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정인"
검색결과 총 88건
박현숙은 일제강점기 독서회인 소녀회 회원으로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29년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를 다니던 중 소녀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1929년 11월 3일에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하였다. 1930년 1월 15일 소녀회 가입 사실이 발각되어 검거되었으며,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박현숙 (朴賢淑)
박현숙은 일제강점기 독서회인 소녀회 회원으로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29년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를 다니던 중 소녀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1929년 11월 3일에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하였다. 1930년 1월 15일 소녀회 가입 사실이 발각되어 검거되었으며,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백신영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애국부인회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개신교 전도사 활동을 하던 중 1919년 7월에 대한민국애국부인회에 가입하였다. 부산지부장과 결사부장 등을 역임하다가 1919년 11월 경찰에 붙잡혔다. 1920년 6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백신영 (白信永)
백신영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애국부인회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개신교 전도사 활동을 하던 중 1919년 7월에 대한민국애국부인회에 가입하였다. 부산지부장과 결사부장 등을 역임하다가 1919년 11월 경찰에 붙잡혔다. 1920년 6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신관빈은 1919년 경기도 개성군에서 3·1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감리교 전도사로 활동하였으며, 1919년 2월 28일 개성에 도착한 독립선언서를 3월 1일에 전도사 어윤희와 함께 개성군 송도면 만월정·북본정·동본정 일대에서 배포하였다. 1919년 4월 1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으며,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신관빈 (申寬彬)
신관빈은 1919년 경기도 개성군에서 3·1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감리교 전도사로 활동하였으며, 1919년 2월 28일 개성에 도착한 독립선언서를 3월 1일에 전도사 어윤희와 함께 개성군 송도면 만월정·북본정·동본정 일대에서 배포하였다. 1919년 4월 1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으며,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심계월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3년 경성여자상업학교 재학 중 독서회를 조직하고 동맹휴학을 지도하였고, 졸업 후 본격적으로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였다. 1935년 조선공산당재건동맹 용산적색노동조합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심계월 (沈桂月)
심계월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3년 경성여자상업학교 재학 중 독서회를 조직하고 동맹휴학을 지도하였고, 졸업 후 본격적으로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였다. 1935년 조선공산당재건동맹 용산적색노동조합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심영식은 일제강점기에 경기도 개성군의 3·1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호수돈여학교 기예과를 졸업하였으며, 1919년 3월 3일에 호수돈여학교 학생들이 주도한 개성 최초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3월 4일에는 송도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촉발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검거되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심영식 (沈永植)
심영식은 일제강점기에 경기도 개성군의 3·1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호수돈여학교 기예과를 졸업하였으며, 1919년 3월 3일에 호수돈여학교 학생들이 주도한 개성 최초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3월 4일에는 송도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촉발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검거되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양진실은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조직된 대한애국부인회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대한애국부인회 진남포 감리교지회의 모집원으로 활동하였다. 1921년 2월 2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평양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양진실 (梁眞實)
양진실은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조직된 대한애국부인회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대한애국부인회 진남포 감리교지회의 모집원으로 활동하였다. 1921년 2월 2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평양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유예도는 1919년 천안 아우내장터 3·1운동을 이끈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이화학당에 재학 중이던 1919년에 3·1운동이 일어나자, 학교 선배로부터 고향으로 내려가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3월 13일에 사촌 동생 유관순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지니고 귀향하였다. 4월 1일, 3,000여 명이 운집한 아우내장터에서 유관순과 함께 직접 만든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유예도 (柳禮道)
유예도는 1919년 천안 아우내장터 3·1운동을 이끈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이화학당에 재학 중이던 1919년에 3·1운동이 일어나자, 학교 선배로부터 고향으로 내려가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3월 13일에 사촌 동생 유관순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지니고 귀향하였다. 4월 1일, 3,000여 명이 운집한 아우내장터에서 유관순과 함께 직접 만든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윤선녀는 1930년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는 만세시위를 주도하고 근우회 회원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보흥여학교 재학 중이던 1930년 1월 근우회 회령지회 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다. 같은 달 보흥여학교에서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는 만세시위를 주도하였고, 2월에는 청진고등여학교 학생들과 만세시위를 모의하였다. 그러나 시위 모의가 발각되어 체포되었고,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윤선녀 (尹仙女)
