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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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정변(甲申政變)은 1884년(고종 21) 급진개화파가 청나라의 내정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외교권 확보와 조선의 개화를 목표로 일으킨 정변이다. 1884년 12월 4일(양력)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서재필 등 급진개화파가 청나라로부터의 독립과 조선의 개화를 목표로 일으킨 정변이었으나, 청나라의 군사 개입과 민중의 지지를 얻지 못함으로써 3일만에 실패로 돌아갔다.
갑신정변 (甲申政變)
갑신정변(甲申政變)은 1884년(고종 21) 급진개화파가 청나라의 내정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외교권 확보와 조선의 개화를 목표로 일으킨 정변이다. 1884년 12월 4일(양력)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서재필 등 급진개화파가 청나라로부터의 독립과 조선의 개화를 목표로 일으킨 정변이었으나, 청나라의 군사 개입과 민중의 지지를 얻지 못함으로써 3일만에 실패로 돌아갔다.
갑신혁신정강(甲申革新政綱)은 1884년(고종 21) 갑신정변 당시 김옥균 등 개화당이 독립과 개혁을 목표로 공포한 14개조 개혁안이다. 대내적으로는 정치권력의 장악, 정치체제의 정비, 경제적 · 군사적 기반 조성에 중점을 두었다.
갑신혁신정강 (甲申革新政綱)
갑신혁신정강(甲申革新政綱)은 1884년(고종 21) 갑신정변 당시 김옥균 등 개화당이 독립과 개혁을 목표로 공포한 14개조 개혁안이다. 대내적으로는 정치권력의 장악, 정치체제의 정비, 경제적 · 군사적 기반 조성에 중점을 두었다.
일반적인 의미의 개항은 외국과 국교를 맺고 통상 관계를 갖는 일을 말하지만, 우리나라 역사에서의 개항은 근대 개항기인 1876년 2월 26일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을 체결하여 문호를 개방하게 된 일을 말한다. 조선은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취하다가 1876년(고종 13) 2월 26일 강화도에서 체결된 조일수호조규, 이른바 강화도조약을 일본과 체결하고 개항하게 되었다.
개항 (開港)
일반적인 의미의 개항은 외국과 국교를 맺고 통상 관계를 갖는 일을 말하지만, 우리나라 역사에서의 개항은 근대 개항기인 1876년 2월 26일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을 체결하여 문호를 개방하게 된 일을 말한다. 조선은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취하다가 1876년(고종 13) 2월 26일 강화도에서 체결된 조일수호조규, 이른바 강화도조약을 일본과 체결하고 개항하게 되었다.
개화당은 근대 개화기 독립과 개화를 기치로 조선 사회의 개혁을 위하여 1884년 갑신정변(甲申政變)을 일으킨 정치 집단이다. 1870년대 조선 후기 실학사상과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등이 형성한 초기 개화사상, 중국을 통해 수용한 서구 문물 등을 공부한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 등이 현실 정치에서 개화사상을 실현하고 개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형성한 정치 세력이다. 개화당은 급진적 개혁을 추진하고자 1884년 12월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개화당 (開化黨)
개화당은 근대 개화기 독립과 개화를 기치로 조선 사회의 개혁을 위하여 1884년 갑신정변(甲申政變)을 일으킨 정치 집단이다. 1870년대 조선 후기 실학사상과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등이 형성한 초기 개화사상, 중국을 통해 수용한 서구 문물 등을 공부한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 등이 현실 정치에서 개화사상을 실현하고 개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형성한 정치 세력이다. 개화당은 급진적 개혁을 추진하고자 1884년 12월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공립협회는 1905년 4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안창호 등이 결성한 민족 운동 단체이다. 미주 한인들의 민족의식 고취, 국권 회복과 동족상애를 목적으로 설립하여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여러 지역에 지회를 설립하고 활동하였다.
공립협회 (共立協會)
공립협회는 1905년 4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안창호 등이 결성한 민족 운동 단체이다. 미주 한인들의 민족의식 고취, 국권 회복과 동족상애를 목적으로 설립하여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여러 지역에 지회를 설립하고 활동하였다.
공진회는 1906년 12월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조직된 계몽 단체이다. 1906년 12월 2일 민찬호가 이내수, 임준호, 임정수 등과 함께 하와이 동포의 자치, 민족의식 고취, 생활 개선, 조선 문화 수호 등을 목적으로 조직하였으며, 기관지 『공진회보』를 발행하였다.
공진회 (共進會)
공진회는 1906년 12월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조직된 계몽 단체이다. 1906년 12월 2일 민찬호가 이내수, 임준호, 임정수 등과 함께 하와이 동포의 자치, 민족의식 고취, 생활 개선, 조선 문화 수호 등을 목적으로 조직하였으며, 기관지 『공진회보』를 발행하였다.
