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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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창은 조선과 대한제국에서 가자를 이끄는 노래 잘하는 악사를 말한다. 아악 제례에서 노래는 등가에만 편성되었고, 도창은 등가에서 가자를 이끌며 노래를 지도하는 악사 역할을 담당하였다. 복식은 복두와 강공복을 착용해 가자 및 악생과 구별하였다. 숙종 이후 문묘 제례에서는 헌가에도 노래가 포함되어 도창이 편성되었다. 문묘의 등가·헌가에 각각 가자 2인과 도창 2인을 편성하였다. 종묘 제례에서는 도창이 없었으나 현재는 종묘와 문묘 등의 제사에서 가창자를 모두 도창이라 한다. 또한 20세기 창극에서 무대 옆 해설자 역할을 도창이라 한다.
도창 (導唱)
도창은 조선과 대한제국에서 가자를 이끄는 노래 잘하는 악사를 말한다. 아악 제례에서 노래는 등가에만 편성되었고, 도창은 등가에서 가자를 이끌며 노래를 지도하는 악사 역할을 담당하였다. 복식은 복두와 강공복을 착용해 가자 및 악생과 구별하였다. 숙종 이후 문묘 제례에서는 헌가에도 노래가 포함되어 도창이 편성되었다. 문묘의 등가·헌가에 각각 가자 2인과 도창 2인을 편성하였다. 종묘 제례에서는 도창이 없었으나 현재는 종묘와 문묘 등의 제사에서 가창자를 모두 도창이라 한다. 또한 20세기 창극에서 무대 옆 해설자 역할을 도창이라 한다.
속악은 아악과 대비되는 음악, 또는 음악의 큰 갈래인 아악·당악·향악 중 하나인 향악을 뜻한다. 고려시대에는 향악·당악·아악의 세 갈래 음악이 있었다. 속악은 아악의 대칭어로서 향악과 당악을 뜻하는 상위 개념인데, 때로 향악을 뜻하기도 했다. 이는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져, 속악은 상위 개념으로서 향악과 당악 및 이를 바탕으로 새로 만든 신악까지 두루 포함하는 용어로도 쓰이고, 향악의 의미로도 쓰였다.
속악 (俗樂)
속악은 아악과 대비되는 음악, 또는 음악의 큰 갈래인 아악·당악·향악 중 하나인 향악을 뜻한다. 고려시대에는 향악·당악·아악의 세 갈래 음악이 있었다. 속악은 아악의 대칭어로서 향악과 당악을 뜻하는 상위 개념인데, 때로 향악을 뜻하기도 했다. 이는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져, 속악은 상위 개념으로서 향악과 당악 및 이를 바탕으로 새로 만든 신악까지 두루 포함하는 용어로도 쓰이고, 향악의 의미로도 쓰였다.
악공은 나라의 기관이나 민간에서 활동하는 음악 연주자의 범칭이다. 조선 초까지는 아악·속악 연주자를 모두 포함했으나 세조의 악제 개혁 이후 속악 연주자로 한정되고 아악 연주자는 ‘악생’으로 구분되었다. 신분도 악생은 양인, 악공은 공천에서 선발되었다. 그러나 실제 두 집단이 항상 엄격히 구분된 것은 아니다. 악공은 제례·조회·연향에서 음악과 춤을 담당했고, 종묘·영녕전에서는 『보태평』·『정대업』의 춤을, 외연에서는 가면무인 「처용무」도 맡았다. 또한 아악기를 포함한 다양한 악기 연주와 노래, 춤까지 수행한 종합적인 연행자였다.
악공 (樂工)
악공은 나라의 기관이나 민간에서 활동하는 음악 연주자의 범칭이다. 조선 초까지는 아악·속악 연주자를 모두 포함했으나 세조의 악제 개혁 이후 속악 연주자로 한정되고 아악 연주자는 ‘악생’으로 구분되었다. 신분도 악생은 양인, 악공은 공천에서 선발되었다. 그러나 실제 두 집단이 항상 엄격히 구분된 것은 아니다. 악공은 제례·조회·연향에서 음악과 춤을 담당했고, 종묘·영녕전에서는 『보태평』·『정대업』의 춤을, 외연에서는 가면무인 「처용무」도 맡았다. 또한 아악기를 포함한 다양한 악기 연주와 노래, 춤까지 수행한 종합적인 연행자였다.
악사는 악공과 악생을 지도하고 의례 음악을 지휘·감독하는 위치에 있는 악인을 가리키는 경칭이다. 궁중 음악의 전문가로 악기 개조와 제작까지 담당하였다. 일부는 전악 등 관직에 임명되어 연향에서 노래를 이끌고 제례에서 가자를 이끄는 도창 역할을 하였다. 악사들은 『악학궤범』·『금합자보』·『양금신보』 등 악보 편찬에도 참여해 음악 전승에 기여하였다. 갑오개혁 이후 장악 기관의 명칭과 상위 기관 및 직제가 변하면서, 악사(樂師)의 개념은 이전과 달리 직제명으로 쓰이게 되었다. 민속 연주자를 뜻하는 악사(樂士)와는 다른 개념이다.