윤선녀는 1930년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는 만세시위를 주도하고 근우회 회원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보흥여학교 재학 중이던 1930년 1월 근우회 회령지회 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다. 같은 달 보흥여학교에서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는 만세시위를 주도하였고, 2월에는 청진고등여학교 학생들과 만세시위를 모의하였다. 그러나 시위 모의가 발각되어 체포되었고,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윤찬복은 일제강점기에 평안남도 순천군에서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를 조직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후원 활동을 전개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장로교 전도사로 활동하다가 1919년 12월 3일 순천군에 있는 개신교계 여학교에서 정찬성, 최복길과 함께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를 조직하고 회장을 맡았다. 회원을 모집하고 회비를 모아 대한민국임시정부서 파견한 차경신에게 전달하였다. 1921년 2월에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의 조직과 활동이 발각되어 체포되었으며,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윤찬복 (尹贊福)
윤찬복은 일제강점기에 평안남도 순천군에서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를 조직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후원 활동을 전개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장로교 전도사로 활동하다가 1919년 12월 3일 순천군에 있는 개신교계 여학교에서 정찬성, 최복길과 함께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를 조직하고 회장을 맡았다. 회원을 모집하고 회비를 모아 대한민국임시정부서 파견한 차경신에게 전달하였다. 1921년 2월에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의 조직과 활동이 발각되어 체포되었으며,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이성완은 일제강점기에 3·1운동에 참여하고 혈성단애국부인회와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조직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일에 만세시위가 시작되자 서울의 만세시위에 참여하고, 함경남도 원산 상동교회 등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1919년 4월 장선희, 오현주, 오현관, 이정숙과 함께 혈성단애국부인회를 결성하였다. 혈성단애국부인회는 같은 해 6월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와 통합하여 대한민국애국부인회로 개편되었다. 이성완은 대한민국애국부인회 결사부장으로 활약하였으며, 이후 원산여자청년회와 정평여자청년회에서 여성청년운동을 이끌었다.
이성완 (李誠完)
이성완은 일제강점기에 3·1운동에 참여하고 혈성단애국부인회와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조직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일에 만세시위가 시작되자 서울의 만세시위에 참여하고, 함경남도 원산 상동교회 등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1919년 4월 장선희, 오현주, 오현관, 이정숙과 함께 혈성단애국부인회를 결성하였다. 혈성단애국부인회는 같은 해 6월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와 통합하여 대한민국애국부인회로 개편되었다. 이성완은 대한민국애국부인회 결사부장으로 활약하였으며, 이후 원산여자청년회와 정평여자청년회에서 여성청년운동을 이끌었다.
이정숙은 일제강점기 혈성단애국부인회, 대한민국애국부인회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세브란스병원 간호사로서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적십자부 부장을 맡았다. 세브란스병원 간호사들을 회원으로 가입시키고 모금 활동을 하다가 1919년 11월 체포되었으며, 징역 2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이정숙 (李貞淑)
이정숙은 일제강점기 혈성단애국부인회, 대한민국애국부인회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세브란스병원 간호사로서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적십자부 부장을 맡았다. 세브란스병원 간호사들을 회원으로 가입시키고 모금 활동을 하다가 1919년 11월 체포되었으며, 징역 2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이혜경은 일제강점기에 대한민국애국부인회와 근우회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진성여학교 교사로 있던 1919년 10월 김마리아와 함께 대한민국애국부인회의 개편을 주도하였고, 부회장 및 원산지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11월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만기 출옥 후에 성경학원 교사로 재직하였으며, 1928년에는 근우회 대구지회에서 활동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이혜경 (李惠卿)
이혜경은 일제강점기에 대한민국애국부인회와 근우회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진성여학교 교사로 있던 1919년 10월 김마리아와 함께 대한민국애국부인회의 개편을 주도하였고, 부회장 및 원산지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11월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만기 출옥 후에 성경학원 교사로 재직하였으며, 1928년에는 근우회 대구지회에서 활동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임명애는 1919년 경기도 파주군에서 3·1운동을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0일 교하공립학교에서 학생들을 선동하여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3월 25일에는 격문을 작성해 배포하였으며, 3월 27일에는 교하리에서 주민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임명애 (林明愛)
임명애는 1919년 경기도 파주군에서 3·1운동을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0일 교하공립학교에서 학생들을 선동하여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3월 25일에는 격문을 작성해 배포하였으며, 3월 27일에는 교하리에서 주민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장경례는 일제강점기 독서회인 소녀회의 회원으로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28년 소녀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하였다. 1930년 1월 15일 소녀회 회원이라는 사실이 발각되어 체포되었으며,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장경례 (張慶禮)