국민교육회는 1904년 8월 이준, 이원긍, 전덕기, 유성준, 박정동, 최병헌 등이 중심이 되어 국민교육 실시를 목적으로 설립한 교육 계몽 운동 단체이다. 교육 구국 운동을 목적으로 설립하여 학교 설립과 교과서 편찬에 힘을 기울였고, 일제의 식민 교육 정책, 을사늑약, 고종의 강제 퇴위 등에 반대하였다.
국민교육회 (國民敎育會)
국민교육회는 1904년 8월 이준, 이원긍, 전덕기, 유성준, 박정동, 최병헌 등이 중심이 되어 국민교육 실시를 목적으로 설립한 교육 계몽 운동 단체이다. 교육 구국 운동을 목적으로 설립하여 학교 설립과 교과서 편찬에 힘을 기울였고, 일제의 식민 교육 정책, 을사늑약, 고종의 강제 퇴위 등에 반대하였다.
국민회는 1909년 2월 1일 미주 한인 단체인 공립협회와 합성협회가 통합하여 설립한 민족 운동 단체이다. 190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직되었던 공립협회와 하와이 합성협회가 1908년 11월부터 미주 한인 단체의 통합을 추진하여 1909년 2월 1일 미주 한인 사회의 통일 기관으로 창립한 한인 사회 단체이다.
국민회 (國民會)
국민회는 1909년 2월 1일 미주 한인 단체인 공립협회와 합성협회가 통합하여 설립한 민족 운동 단체이다. 190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직되었던 공립협회와 하와이 합성협회가 1908년 11월부터 미주 한인 단체의 통합을 추진하여 1909년 2월 1일 미주 한인 사회의 통일 기관으로 창립한 한인 사회 단체이다.
대동학회는 1907년 3월 설립된 친일 유교 단체이다. 전국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유림계를 친일화하려는 일본의 의도에 따라 1907년 3월 신기선, 이용직 등이 중심이 되어 유도(儒道)로서 체(體)를 삼고 신학문으로 용(用)을 삼아 신구의 사상을 합일시킨다는 목적을 내세우며 설립하였다.
대동학회 (大東學會)
대동학회는 1907년 3월 설립된 친일 유교 단체이다. 전국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유림계를 친일화하려는 일본의 의도에 따라 1907년 3월 신기선, 이용직 등이 중심이 되어 유도(儒道)로서 체(體)를 삼고 신학문으로 용(用)을 삼아 신구의 사상을 합일시킨다는 목적을 내세우며 설립하였다.
대한흥학회는 1909년 1월 일본에서 설립된 유학생 단체이다. 1905년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는 한국 유학생 수가 급증하면서 태극학회(太極學會), 공수학회(共修學會), 낙동친목회(洛東親睦會), 유학생구락부(留學生俱樂部), 호남학회(湖南學會), 광무학회(光武學會) 등 다수의 유학생 단체가 설립되었다. 이들 단체 중 일부가 통합하여 1908년에 대한학회(大韓學會), 다시 1909년 1월에 대한학회, 태극학회, 공수학회가 통합하여 설립된 단체이다.
대한흥학회 (大韓興學會)
대한흥학회는 1909년 1월 일본에서 설립된 유학생 단체이다. 1905년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는 한국 유학생 수가 급증하면서 태극학회(太極學會), 공수학회(共修學會), 낙동친목회(洛東親睦會), 유학생구락부(留學生俱樂部), 호남학회(湖南學會), 광무학회(光武學會) 등 다수의 유학생 단체가 설립되었다. 이들 단체 중 일부가 통합하여 1908년에 대한학회(大韓學會), 다시 1909년 1월에 대한학회, 태극학회, 공수학회가 통합하여 설립된 단체이다.
독립협회는 1896년 경성에서 민족주의·민주주의·근대화운동을 전개한 정치·사회 단체이다. 한국 최초의 근대적 사회 정치 단체로 독립문 건립 기구를 표방하여 창립된 후,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다가 해산되었다. 자강을 통한 자주 독립을 주장하며, 내부에 황제권을 중심으로 한 점진적 개혁 노선과 관료에 의한 권력 독점을 지향한 노선이 병존하였다. 「헌의6조」를 제출하여 중추원관제 개편이라는 성과를 얻었으나, 구제(舊制) 복구를 주장하는 보수 세력의 반발을 받았고, 급진파의 과격한 활동을 황제권 강화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 고종에 의해 해산되었다.