악사 (樂師)
악사는 악공과 악생을 지도하고 의례 음악을 지휘·감독하는 위치에 있는 악인을 가리키는 경칭이다. 궁중 음악의 전문가로 악기 개조와 제작까지 담당하였다. 일부는 전악 등 관직에 임명되어 연향에서 노래를 이끌고 제례에서 가자를 이끄는 도창 역할을 하였다. 악사들은 『악학궤범』·『금합자보』·『양금신보』 등 악보 편찬에도 참여해 음악 전승에 기여하였다. 갑오개혁 이후 장악 기관의 명칭과 상위 기관 및 직제가 변하면서, 악사(樂師)의 개념은 이전과 달리 직제명으로 쓰이게 되었다. 민속 연주자를 뜻하는 악사(樂士)와는 다른 개념이다.
악생은 조선시대 아악 연주, 노래, 일무를 담당한 악인이다. 조선 초 ‘악공’은 아악·속악 연주자를 통칭하였다. 세조의 악제 개혁 후 궁중음악 기관이 장악원으로 일원화되며 양인 아악 연주자는 ‘악생’, 천인 속악 연주자는 ‘악공’으로 구분되었으나 두 부류 모두 아악·속악을 같이 연습해야 하였다. 악생은 주로 국가 제례에서 아악 연주, 악장 노래, 일무를 담당했지만 둑제 등 속악 의식도 맡았다. 한편, 일본 왕립 음악기관인 아악료에서 음악을 전수한 고구려·백제·신라 출신의 악인을 악생이라고 했으나 장악원의 악생과는 다른 개념이다.
악생 (樂生)
악생은 조선시대 아악 연주, 노래, 일무를 담당한 악인이다. 조선 초 ‘악공’은 아악·속악 연주자를 통칭하였다. 세조의 악제 개혁 후 궁중음악 기관이 장악원으로 일원화되며 양인 아악 연주자는 ‘악생’, 천인 속악 연주자는 ‘악공’으로 구분되었으나 두 부류 모두 아악·속악을 같이 연습해야 하였다. 악생은 주로 국가 제례에서 아악 연주, 악장 노래, 일무를 담당했지만 둑제 등 속악 의식도 맡았다. 한편, 일본 왕립 음악기관인 아악료에서 음악을 전수한 고구려·백제·신라 출신의 악인을 악생이라고 했으나 장악원의 악생과는 다른 개념이다.
영관은 업으로 하는 악인이다. 고려와 조선에서 음악을 직업으로 수행하는 이들을 통칭한 말로, 악사와 악공을 모두 포함한다. 『악서』에 따르면 ‘영’은 스스로 즐기는 의미가 아니라 명을 받아 연주한다는 뜻이다. 국역의 하나로서 제례·연향 등에서 음악을 담당했고, 때로는 뛰어난 기량을 가진 악사를 가리키는 의미로도 쓰였다. 기록에는 영관이 악공을 인솔하거나 음악적 오류를 바로잡는 역할을 한 사례가 보인다. 한편 동음이지만 다른 의미의 영관(永觀)은 『정대업』의 한 악곡 이름이다.
영관 (伶官)
영관은 업으로 하는 악인이다. 고려와 조선에서 음악을 직업으로 수행하는 이들을 통칭한 말로, 악사와 악공을 모두 포함한다. 『악서』에 따르면 ‘영’은 스스로 즐기는 의미가 아니라 명을 받아 연주한다는 뜻이다. 국역의 하나로서 제례·연향 등에서 음악을 담당했고, 때로는 뛰어난 기량을 가진 악사를 가리키는 의미로도 쓰였다. 기록에는 영관이 악공을 인솔하거나 음악적 오류를 바로잡는 역할을 한 사례가 보인다. 한편 동음이지만 다른 의미의 영관(永觀)은 『정대업』의 한 악곡 이름이다.
전부고취는 조선시대에 임금 또는 왕비의 공식적인 행차 때 어연(御輦) 앞에서 이동하며 연주한 악대이다. 행차의 규모에 따라 후부고취와 함께 쓰이거나 단독으로 쓰였고, 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다. 박‧피리‧대금‧당적‧퉁소‧당비파‧장고‧해금‧방향‧교방고 등, 이동하면서 연주할 수 있는 악기로 편성되었는데, 이중 해금은 조선 전기에는 전부고취에 편성되지 않다가 후기에 추가되었다.
