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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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타는 삼국시대, 『일본서기』에 기록된 임나 4현 가운데 한 곳이다. 실제는 백제가 대가야로부터 수복한 영토 가운데 일부일 가능성이 있다. 정확한 위치는 알기 어려우나 섬진강 일대로 보는 견해가 많으며 순천으로 특정하기도 한다.
사타 (娑陀)
사타는 삼국시대, 『일본서기』에 기록된 임나 4현 가운데 한 곳이다. 실제는 백제가 대가야로부터 수복한 영토 가운데 일부일 가능성이 있다. 정확한 위치는 알기 어려우나 섬진강 일대로 보는 견해가 많으며 순천으로 특정하기도 한다.
성산가야는 삼국시대에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 일원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가야 소국이다. 『삼국유사』 5가야조에 등장하는 가야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성주 일원에서 발굴된 고고학 자료는 신라 양식으로만 이루어져 있어서 실제 성산가야가 성주에 있었는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다.
성산가야 (星山加耶)
성산가야는 삼국시대에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 일원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가야 소국이다. 『삼국유사』 5가야조에 등장하는 가야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성주 일원에서 발굴된 고고학 자료는 신라 양식으로만 이루어져 있어서 실제 성산가야가 성주에 있었는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다.
이비가(夷毗訶)는 삼국시대 가야의 시조 설화에 나오는 천신이다. 가야 산신 정견모주를 감응케 하여 대가야와 금관국의 왕을 낳게 한 천신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비가에 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 「고령현 건치연혁조」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 책 찬자가 인용한 최치원의 「석이정전」에 등장한다. 늦어도 통일신라 하대의 인물들 사이에서 대가야 왕과 금관국 왕이 모두 천신의 자손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기록이다.
이비가 (夷毗訶)
이비가(夷毗訶)는 삼국시대 가야의 시조 설화에 나오는 천신이다. 가야 산신 정견모주를 감응케 하여 대가야와 금관국의 왕을 낳게 한 천신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비가에 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 「고령현 건치연혁조」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 책 찬자가 인용한 최치원의 「석이정전」에 등장한다. 늦어도 통일신라 하대의 인물들 사이에서 대가야 왕과 금관국 왕이 모두 천신의 자손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기록이다.
임나란 가야 혹은 금관가야를 달리 부르는 이름이다. 특히, 김해의 금관가야를 칭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역사 기록에서는 3곳에서 '임나'라는 표현이 확인된다. 「광개토왕릉비문」에서는 '임나가라', 「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문」에는 '임나왕족', 『삼국사기』 열전 강수열전에서는 '임나가량'이라는 표현이 쓰였다. 임나는 중국과 일본의 문헌에서도 확인되며, 『일본서기』에서는 임나와 함께 '임나일본부'라는 표현도 다수 쓰였다.
임나 (任那)
임나란 가야 혹은 금관가야를 달리 부르는 이름이다. 특히, 김해의 금관가야를 칭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역사 기록에서는 3곳에서 '임나'라는 표현이 확인된다. 「광개토왕릉비문」에서는 '임나가라', 「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문」에는 '임나왕족', 『삼국사기』 열전 강수열전에서는 '임나가량'이라는 표현이 쓰였다. 임나는 중국과 일본의 문헌에서도 확인되며, 『일본서기』에서는 임나와 함께 '임나일본부'라는 표현도 다수 쓰였다.
임나일본부설은 4세기 중엽경 일본열도의 왜가 한반도 남부로 출정해 가야와 그 주변을 정벌한 다음 '임나일본부'라는 통치기관을 설치하였고, 이후 562년까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학설이다. 즉, 일본 관학자들을 중심으로 고대의 왜가 한반도 남부지역을 2세기에 걸쳐 경영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설의 근거는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임나일본부'라는 표현이다.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논자들은 임나일본부라는 어휘를 임나, 즉 가야를 경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본의 통치기구라고 해석한다.
임나일본부설 (任那日本府說)
임나일본부설은 4세기 중엽경 일본열도의 왜가 한반도 남부로 출정해 가야와 그 주변을 정벌한 다음 '임나일본부'라는 통치기관을 설치하였고, 이후 562년까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학설이다. 즉, 일본 관학자들을 중심으로 고대의 왜가 한반도 남부지역을 2세기에 걸쳐 경영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설의 근거는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임나일본부'라는 표현이다.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논자들은 임나일본부라는 어휘를 임나, 즉 가야를 경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본의 통치기구라고 해석한다.
정견모주(正見母主)는 최치원의 저술 「석이정전」에 등장하는 가야 산신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찬자가 인용한 「석이정전」 즉, 승려 이정의 전기에 등장한다. 「석이정전」은 신라 때 최치원이 지었다고 전한다. 해당 기록에 따르면, 가야 산신인 정견모주가 천신 이비가에게 감응되어 대가야와 금관국의 왕을 낳았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석순응전」 즉, 승려 순응의 전기도 인용되어 있는데, 그에 따르면 대가야의 월광태자가 정견의 10대손이라고 한다.