독립협회 (獨立協會)
독립협회는 1896년 경성에서 민족주의·민주주의·근대화운동을 전개한 정치·사회 단체이다. 한국 최초의 근대적 사회 정치 단체로 독립문 건립 기구를 표방하여 창립된 후,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다가 해산되었다. 자강을 통한 자주 독립을 주장하며, 내부에 황제권을 중심으로 한 점진적 개혁 노선과 관료에 의한 권력 독점을 지향한 노선이 병존하였다. 「헌의6조」를 제출하여 중추원관제 개편이라는 성과를 얻었으나, 구제(舊制) 복구를 주장하는 보수 세력의 반발을 받았고, 급진파의 과격한 활동을 황제권 강화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 고종에 의해 해산되었다.
『동국역사(東國歷史)』 또는 『신정동국역사(新訂東國歷史)』는 1906년 12월에 유근과 원영의가 저술하고 장지연이 교열하여 발행한 초등용 국사 교과서이다. 휘문의숙 등 사립학교에서 국사 교과서로 활용되었으나, 1908년 교과서 검정제가 시행되면서 학부 검정을 통과하지 못하여 학부 불인가 역사 교과서가 되었다.
동국역사 (東國歷史)
『동국역사(東國歷史)』 또는 『신정동국역사(新訂東國歷史)』는 1906년 12월에 유근과 원영의가 저술하고 장지연이 교열하여 발행한 초등용 국사 교과서이다. 휘문의숙 등 사립학교에서 국사 교과서로 활용되었으나, 1908년 교과서 검정제가 시행되면서 학부 검정을 통과하지 못하여 학부 불인가 역사 교과서가 되었다.
동회는 1900년대 초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이 친목 도모, 질서 유지, 상호부조, 권익 신장을 위해 조직한 자치단체이다. 1903년부터 1908년까지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이 각 지역의 농장 단위로 10명 이상의 한인이 거주하는 곳에 친목 도모, 질서 유지, 상호부조와 권익 신장을 위해 동장(洞長)과 사찰(査察)을 선임하여 조직한 한인 이민자 자치단체였다.
동회 (洞會)
동회는 1900년대 초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이 친목 도모, 질서 유지, 상호부조, 권익 신장을 위해 조직한 자치단체이다. 1903년부터 1908년까지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이 각 지역의 농장 단위로 10명 이상의 한인이 거주하는 곳에 친목 도모, 질서 유지, 상호부조와 권익 신장을 위해 동장(洞長)과 사찰(査察)을 선임하여 조직한 한인 이민자 자치단체였다.
『만국정표(萬國政表)』는 1886년(고종 23) 박문국에서 편찬한 세계 각국의 정치, 경제, 군사, 사회 관련 사항을 담은 책이다. 조선이 일본, 서구 국가들과 수교하고 교류와 교역이 확대되면서,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 6주에 속한 세계 각국의 정치, 경제, 군사, 사회 관련 다양한 정보, 지식을 보급하고 확산시키기 위해 간행한 책이다.
만국정표 (萬國政表)
『만국정표(萬國政表)』는 1886년(고종 23) 박문국에서 편찬한 세계 각국의 정치, 경제, 군사, 사회 관련 사항을 담은 책이다. 조선이 일본, 서구 국가들과 수교하고 교류와 교역이 확대되면서,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 6주에 속한 세계 각국의 정치, 경제, 군사, 사회 관련 다양한 정보, 지식을 보급하고 확산시키기 위해 간행한 책이다.
수구당(守舊黨)은 19세기 말 명성황후와 민씨 척족을 중심으로 형성된 보수적 정치 세력으로 갑신정변을 일으킨 개화당과 대립하였고, 갑오개혁과 독립협회가 주도했던 개혁에 반대하며 구체제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선에서 일부 개혁을 추진하려 했던 정치 세력이다. 외교적으로 친청(親淸) 노선을 취하며 청국에서 추진되던 개혁을 본받아 온건하고 점진적인 개혁을 추진하였다. 따라서 개화당(開化黨) 과 대립하였으며, 갑신정변 실패 후 다시 집권하였다. 이후에도 구체제를 토대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일부 개혁만을 추진하려 하였다.
수구당 (守舊黨)
수구당(守舊黨)은 19세기 말 명성황후와 민씨 척족을 중심으로 형성된 보수적 정치 세력으로 갑신정변을 일으킨 개화당과 대립하였고, 갑오개혁과 독립협회가 주도했던 개혁에 반대하며 구체제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선에서 일부 개혁을 추진하려 했던 정치 세력이다. 외교적으로 친청(親淸) 노선을 취하며 청국에서 추진되던 개혁을 본받아 온건하고 점진적인 개혁을 추진하였다. 따라서 개화당(開化黨) 과 대립하였으며, 갑신정변 실패 후 다시 집권하였다. 이후에도 구체제를 토대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일부 개혁만을 추진하려 하였다.