전부고취 (前部鼓吹)
전부고취는 조선시대에 임금 또는 왕비의 공식적인 행차 때 어연(御輦) 앞에서 이동하며 연주한 악대이다. 행차의 규모에 따라 후부고취와 함께 쓰이거나 단독으로 쓰였고, 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다. 박‧피리‧대금‧당적‧퉁소‧당비파‧장고‧해금‧방향‧교방고 등, 이동하면서 연주할 수 있는 악기로 편성되었는데, 이중 해금은 조선 전기에는 전부고취에 편성되지 않다가 후기에 추가되었다.
조회악은 조선시대 궁중의 조회에 쓰인 음악이다. 조하와 조참에서 임금의 출입과 백관의 배례에 연주되었고, 상참에서도 때로 연주되었다. 조선 건국 초에서 1430년(세종 12)까지는 조하와 조참에 다 같이 당악을 쓰다가, 1431년(세종 13)부터는 조하에는 아악을 쓰고 조참에는 당악을 썼다. 1447년(세종 29) 6월부터 신악(新樂) 〈여민락만(與民樂慢)〉과 〈여민락령(與民樂令)〉이 기존에 쓰던 당악과 함께 조참에 연주되었으며, 늦어도 성종대(1469~1494)부터 조하에 아악을 쓰지 않게 되어 조하와 조참의 음악이 같아졌다.
조회악 (朝會樂)
조회악은 조선시대 궁중의 조회에 쓰인 음악이다. 조하와 조참에서 임금의 출입과 백관의 배례에 연주되었고, 상참에서도 때로 연주되었다. 조선 건국 초에서 1430년(세종 12)까지는 조하와 조참에 다 같이 당악을 쓰다가, 1431년(세종 13)부터는 조하에는 아악을 쓰고 조참에는 당악을 썼다. 1447년(세종 29) 6월부터 신악(新樂) 〈여민락만(與民樂慢)〉과 〈여민락령(與民樂令)〉이 기존에 쓰던 당악과 함께 조참에 연주되었으며, 늦어도 성종대(1469~1494)부터 조하에 아악을 쓰지 않게 되어 조하와 조참의 음악이 같아졌다.
회례악은 조선시대 회례에서 연행된 악가무이다. 격식을 갖춘 회례는 1433년(세종 15)부터 시작되었는데, 임금이 주관한 회례에서는 당악(唐樂)‧향악(鄕樂)과 함께 아악(雅樂)이 연주되고, 중궁(中宮)이 주관한 회례에서는 당악‧향악만 연주되었다. 세종 후기의 신악(新樂) 창제 이후 신악이 연향에 적극 권장되었으며, 늦어도 세조 대부터는 임금이 주관한 회례에서도 아악을 쓰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 세조 대 이후 임금과 중궁이 주관한 회례에서는 모두 당악‧향악‧신악과 같은 속악(俗樂)만 연주하게 되었다.
회례악 (會禮樂)
회례악은 조선시대 회례에서 연행된 악가무이다. 격식을 갖춘 회례는 1433년(세종 15)부터 시작되었는데, 임금이 주관한 회례에서는 당악(唐樂)‧향악(鄕樂)과 함께 아악(雅樂)이 연주되고, 중궁(中宮)이 주관한 회례에서는 당악‧향악만 연주되었다. 세종 후기의 신악(新樂) 창제 이후 신악이 연향에 적극 권장되었으며, 늦어도 세조 대부터는 임금이 주관한 회례에서도 아악을 쓰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 세조 대 이후 임금과 중궁이 주관한 회례에서는 모두 당악‧향악‧신악과 같은 속악(俗樂)만 연주하게 되었다.
궁중음악은 조선시대 궁중에서 제사·조회·연향 등에 쓰인 음악이다. 통일신라와 고려 시대에 중국에서 들어온 것도 있지만 현존 궁중음악은 모두 조선에서 정비된 것이 전승된 것이다. 조선은 유학을 국시로 천명하고, 예와 악에 의한 덕치를 이상향으로 삼았다. 길례·가례·빈례·군례·흉례 등 거의 모든 의례에는 악이 수반되어 기강이 반듯하면서도 조화로운 사회를 이루기 위한 궁중음악이 펼쳐졌다. 조선의 궁중음악은 크게 아악과 속악으로 구별된다. 아악은 유학의 이상을 관념적으로 표현한 의식음악으로 주로 제례에 사용되며, 당악·향악·신악 등이 포함된 속악은 조회와 연향에 주로 쓰였다.