장경례는 일제강점기 독서회인 소녀회의 회원으로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28년 소녀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하였다. 1930년 1월 15일 소녀회 회원이라는 사실이 발각되어 체포되었으며,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장매성은 일제강점기 독서회인 소녀회를 조직하고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28년 광주공립보통학교를 다니던 중 소녀회를 결성하여 활동하였고, 1929년 11월 3일과 12일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하였다. 1930년 1월 15일 소녀회를 주도한 사실이 발각되어 검거되었으며,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장매성 (張梅性)
장매성은 일제강점기 독서회인 소녀회를 조직하고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28년 광주공립보통학교를 다니던 중 소녀회를 결성하여 활동하였고, 1929년 11월 3일과 12일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하였다. 1930년 1월 15일 소녀회를 주도한 사실이 발각되어 검거되었으며,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정찬성은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순천군에서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를 조직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후원 활동을 전개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12월 3일 순천군 제현면 문창리에 있는 개신교계 여학교에서 윤찬복, 최복길과 함께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를 조직하고 회계를 맡았다. 회원을 모집하고 회비를 걷어 마련한 후원금을 통신원 차경신을 통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냈다. 1921년 체포되어 징역 3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정찬성 (鄭燦成)
정찬성은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순천군에서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를 조직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후원 활동을 전개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12월 3일 순천군 제현면 문창리에 있는 개신교계 여학교에서 윤찬복, 최복길과 함께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를 조직하고 회계를 맡았다. 회원을 모집하고 회비를 걷어 마련한 후원금을 통신원 차경신을 통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냈다. 1921년 체포되어 징역 3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진신애는 1919년 수피아여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전라남도 광주군에서 3·1운동을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0일 광주 시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동료 교사인 박애순과 함께 학생을 이끌고 참여하였다.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행진하다가 체포되었으며,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진신애 (陳信愛)
진신애는 1919년 수피아여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전라남도 광주군에서 3·1운동을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0일 광주 시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동료 교사인 박애순과 함께 학생을 이끌고 참여하였다.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행진하다가 체포되었으며,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최갑순은 일제강점기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와 대한민국애국부인회의 부회장으로서 대한민국임시정부 후원 활동을 펼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6월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와 혈성단애국부인회가 통합하여 출범한 대한민국애국부인회가 김마리아를 중심으로 개편될 때까지 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28년 대한민국청년외교단 상하이지부장으로 활동한 남편 송세호와 함께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최갑순 (崔甲順)
최갑순은 일제강점기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와 대한민국애국부인회의 부회장으로서 대한민국임시정부 후원 활동을 펼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6월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와 혈성단애국부인회가 통합하여 출범한 대한민국애국부인회가 김마리아를 중심으로 개편될 때까지 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28년 대한민국청년외교단 상하이지부장으로 활동한 남편 송세호와 함께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최봉선은 일제강점기에 경상남도 마산부에서 3·1운동에 참여하고 친일파를 규탄하는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1일 구 마산 장날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후 1927년에는 통영에서 유치원 보모로 일하면서 친일적인 발언을 일삼은 도평의원 김기정을 규탄하는 시민대회를 준비하고 홍보하는 활동을 하였다.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최봉선 (崔鳳善)
최봉선은 일제강점기에 경상남도 마산부에서 3·1운동에 참여하고 친일파를 규탄하는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1일 구 마산 장날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후 1927년에는 통영에서 유치원 보모로 일하면서 친일적인 발언을 일삼은 도평의원 김기정을 규탄하는 시민대회를 준비하고 홍보하는 활동을 하였다.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강근호는 일제강점기, 청산리 대첩에 참전한 독립운동가이다. 청산리 대첩에 참여하고 러시아로 넘어가 자유시사변을 겪은 후 반공 투쟁을 벌이다 옥고를 치렀다. 다시 만주로 돌아와 교육 활동에 종사하고 군사훈련 교관으로 활약하였다. 광복 후에 육군사관학교를 거쳐 소위로 임관해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
강근호 (姜槿虎)
강근호는 일제강점기, 청산리 대첩에 참전한 독립운동가이다. 청산리 대첩에 참여하고 러시아로 넘어가 자유시사변을 겪은 후 반공 투쟁을 벌이다 옥고를 치렀다. 다시 만주로 돌아와 교육 활동에 종사하고 군사훈련 교관으로 활약하였다. 광복 후에 육군사관학교를 거쳐 소위로 임관해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