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임오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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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군란기」는 임오군란을 다룬 작자·연대 미상의 실기소설이다. 1930년 덕흥서관에서 구활자본으로 간행하였다. 표기상 띄어쓰기, 괄호 안 한자 병기 등이 쓰였다. 내용은 서언과 여섯 개의 장회로 구성되었다. 여섯 개의 장회는 ①군사의 불평, ②창리의 작간 군사의 분기, ③군란의 폭발, ④군란의 제2일, ⑤민 왕후(명성황후)와 청국 구병, ⑥군란의 결과이다. 작가는 임오군란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서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평론을 통해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적극 표명했다. 서언과 결말에서 민 왕후와 그 일파에 반감을 드러냈다.
임오군란기 (壬午軍亂記)
「임오군란기」는 임오군란을 다룬 작자·연대 미상의 실기소설이다. 1930년 덕흥서관에서 구활자본으로 간행하였다. 표기상 띄어쓰기, 괄호 안 한자 병기 등이 쓰였다. 내용은 서언과 여섯 개의 장회로 구성되었다. 여섯 개의 장회는 ①군사의 불평, ②창리의 작간 군사의 분기, ③군란의 폭발, ④군란의 제2일, ⑤민 왕후(명성황후)와 청국 구병, ⑥군란의 결과이다. 작가는 임오군란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서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평론을 통해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적극 표명했다. 서언과 결말에서 민 왕후와 그 일파에 반감을 드러냈다.
대한제국기 「묵란」, 「노근묵란」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정치인.
민영익 (閔泳翊)
대한제국기 「묵란」, 「노근묵란」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정치인.
개화당은 근대 개화기 독립과 개화를 기치로 조선 사회의 개혁을 위하여 1884년 갑신정변(甲申政變)을 일으킨 정치 집단이다. 1870년대 조선 후기 실학사상과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등이 형성한 초기 개화사상, 중국을 통해 수용한 서구 문물 등을 공부한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 등이 현실 정치에서 개화사상을 실현하고 개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형성한 정치 세력이다. 개화당은 급진적 개혁을 추진하고자 1884년 12월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개화당 (開化黨)
개화당은 근대 개화기 독립과 개화를 기치로 조선 사회의 개혁을 위하여 1884년 갑신정변(甲申政變)을 일으킨 정치 집단이다. 1870년대 조선 후기 실학사상과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등이 형성한 초기 개화사상, 중국을 통해 수용한 서구 문물 등을 공부한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 등이 현실 정치에서 개화사상을 실현하고 개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형성한 정치 세력이다. 개화당은 급진적 개혁을 추진하고자 1884년 12월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객주(客主)』는 1979년부터 1984년까지 연재된, 김주영(金周榮)이 지은 대하소설이다. 임오군란 전후를 배경으로, 보부상의 활동을 중심에 두고 다양한 사회 계층들의 움직임을 다룸으로써 급격한 사회적 변화 속에 놓인 개항기 조선 사회의 역사적 상황을 역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당대의 언어와 습속에 대한 박물학적인 지식을 통해 역사적 격변기의 민중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객주 (客主)
『객주(客主)』는 1979년부터 1984년까지 연재된, 김주영(金周榮)이 지은 대하소설이다. 임오군란 전후를 배경으로, 보부상의 활동을 중심에 두고 다양한 사회 계층들의 움직임을 다룸으로써 급격한 사회적 변화 속에 놓인 개항기 조선 사회의 역사적 상황을 역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당대의 언어와 습속에 대한 박물학적인 지식을 통해 역사적 격변기의 민중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보빙사는 1883년(고종 21)에 푸트 미국공사의 조선 부임에 답례하여 미국에 파견한 사절단이다. 보빙사는 답례로 외국에 파견하는 사절단을 말하지만, 일반적으로 1883년 미국에 파견한 사절단을 의미한다. 1883년 푸트 공사가 부임하자 고종은 이에 대한 답례로 전권대신 민영익, 부대신 홍영식, 종사관 서광범으로 구성된 보빙사를 파견하여 개화정책을 추진하는 데 미국의 도움을 받고자 하였다.
보빙사 (報聘使)
보빙사는 1883년(고종 21)에 푸트 미국공사의 조선 부임에 답례하여 미국에 파견한 사절단이다. 보빙사는 답례로 외국에 파견하는 사절단을 말하지만, 일반적으로 1883년 미국에 파견한 사절단을 의미한다. 1883년 푸트 공사가 부임하자 고종은 이에 대한 답례로 전권대신 민영익, 부대신 홍영식, 종사관 서광범으로 구성된 보빙사를 파견하여 개화정책을 추진하는 데 미국의 도움을 받고자 하였다.
1882년 대진영접관 김창희가 청나라와의 교섭내용을 날짜순으로 기록한 일지.
동묘영접록 (東廟迎接錄)
1882년 대진영접관 김창희가 청나라와의 교섭내용을 날짜순으로 기록한 일지.
개항기 통리기무아문의 통상당상,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관료.
김보현 (金輔鉉)
개항기 통리기무아문의 통상당상,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관료.
수구당(守舊黨)은 19세기 말 명성황후와 민씨 척족을 중심으로 형성된 보수적 정치 세력으로 갑신정변을 일으킨 개화당과 대립하였고, 갑오개혁과 독립협회가 주도했던 개혁에 반대하며 구체제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선에서 일부 개혁을 추진하려 했던 정치 세력이다. 외교적으로 친청(親淸) 노선을 취하며 청국에서 추진되던 개혁을 본받아 온건하고 점진적인 개혁을 추진하였다. 따라서 개화당(開化黨) 과 대립하였으며, 갑신정변 실패 후 다시 집권하였다. 이후에도 구체제를 토대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일부 개혁만을 추진하려 하였다.