궁중음악 (宮中音樂)
궁중음악은 조선시대 궁중에서 제사·조회·연향 등에 쓰인 음악이다. 통일신라와 고려 시대에 중국에서 들어온 것도 있지만 현존 궁중음악은 모두 조선에서 정비된 것이 전승된 것이다. 조선은 유학을 국시로 천명하고, 예와 악에 의한 덕치를 이상향으로 삼았다. 길례·가례·빈례·군례·흉례 등 거의 모든 의례에는 악이 수반되어 기강이 반듯하면서도 조화로운 사회를 이루기 위한 궁중음악이 펼쳐졌다. 조선의 궁중음악은 크게 아악과 속악으로 구별된다. 아악은 유학의 이상을 관념적으로 표현한 의식음악으로 주로 제례에 사용되며, 당악·향악·신악 등이 포함된 속악은 조회와 연향에 주로 쓰였다.
궁중정재는 궁중연향에서 공연되는 악기연주·노래·춤으로 이루어진 종합예술이다. 정재는 재예를 바친다는 뜻으로 악기연주에 맞춰 노래 부르고 춤을 추는 공연물이다. 궁중정재 형식에는 당악정재와 향악정재가 있는데 고려 시대에는 그 구별이 뚜렷했다. 조선 시대에 들어 차츰 경계가 모호해졌다. 조선 후기 당악정재는 죽간자가 무용수를 인도하는 것 외에 향악정재와 구별이 어렵다. 인조반정 이후 장악원 소속 여기가 폐지되어 궁중연향 때에 지방 여기가 와서 공연했다. 이것이 궁중정재가 지방 관아에서, 지방 정재가 궁중에서 공연되는 계기가 되었다.
궁중정재 (宮中呈才)
궁중정재는 궁중연향에서 공연되는 악기연주·노래·춤으로 이루어진 종합예술이다. 정재는 재예를 바친다는 뜻으로 악기연주에 맞춰 노래 부르고 춤을 추는 공연물이다. 궁중정재 형식에는 당악정재와 향악정재가 있는데 고려 시대에는 그 구별이 뚜렷했다. 조선 시대에 들어 차츰 경계가 모호해졌다. 조선 후기 당악정재는 죽간자가 무용수를 인도하는 것 외에 향악정재와 구별이 어렵다. 인조반정 이후 장악원 소속 여기가 폐지되어 궁중연향 때에 지방 여기가 와서 공연했다. 이것이 궁중정재가 지방 관아에서, 지방 정재가 궁중에서 공연되는 계기가 되었다.
등가(登歌)에 편성되는 특경(特磬) 또는 편경(編磬).
가경 (歌磬)
등가(登歌)에 편성되는 특경(特磬) 또는 편경(編磬).
조선시대 궁중연향의 등가(登歌:전상악(殿上樂))에 편성된 악기의 하나로서 뿔피리 비슷하게 관대 끝이 약간 구부러진 관악기.
가 (笳)
조선시대 궁중연향의 등가(登歌:전상악(殿上樂))에 편성된 악기의 하나로서 뿔피리 비슷하게 관대 끝이 약간 구부러진 관악기.
북한 국가지정문화재보존급 제1686호. 황해남도 해주시 신광사에 있는 고려시대 글자 없는 비.
신광사 무자비 (神光寺 無字碑)
북한 국가지정문화재보존급 제1686호. 황해남도 해주시 신광사에 있는 고려시대 글자 없는 비.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개국사에 있었던 고려전기 4각 형태 석등.
개국사 석등 (開國寺 石燈)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개국사에 있었던 고려전기 4각 형태 석등.
북한 함경남도 금야군 인흥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동검·다뉴세문경 등이 출토된 널무덤. 토광묘.
금야 용산리 토광묘 (金野 龍山里 土壙墓)
북한 함경남도 금야군 인흥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동검·다뉴세문경 등이 출토된 널무덤. 토광묘.
북한 평안북도 향산군 묘향산(妙香山) 보현사에 있는 고려전기 에 건립된 방형의 석조 불탑.
보현사 구층탑 (普賢寺 九層塔)
북한 평안북도 향산군 묘향산(妙香山) 보현사에 있는 고려전기 에 건립된 방형의 석조 불탑.
북한 강원도 금강군 내금강면 백화암에 있는 조선후기에 건립된 승려 서산대사 휴정의 탑비.
서산대사비 (西山大師碑)
북한 강원도 금강군 내금강면 백화암에 있는 조선후기에 건립된 승려 서산대사 휴정의 탑비.
북한 평안북도 영변군 영변읍 약산 제일봉에 있는 고려후기 에 창건된 사찰.
약산 서운사 (藥山 棲雲寺)
북한 평안북도 영변군 영변읍 약산 제일봉에 있는 고려후기 에 창건된 사찰.
북한 함경남도 함흥시 동흥산구역에 있는 조선전기 함경도관찰사의 감영에 설치된 관청.
선화당 (宣化堂)
북한 함경남도 함흥시 동흥산구역에 있는 조선전기 함경도관찰사의 감영에 설치된 관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