 인경왕후가 사망하자 신하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7개월 만에 계비 인현왕후를 맞아들였으며, 당시 숙종의 은총을 받던 궁녀 장씨[희빈 장씨]를 경계하여 궁궐 밖으로 내보내는 등 대비로서의 역할을 확실히 하였다.
경상남도 김해시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김해 구산동 고분군 (金海 龜山洞 古墳群)
경상남도 김해시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동명사제』는 김재소가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의 사적을 시로 읊고 주석을 달아 1892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1891년 고종의 명령으로 고구려 동명왕릉비를 건립하고 왕릉을 개봉하였다. 이때 감독관이었던 김재소가 『삼국사기』의 동명성왕 본기와 『고씨가승』 중에서 발췌하여 칠언율시로 엮었다. 31장으로 구성되었는데 금와의 탄생, 해모수와 유화의 결합, 주몽의 고구려 건립 과정을 비롯하여 그의 업적을 찬미하는 내용이다. 또한 『고씨가승』 편성에 관여한 동명왕의 후손 고기의 발론과 풍수설과 관련된 「산론유서」의 내용을 덧붙이고 있다.
동명사제 (東明事題)
『동명사제』는 김재소가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의 사적을 시로 읊고 주석을 달아 1892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1891년 고종의 명령으로 고구려 동명왕릉비를 건립하고 왕릉을 개봉하였다. 이때 감독관이었던 김재소가 『삼국사기』의 동명성왕 본기와 『고씨가승』 중에서 발췌하여 칠언율시로 엮었다. 31장으로 구성되었는데 금와의 탄생, 해모수와 유화의 결합, 주몽의 고구려 건립 과정을 비롯하여 그의 업적을 찬미하는 내용이다. 또한 『고씨가승』 편성에 관여한 동명왕의 후손 고기의 발론과 풍수설과 관련된 「산론유서」의 내용을 덧붙이고 있다.
남북국시대 신라 김흠돌의 반란 당시의 장수. 대신.
김군관 (金軍官)
남북국시대 신라 김흠돌의 반란 당시의 장수. 대신.
본관은 풍산(豊山). 아버지는 영의정 홍봉한, 어머니는 한산이씨이다. 사도세자의 부인이고 정조의 어머니이다. 1744년 10세에 세자빈이 되고, 16세에 의소세손, 18세에 정조를 낳았다. 1762년 29세에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홀로 됐고, 1815(순조 15) 81세로 사망하였다.
헌경왕후 (獻敬王后)
본관은 풍산(豊山). 아버지는 영의정 홍봉한, 어머니는 한산이씨이다. 사도세자의 부인이고 정조의 어머니이다. 1744년 10세에 세자빈이 되고, 16세에 의소세손, 18세에 정조를 낳았다. 1762년 29세에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홀로 됐고, 1815(순조 15) 81세로 사망하였다.
조선시대 왕비의 친잠복(親蠶服).
국의 (鞠衣)
조선시대 왕비의 친잠복(親蠶服).
고려전기 제1대 태조의 제5왕비.
신성왕태후 (神成王太后)
고려전기 제1대 태조의 제5왕비.
경상남도 김해시에 있는 삼국시대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의 능. 왕릉.
김해 수로왕릉 (金海 首露王陵)
경상남도 김해시에 있는 삼국시대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의 능. 왕릉.
왕후는 생전 임금의 부인이나 사후의 임금 부인에게 시호로 올리는 칭호이다. 대체로 삼국시대부터 고려 초기까지의 왕후는 살아 있는 왕의 정비인 왕비에게 붙여진 호칭이었다. 하지만 점차 작고한 왕비에게 올리는 칭호로 정착되었다. 조선시대의 왕후는 왕의 정비가 승하한 후에 올리는 칭호였다.
왕후 (王后)
왕후는 생전 임금의 부인이나 사후의 임금 부인에게 시호로 올리는 칭호이다. 대체로 삼국시대부터 고려 초기까지의 왕후는 살아 있는 왕의 정비인 왕비에게 붙여진 호칭이었다. 하지만 점차 작고한 왕비에게 올리는 칭호로 정착되었다. 조선시대의 왕후는 왕의 정비가 승하한 후에 올리는 칭호였다.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파진찬 관등의 귀족. 관리.
영종 (永宗)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파진찬 관등의 귀족. 관리.
고려후기 제26대 충선왕의 제4왕비.