정견모주 (正見母主)
정견모주(正見母主)는 최치원의 저술 「석이정전」에 등장하는 가야 산신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찬자가 인용한 「석이정전」 즉, 승려 이정의 전기에 등장한다. 「석이정전」은 신라 때 최치원이 지었다고 전한다. 해당 기록에 따르면, 가야 산신인 정견모주가 천신 이비가에게 감응되어 대가야와 금관국의 왕을 낳았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석순응전」 즉, 승려 순응의 전기도 인용되어 있는데, 그에 따르면 대가야의 월광태자가 정견의 10대손이라고 한다.
조광은 삼국시대 가야 김수로왕의 왕후가 된 허황옥을 수행하여 아유타국에서 배를 타고 온 관리이다. 벼슬은 종정감이었다고 한다. 그의 아내는 모량이고, 손녀인 호구는 마품왕의 왕비가 되어 태자 거질미를 낳았다고 한다.
조광 (趙匡)
조광은 삼국시대 가야 김수로왕의 왕후가 된 허황옥을 수행하여 아유타국에서 배를 타고 온 관리이다. 벼슬은 종정감이었다고 한다. 그의 아내는 모량이고, 손녀인 호구는 마품왕의 왕비가 되어 태자 거질미를 낳았다고 한다.
탈지미질금은 삼국시대 금관가야 멸망 후 구형왕을 대신하여 식읍을 관리한 인물이다. 『삼국유사』에 인용된 '가락국기'에 구형왕의 동기(형제)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라 왕이 가야를 공격하였을 때 구형왕은 탈지미질금을 본국으로 보내어 머물게 하였고, 여타 왕족들은 항복하여 신라로 들어갔다고 전한다. 신라 법흥왕은 구형왕(구해왕)에게 높은 관등을 주고 본국을 식읍으로 삼게 하였다고 하므로, 탈지미질금이 구형왕을 대신하여 그 식읍을 관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탈지미질금 (脫知爾叱今)
탈지미질금은 삼국시대 금관가야 멸망 후 구형왕을 대신하여 식읍을 관리한 인물이다. 『삼국유사』에 인용된 '가락국기'에 구형왕의 동기(형제)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라 왕이 가야를 공격하였을 때 구형왕은 탈지미질금을 본국으로 보내어 머물게 하였고, 여타 왕족들은 항복하여 신라로 들어갔다고 전한다. 신라 법흥왕은 구형왕(구해왕)에게 높은 관등을 주고 본국을 식읍으로 삼게 하였다고 하므로, 탈지미질금이 구형왕을 대신하여 그 식읍을 관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하가야는 하가라(下加羅), 남가라(南加羅)와 함께 고령의 대가야에 대비하여 후기의 금관가야를 부르는 국명이다. 하가야란 표현은 역사 기록에는 나오지 않으며, 『삼국사기』 잡지(雜誌) 악조(樂條)에 기록된 하가라라는 표현에서 가라(加羅) 대신 가야(加耶)를 넣어 조어(造語)한 것이다. 하가라를 금관가야로 보는 견해가 많지만, 고령의 상가라(上加羅)와 함께 대가야를 구성한 핵심 세력 가운데 하나로 보기도 한다.
하가야 (下加耶)
하가야는 하가라(下加羅), 남가라(南加羅)와 함께 고령의 대가야에 대비하여 후기의 금관가야를 부르는 국명이다. 하가야란 표현은 역사 기록에는 나오지 않으며, 『삼국사기』 잡지(雜誌) 악조(樂條)에 기록된 하가라라는 표현에서 가라(加羅) 대신 가야(加耶)를 넣어 조어(造語)한 것이다. 하가라를 금관가야로 보는 견해가 많지만, 고령의 상가라(上加羅)와 함께 대가야를 구성한 핵심 세력 가운데 하나로 보기도 한다.
