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인조반정"
검색결과 총 79건
김몽호는 조선 후기 사헌부장령, 공조참의, 어천찰방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609년(광해군 1)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서장관으로 명에 다녀오고 지방 수령도 지내며 문한직을 역임하는 등 순조로운 승진하였지만, 인목대비 폐비와 관련된 소문으로 정경세와 함께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이후 은퇴하였고 인조반정 후에도 관직에 다시 나가지 않았다.
김몽호 (金夢虎)
김몽호는 조선 후기 사헌부장령, 공조참의, 어천찰방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609년(광해군 1)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서장관으로 명에 다녀오고 지방 수령도 지내며 문한직을 역임하는 등 순조로운 승진하였지만, 인목대비 폐비와 관련된 소문으로 정경세와 함께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이후 은퇴하였고 인조반정 후에도 관직에 다시 나가지 않았다.
조선시대 모친이 상을 당하자 4일간 금식하고 2년동안 곡을 한 효자.
목낙선 (睦樂善)
조선시대 모친이 상을 당하자 4일간 금식하고 2년동안 곡을 한 효자.
조선 후기에, 승지, 호조참판, 도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목장흠 (睦長欽)
조선 후기에, 승지, 호조참판, 도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시대 첨절제사, 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박세중 (朴世重)
조선시대 첨절제사, 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조선 후기에, 해미현감, 동부승지, 판결사 등을 역임한 문신.
박안제 (朴安悌)
조선 후기에, 해미현감, 동부승지, 판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시대 훈련원첨정, 만포첨사, 오위장 등을 역임한 무신.
박유명 (朴惟明)
조선시대 훈련원첨정, 만포첨사, 오위장 등을 역임한 무신.
조선 후기에, 강변칠우라 자처하며 서얼의 관계 진출 허용을 청하였으며, 은상인 살해 혐의로 검거되자, 이이첨의 계략으로 허위 자백하여 계축옥사를 발생시킨 학자.
박응서 (朴應犀)
조선 후기에, 강변칠우라 자처하며 서얼의 관계 진출 허용을 청하였으며, 은상인 살해 혐의로 검거되자, 이이첨의 계략으로 허위 자백하여 계축옥사를 발생시킨 학자.
조선 후기에, 홍문관수찬, 사간원헌납,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박자응 (朴自凝)
조선 후기에, 홍문관수찬, 사간원헌납,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이조정랑, 동부승지,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박자흥 (朴自興)
조선 후기에, 이조정랑, 동부승지,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대사간, 대사헌,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박정 (朴炡)
조선 후기에, 대사간, 대사헌,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이조정랑, 세자시강원필선, 우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박정길 (朴鼎吉)
조선 후기에, 이조정랑, 세자시강원필선, 우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홍문관수찬, 사간원정언, 사간원헌납 등을 역임한 문신.
박종주 (朴宗胄)
조선 후기에, 홍문관수찬, 사간원정언, 사간원헌납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의금부도사, 내자시직장, 사복시첨정 등을 역임한 문신.
박철 (朴徹)
조선 후기에, 의금부도사, 내자시직장, 사복시첨정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장례원사평, 지평현감,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박환 (朴煥)
조선 후기에, 장례원사평, 지평현감,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사섬시부정, 통례원찬의,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문려 (文勵)
조선 후기에, 사섬시부정, 통례원찬의,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광해군은 조선의 제15대 국왕으로 15년간(1608~1623) 재위하였으나, 정변을 맞아 폐위당한 인물이다. 부왕 선조의 핍박과 명나라의 세자 책봉 거부 등 숱한 난관을 뚫고 즉위하였다. 하지만 정적을 제거하는 데 집착하면서 주로 대북 계열을 중용하였으며, 인목대비를 유폐하는 무리수까지 두었다. 마침 명과 후금이 전쟁을 벌이자, 명과는 사대관계를 유지하되 후금과도 우호관계를 맺으려 하였다. 하지만 숭명배금 노선을 절대시한 신료들의 거센 반대가 장기화하면서 국가 행정이 사실상 마비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인조반정으로 폐위당했다.
광해군 (光海君)
광해군은 조선의 제15대 국왕으로 15년간(1608~1623) 재위하였으나, 정변을 맞아 폐위당한 인물이다. 부왕 선조의 핍박과 명나라의 세자 책봉 거부 등 숱한 난관을 뚫고 즉위하였다. 하지만 정적을 제거하는 데 집착하면서 주로 대북 계열을 중용하였으며, 인목대비를 유폐하는 무리수까지 두었다. 마침 명과 후금이 전쟁을 벌이자, 명과는 사대관계를 유지하되 후금과도 우호관계를 맺으려 하였다. 하지만 숭명배금 노선을 절대시한 신료들의 거센 반대가 장기화하면서 국가 행정이 사실상 마비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인조반정으로 폐위당했다.
조선 후기에, 정묘호란이 발발하자 김장생의 휘하에서 소모관으로 활동하며 군사 및 군량미 모집에 힘쓴 의병.
방원진 (房元震)
조선 후기에, 정묘호란이 발발하자 김장생의 휘하에서 소모관으로 활동하며 군사 및 군량미 모집에 힘쓴 의병.
조선 중기에, 사간원정언, 사헌부장령, 동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배대유 (裵大維)
조선 중기에, 사간원정언, 사헌부장령, 동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황해도도사, 호조정랑, 희천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백대형 (白大珩)
조선 후기에, 황해도도사, 호조정랑, 희천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계축일기(癸丑日記)」는 조선 중기 작자 미상의 궁중 일기이다. 1책의 한글 필사본으로 원제목은 ‘계튝일긔’이다. 인목대비(仁穆大妃) 폐비 사건이 시작되었던 1613년(계축년, 광해군 5)을 기점으로 하여 일어난 궁중의 비사(秘事)를 인조반정(仁祖反正) 뒤 인목대비의 측근 나인 또는 그 밖의 사람이 기록한 일기 형식의 글이다. 「한중록(恨中錄)」·「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궁중 문학의 하나이다.
계축일기 (癸丑日記)
「계축일기(癸丑日記)」는 조선 중기 작자 미상의 궁중 일기이다. 1책의 한글 필사본으로 원제목은 ‘계튝일긔’이다. 인목대비(仁穆大妃) 폐비 사건이 시작되었던 1613년(계축년, 광해군 5)을 기점으로 하여 일어난 궁중의 비사(秘事)를 인조반정(仁祖反正) 뒤 인목대비의 측근 나인 또는 그 밖의 사람이 기록한 일기 형식의 글이다. 「한중록(恨中錄)」·「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궁중 문학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