순화원비 (順和院妃)
고려후기 제26대 충선왕의 제4왕비.
삼국시대 백제의 제31대 의자왕의 왕비.
은고 (恩古)
삼국시대 백제의 제31대 의자왕의 왕비.
「의열비충효록」은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 소설이다. 송나라 인종 시대를 배경으로 설중의 딸인 월앙의 일대기를 다룬 여성 영웅소설이다. 설중이 간신 최훈의 모함을 받아 귀양을 가고 월중은 최훈의 구혼 요구를 피해 남장을 한 채 세상을 유랑하다가, 과거에 급제하여 설중의 무죄를 밝히고 왕비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의열비충효록 (義烈妃忠孝錄)
「의열비충효록」은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 소설이다. 송나라 인종 시대를 배경으로 설중의 딸인 월앙의 일대기를 다룬 여성 영웅소설이다. 설중이 간신 최훈의 모함을 받아 귀양을 가고 월중은 최훈의 구혼 요구를 피해 남장을 한 채 세상을 유랑하다가, 과거에 급제하여 설중의 무죄를 밝히고 왕비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의인왕후는 조선 전기 14대 국왕 선조의 왕비이다. 본관은 반남박씨이며, 아버지는 반성부원군 박응순, 어머니는 전주이씨 이수갑의 딸이다. 1569년(선조 2) 왕비로 책봉되어 가례를 치렀다. 성품이 후덕하고 인자하였지만 슬하에 자녀가 없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선조와 피란을 동행하지 못하였고, 세자였던 광해군과 함께 난을 피하였다. 1600년(선조 33) 사망하였다.
의인왕후 (懿仁王后)
의인왕후는 조선 전기 14대 국왕 선조의 왕비이다. 본관은 반남박씨이며, 아버지는 반성부원군 박응순, 어머니는 전주이씨 이수갑의 딸이다. 1569년(선조 2) 왕비로 책봉되어 가례를 치렀다. 성품이 후덕하고 인자하였지만 슬하에 자녀가 없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선조와 피란을 동행하지 못하였고, 세자였던 광해군과 함께 난을 피하였다. 1600년(선조 33) 사망하였다.
인성왕후(仁聖王后)는 조선시대, 제12대 왕 인종의 비이다.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금성부원군(錦城府院君) 박용(朴墉)과 문소부부인 김씨의 딸이다. 소생은 없다. 11세에 세자빈이 되고 31세에 왕비가 되었으나 인종이 승하하자 왕대비가 되었고 64세까지 살았다. 능호는 효릉(孝陵)이다.
인성왕후 (仁聖王后)
인성왕후(仁聖王后)는 조선시대, 제12대 왕 인종의 비이다.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금성부원군(錦城府院君) 박용(朴墉)과 문소부부인 김씨의 딸이다. 소생은 없다. 11세에 세자빈이 되고 31세에 왕비가 되었으나 인종이 승하하자 왕대비가 되었고 64세까지 살았다. 능호는 효릉(孝陵)이다.
인원왕후(仁元王后)는 조선시대, 제19대 왕 숙종의 계비이다. 본관은 경주이고, 이조판서 김남중(金南重)의 3대손이며, 경은부원군(慶恩府院君) 김주신(金柱臣)과 가림부부인(嘉林府夫人) 임천 조씨(林川 趙氏)의 딸이다. 1702년 16세에 숙종의 세 번째 간택 왕비가 되었다. 소생은 없었고 연잉군을 자신의 아들로 입양하여 세제(世弟)가 된 후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71세에 사망하였다.
인원왕후 (仁元王后)
인원왕후(仁元王后)는 조선시대, 제19대 왕 숙종의 계비이다. 본관은 경주이고, 이조판서 김남중(金南重)의 3대손이며, 경은부원군(慶恩府院君) 김주신(金柱臣)과 가림부부인(嘉林府夫人) 임천 조씨(林川 趙氏)의 딸이다. 1702년 16세에 숙종의 세 번째 간택 왕비가 되었다. 소생은 없었고 연잉군을 자신의 아들로 입양하여 세제(世弟)가 된 후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71세에 사망하였다.
초기국가시대 때, 동가강 유역에 있었던 비류국의 왕.
송양 (松讓)
초기국가시대 때, 동가강 유역에 있었던 비류국의 왕.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2대 흥덕왕의 왕비.
장화부인 (章和夫人)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2대 흥덕왕의 왕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