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정인"
검색결과 총 21건
1919년 3월 중순부터 4월 중순에 걸쳐 함경북도 명천군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명천 3·1운동 (明川 三一運動)
1919년 3월 중순부터 4월 중순에 걸쳐 함경북도 명천군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1919년 3월 초순부터 중순에 걸쳐 함경남도 북청군 노덕면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북청 노덕면 3·1운동 (北靑 老德面 三一運動)
1919년 3월 초순부터 중순에 걸쳐 함경남도 북청군 노덕면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1919년 3월 중순 함경북도 성진군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성진 3·1운동 (城津 三一運動)
1919년 3월 중순 함경북도 성진군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1919년 3월 초순부터 중순에 걸쳐 황해도 수안군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수안 3·1운동 (遂安 三一運動)
1919년 3월 초순부터 중순에 걸쳐 황해도 수안군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1919년 3월 중순부터 하순에 걸쳐 황해도 연백군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연백 3·1운동 (延白 三一運動)
1919년 3월 중순부터 하순에 걸쳐 황해도 연백군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1919년 3월 1일부터 4월 초순에 걸쳐 함경남도 원산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원산 3·1운동 (元山 三一運動)
1919년 3월 1일부터 4월 초순에 걸쳐 함경남도 원산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1919년 3월 7일부터 4월 중순에 걸쳐 평안북도 의주군 옥상면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의주 옥상면 3·1운동 (義州 玉尙面 三一運動)
1919년 3월 7일부터 4월 중순에 걸쳐 평안북도 의주군 옥상면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1919년 3월 11일부터 4월 하순에 걸쳐 황해도 장연군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장연 3·1운동 (長淵 三一運動)
1919년 3월 11일부터 4월 하순에 걸쳐 황해도 장연군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1919년 3월 6일부터 4월 초순에 걸쳐 황해도 재령군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재령 3·1운동 (載寧 三一運動)
1919년 3월 6일부터 4월 초순에 걸쳐 황해도 재령군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김경희는 일제 강점기 때, 숭의여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비밀결사인 송죽회를 조직하고, 평양 만세시위를 주도하였으며,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888년에 평양에서 태어나 숭의여학교를 졸업하였다. 평양의 숭의여학교의 교사와 학생이 결성한 송죽회의 제1대 회장에 취임하였다. 1916년에 학생들에게 항일사상을 고취한 혐의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였다. 이후 송죽회 활동을 이어가며 서문밖교회에서 권사로 활동하였다. 1919년 평양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상해로 망명하였다. 귀국하여 대한애국부인회 결성을 준비하던 중에 1919년에 사망하였다.
김경희 (金慶喜)
김경희는 일제 강점기 때, 숭의여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비밀결사인 송죽회를 조직하고, 평양 만세시위를 주도하였으며,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888년에 평양에서 태어나 숭의여학교를 졸업하였다. 평양의 숭의여학교의 교사와 학생이 결성한 송죽회의 제1대 회장에 취임하였다. 1916년에 학생들에게 항일사상을 고취한 혐의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였다. 이후 송죽회 활동을 이어가며 서문밖교회에서 권사로 활동하였다. 1919년 평양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상해로 망명하였다. 귀국하여 대한애국부인회 결성을 준비하던 중에 1919년에 사망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함경북도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동풍신 (董豊信)
일제강점기 때, 함경북도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비밀결사인 소녀회를 조직하여 광주학생운동 및 백지동맹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
박옥련 (朴玉蓮)
일제강점기 때, 비밀결사인 소녀회를 조직하여 광주학생운동 및 백지동맹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전라도 광주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박우말례 (朴又末禮)
일제강점기 때, 전라도 광주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원전동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신분금 (申分今)
일제강점기 때, 원전동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대한민국애국부인회에서 경기도지부장을 역임하며 임시정부를 지원한 독립운동가.
신의경 (辛義卿)
일제강점기 때, 대한민국애국부인회에서 경기도지부장을 역임하며 임시정부를 지원한 독립운동가.
유인경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애국부인회 대구지부장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896년(고종 33)에 태어나 1944년에 사망했다. 1919년에 혈성단애국부인회와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가 통합하여 결성한 대한민국애국부인회에서 거창·밀양·통영 지역을 통괄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였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는 독립전쟁에 대비한 체제로 조직을 전환하고 독립운동 자금 모집에 힘쓴 결과 임시정부에 6,000원을 송금하였다. 1919년 11월에 발각되면서 대한민국청년단 지도자들과 함께 체포되어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유인경 (兪仁卿)
유인경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애국부인회 대구지부장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896년(고종 33)에 태어나 1944년에 사망했다. 1919년에 혈성단애국부인회와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가 통합하여 결성한 대한민국애국부인회에서 거창·밀양·통영 지역을 통괄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였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는 독립전쟁에 대비한 체제로 조직을 전환하고 독립운동 자금 모집에 힘쓴 결과 임시정부에 6,000원을 송금하였다. 1919년 11월에 발각되면서 대한민국청년단 지도자들과 함께 체포되어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원전동시장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
윤악이 (尹岳伊)
일제강점기 때,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원전동시장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근우회 회령지부 서무부원으로 활동하면서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는 시위를 계획한 독립운동가.
윤천녀 (尹天女)
일제강점기 때, 근우회 회령지부 서무부원으로 활동하면서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는 시위를 계획한 독립운동가.
임봉선은 일제강점기 때, 대구 신명여학교 교사 재임 중에 서문외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교육자·독립운동가이다. 경상북도 칠곡 출신으로 1897년에 태어나 1923년에 사망하였다. 33인 민족대표의 일원으로 경상도의 연락 책임을 맡은 이갑성이 이용상을 통해 독립선언서를 이만집에게 전달하였다. 이만집은 남산당교회의 김태련·김영서와 의논하여 3월 8일에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당시 신명여학교 교사였던 임봉선도 학생 50명을 이끌고 나와 시위 대열에 합세하였다. 임봉선은 시위 현장에서 체포되어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임봉선 (林鳳善)
임봉선은 일제강점기 때, 대구 신명여학교 교사 재임 중에 서문외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교육자·독립운동가이다. 경상북도 칠곡 출신으로 1897년에 태어나 1923년에 사망하였다. 33인 민족대표의 일원으로 경상도의 연락 책임을 맡은 이갑성이 이용상을 통해 독립선언서를 이만집에게 전달하였다. 이만집은 남산당교회의 김태련·김영서와 의논하여 3월 8일에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당시 신명여학교 교사였던 임봉선도 학생 50명을 이끌고 나와 시위 대열에 합세하였다. 임봉선은 시위 현장에서 체포되어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월 13일 함경남도 정평군 춘유면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정평 춘유 3·1운동 (定平 春柳 三一運動)
1919년 3월 13일 함경남도 정평군 춘유면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