수구당 (守舊黨)
수구당(守舊黨)은 19세기 말 명성황후와 민씨 척족을 중심으로 형성된 보수적 정치 세력으로 갑신정변을 일으킨 개화당과 대립하였고, 갑오개혁과 독립협회가 주도했던 개혁에 반대하며 구체제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선에서 일부 개혁을 추진하려 했던 정치 세력이다. 외교적으로 친청(親淸) 노선을 취하며 청국에서 추진되던 개혁을 본받아 온건하고 점진적인 개혁을 추진하였다. 따라서 개화당(開化黨) 과 대립하였으며, 갑신정변 실패 후 다시 집권하였다. 이후에도 구체제를 토대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일부 개혁만을 추진하려 하였다.
내무부(內務府)는 1885년 개화 · 자강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대궐 안에 설치한 관청이다. 통리군국사무아문(통리내무아문)의 후신으로, 의정부 · 6조 체제와는 별도로 각종 근대화 관련 업무를 수행하면서 1880년대 후반 국정 운영을 총괄하였다. 갑오개혁으로 정부 조직이 대대적으로 개편되면서 1894년 폐지되었다.
내무부 (內務府)
내무부(內務府)는 1885년 개화 · 자강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대궐 안에 설치한 관청이다. 통리군국사무아문(통리내무아문)의 후신으로, 의정부 · 6조 체제와는 별도로 각종 근대화 관련 업무를 수행하면서 1880년대 후반 국정 운영을 총괄하였다. 갑오개혁으로 정부 조직이 대대적으로 개편되면서 1894년 폐지되었다.
개항기 중추원1등의관, 궁내부특진관, 홍문학사 등을 역임한 관료.
윤성진 (尹成鎭)
개항기 중추원1등의관, 궁내부특진관, 홍문학사 등을 역임한 관료.
개항기 때, 이조판서, 판의금부사, 지종정경 등을 역임한 문신.
이명응 (李明應)
개항기 때, 이조판서, 판의금부사, 지종정경 등을 역임한 문신.
개항기 때, 기기국총판, 사어직각 등을 역임한 문신.
윤태준 (尹泰駿)
개항기 때, 기기국총판, 사어직각 등을 역임한 문신.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대한제국기 을미사변·임오군란으로 순사(殉死)한 충신·열사를 제사지내던 제단. 공원.
장충단 (奬忠壇)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대한제국기 을미사변·임오군란으로 순사(殉死)한 충신·열사를 제사지내던 제단. 공원.
대한제국기 농상공부대신, 강원도관찰사, 군부대신 등을 역임한 관료.
이종건 (李鍾健)
대한제국기 농상공부대신, 강원도관찰사, 군부대신 등을 역임한 관료.
조선후기 한성부판윤, 공조판서,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관리.
이경하 (李景夏)
조선후기 한성부판윤, 공조판서,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관리.
1882년 임오군란 때 일어난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
임파사실 (壬波事實)
1882년 임오군란 때 일어난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
통리아문은 1882년 11월 17일, 외교 통상 전문가인 묄렌도르프가 고빙된 것을 계기로, 외교 통상 사무를 전담하기 위해 설치된 중앙 관청이다. 창설 당시 조영하가 판리, 김홍집이 협판, 묄렌도르프가 참의 등에 각각 임명되었다. 1882년 12월 4일에 통리아문은 담당 직무와 기능을 선명하게 표명한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통리아문 (統理衙門)
통리아문은 1882년 11월 17일, 외교 통상 전문가인 묄렌도르프가 고빙된 것을 계기로, 외교 통상 사무를 전담하기 위해 설치된 중앙 관청이다. 창설 당시 조영하가 판리, 김홍집이 협판, 묄렌도르프가 참의 등에 각각 임명되었다. 1882년 12월 4일에 통리아문은 담당 직무와 기능을 선명하게 표명한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조선시대 좌우포도청에서 수행한 업무를 모아 엮은 등록.
좌우포청등록 (左右捕廳謄錄)
조선시대 좌우포도청에서 수행한 업무를 모아 엮은 등록.
황국협회(皇國協會)는 1898년 독립협회(獨立協會) 활동에 대항하기 위해 보부상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어용단체이다. 1898년 6월 보부상들이 부국강병(富國强兵), 문명개화(文明開化), 충군애국(忠君愛國)을 기치로 농상공 실업을 진흥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결성하였다. 보수파 대신들에게 동원되어 독립협회의 활동을 방해하고,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를 공격하여 해산시키려 하였다. 1898년 12월 독립협회와 함께 황국협회도 해산되었으나, 1899년 3월 상무회사(商務會社)가 설립되어 보부상들의 활동을 이어갔다.
황국협회 (皇國協會)
황국협회(皇國協會)는 1898년 독립협회(獨立協會) 활동에 대항하기 위해 보부상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어용단체이다. 1898년 6월 보부상들이 부국강병(富國强兵), 문명개화(文明開化), 충군애국(忠君愛國)을 기치로 농상공 실업을 진흥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결성하였다. 보수파 대신들에게 동원되어 독립협회의 활동을 방해하고,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를 공격하여 해산시키려 하였다. 1898년 12월 독립협회와 함께 황국협회도 해산되었으나, 1899년 3월 상무회사(商務會社)가 설립되어 보부상들의 활동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