『수신사일기』는 1876년 5월 제1차 수신사 김기수가 일본에 사행하며 견문한 내용을 기록한 기행문이다. 일본에서 견문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분야의 다양한 정보와 일본 측과 왕래한 서신, 문답, 그리고 사절단 명단 등을 기록한 사행록(使行錄)으로 근대 초 일본의 변화, 한일 외교와 국제 관계의 변화상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수신사일기 (修信使日記)
『수신사일기』는 1876년 5월 제1차 수신사 김기수가 일본에 사행하며 견문한 내용을 기록한 기행문이다. 일본에서 견문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분야의 다양한 정보와 일본 측과 왕래한 서신, 문답, 그리고 사절단 명단 등을 기록한 사행록(使行錄)으로 근대 초 일본의 변화, 한일 외교와 국제 관계의 변화상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아관파천(俄館播遷)은 1896년 2월 11일, 고종과 측근 인사들의 요청에 러시아공사가 동의하여 고종과 왕세자가 비밀리에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사건이다. 을미사변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끼던 고종과 측근 인사들의 요청에 러시아공사 베베르가 동의하여 비밀리에 고종과 왕세자가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사건이다. 아관파천으로 인해 친일 내각이 무너졌고, 고종은 경운궁 환궁 전 1년 동안 러시아공사관에 머물렀다.
아관파천 (俄館播遷)
아관파천(俄館播遷)은 1896년 2월 11일, 고종과 측근 인사들의 요청에 러시아공사가 동의하여 고종과 왕세자가 비밀리에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사건이다. 을미사변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끼던 고종과 측근 인사들의 요청에 러시아공사 베베르가 동의하여 비밀리에 고종과 왕세자가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사건이다. 아관파천으로 인해 친일 내각이 무너졌고, 고종은 경운궁 환궁 전 1년 동안 러시아공사관에 머물렀다.
애국계몽운동(愛國啓蒙運動)은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국권 상실의 위기감이 고조되던 시기 갑신정변, 갑오개혁, 독립협회운동으로 이어지는 개화 자강 계열의 운동을 계승하여 전개된 국권회복운동이다. 지식인들은 교육, 계몽, 언론 활동 등을 통해 우리나라 민족의 실력을 양성하여 국권을 회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정치사회단체, 학회, 학교를 설립하여 애국계몽운동을 펼쳤다.
애국계몽운동 (愛國啓蒙運動)
애국계몽운동(愛國啓蒙運動)은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국권 상실의 위기감이 고조되던 시기 갑신정변, 갑오개혁, 독립협회운동으로 이어지는 개화 자강 계열의 운동을 계승하여 전개된 국권회복운동이다. 지식인들은 교육, 계몽, 언론 활동 등을 통해 우리나라 민족의 실력을 양성하여 국권을 회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정치사회단체, 학회, 학교를 설립하여 애국계몽운동을 펼쳤다.
여자교육회는 1906년 5월 서울에서 여성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설립된 여성단체이다. 1908년까지 양규의숙(養閨義塾) 후원, 여자보학원(女子普學院) 여학교 설립 및 운영, 여성잡지 『여자지남(女子指南)』 발행, 생명보험과(生命保險課) 조직, 공립병원 설립, 토론회 및 연설회를 통한 여성교육과 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여자교육회 (女子敎育會)
여자교육회는 1906년 5월 서울에서 여성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설립된 여성단체이다. 1908년까지 양규의숙(養閨義塾) 후원, 여자보학원(女子普學院) 여학교 설립 및 운영, 여성잡지 『여자지남(女子指南)』 발행, 생명보험과(生命保險課) 조직, 공립병원 설립, 토론회 및 연설회를 통한 여성교육과 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자신회(自新會)는 1907년 2월 을사오적 처단과 계몽운동을 목표로 결성한 단체이다. 1907년 1월부터 나철[나인영], 이기, 오기호 등이 을사오적을 처단하기 위해 결사대를 모집하고 자금을 모금하여 2월 3일, 200여 명의 회원으로 조직한 의열투쟁 조직이자 계몽운동단체이다. 을사오적을 처단하기 위한 거사를 일으켰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하였다.
자신회 (自新會)
자신회(自新會)는 1907년 2월 을사오적 처단과 계몽운동을 목표로 결성한 단체이다. 1907년 1월부터 나철[나인영], 이기, 오기호 등이 을사오적을 처단하기 위해 결사대를 모집하고 자금을 모금하여 2월 3일, 200여 명의 회원으로 조직한 의열투쟁 조직이자 계몽운동단체이다. 을사오적을 처단하기 위한 거사를 일으켰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