양산 금조총 출토 유물 일괄은 경상남도 양산 북정리 고분군 금조총에서 출토된 신라의 금속공예 유물 일괄이다. 돌방[石室] 내부에서 출토된 금제 굵은고리 귀걸이 2쌍. 금팔찌 1쌍, 은허리띠 1점, 청동다리미 1점으로 구성된다. 6세기 초에 신라의 왕도인 경주 소재 귀금속 공방에서 제작된 것이며, 신라의 왕이 양산 지역 유력자에게 신임의 징표로 사여한 물품이다. 2016년 11월 16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양산 금조총 출토 유물 일괄 (梁山 金鳥塚 出土 遺物 一括)
양산 금조총 출토 유물 일괄은 경상남도 양산 북정리 고분군 금조총에서 출토된 신라의 금속공예 유물 일괄이다. 돌방[石室] 내부에서 출토된 금제 굵은고리 귀걸이 2쌍. 금팔찌 1쌍, 은허리띠 1점, 청동다리미 1점으로 구성된다. 6세기 초에 신라의 왕도인 경주 소재 귀금속 공방에서 제작된 것이며, 신라의 왕이 양산 지역 유력자에게 신임의 징표로 사여한 물품이다. 2016년 11월 16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부산 복천동 출토 금동관은 1980~1981년 출토작업을 한 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있는 복천동 11호분에서 출토된 신라 금동관이다. 관테 위에 나뭇가지 모양 세움장식 3개가 못으로 고정되어 있다. 신라의 금동관 가운데 가장 이른 단계의 유물이다. 매우 정교한 기술로 제작된 것이어서 신라의 왕도 소재 공방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2016년 11월 16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국립김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부산 복천동 출토 금동관 (釜山 福泉洞 出土 金銅冠)
부산 복천동 출토 금동관은 1980~1981년 출토작업을 한 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있는 복천동 11호분에서 출토된 신라 금동관이다. 관테 위에 나뭇가지 모양 세움장식 3개가 못으로 고정되어 있다. 신라의 금동관 가운데 가장 이른 단계의 유물이다. 매우 정교한 기술로 제작된 것이어서 신라의 왕도 소재 공방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2016년 11월 16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국립김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경산 신대리 1호 목관묘 출토 청동호랑이모양 띠고리는 경상북도 경산시 압량읍 신대리에 자리한 경산 신대리 1호분 목관묘에서 출토된 것으로, 삼한 시기 동물모양 띠고리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정교한 문양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보존상태도 양호해 삼한의 금속공예 및 복식문화를 살필 때 기준이 되는 유물이다. 2019년 3월 6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경산 신대리 1호 목관묘 출토 청동 호랑이모양 띠고리 (慶山 新垈里 一號 木棺墓 出土 靑銅 虎狼이模樣 띠고리)
경산 신대리 1호 목관묘 출토 청동호랑이모양 띠고리는 경상북도 경산시 압량읍 신대리에 자리한 경산 신대리 1호분 목관묘에서 출토된 것으로, 삼한 시기 동물모양 띠고리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정교한 문양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보존상태도 양호해 삼한의 금속공예 및 복식문화를 살필 때 기준이 되는 유물이다. 2019년 3월 6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고령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은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에 자리한 고령 지산동 32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이다. 으뜸덧널에서 출토되었지만 착장품은 아니다. 관테 위에 불상 광배형 세움장식이 못으로 고정되어 있고, 관테와 세움장식에 정교한 문양이 베풀어져 있다. 이 금동관은 신라의 나뭇가지 모양 금동관과는 구별되는 대가야 양식을 갖추었다. 2019년 3월 6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고령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 (高靈 池山洞 三十二號墳 出土 金銅冠)
고령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은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에 자리한 고령 지산동 32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이다. 으뜸덧널에서 출토되었지만 착장품은 아니다. 관테 위에 불상 광배형 세움장식이 못으로 고정되어 있고, 관테와 세움장식에 정교한 문양이 베풀어져 있다. 이 금동관은 신라의 나뭇가지 모양 금동관과는 구별되는 대가야 양식을 갖추었다. 2019년 3월 6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부산 복천동 22호분 출토 청동칠두령은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에 자리한 고분군 22호분 으뜸덧널에서 출토된 가야시대의 청동방울이다. 원래는 길쭉한 나무자루가 끼워졌던 것으로 보이며 무덤 주인공의 제사장적 성격을 보여주는 의기(儀器)에 해당한다. 삼국시대 유적에서 출토되는 방울 중 대다수가 말방울임에 비해 의기인 점이 특이하다. 2019년 3월 6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복천박물관에 위탁 보관되고 있다.
부산 복천동 22호분 출토 청동 칠두령 (釜山 福泉洞 二十二號墳 出土 靑銅 七頭鈴)
부산 복천동 22호분 출토 청동칠두령은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에 자리한 고분군 22호분 으뜸덧널에서 출토된 가야시대의 청동방울이다. 원래는 길쭉한 나무자루가 끼워졌던 것으로 보이며 무덤 주인공의 제사장적 성격을 보여주는 의기(儀器)에 해당한다. 삼국시대 유적에서 출토되는 방울 중 대다수가 말방울임에 비해 의기인 점이 특이하다. 2019년 3월 6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복천박물관에 위탁 보관되고 있다.
합천 옥전 28호분 출토 금귀걸이는 경상남도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에 자리한 대가야 고분군인 합천 옥전 28호분에서 출토된 금귀걸이 한 쌍이다. 특이하게 중심고리에 노는고리가 하나 걸려 있고 그것에 다시 3줄의 수식이 매달려 있다. 귀걸이의 중간 부분에는 속이 빈 구슬 여러 개가 금사슬로 엮여 있고 맨 아래에 심엽형과 원추형 드림이 달려 있다. 2019년 12월 26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합천 옥전 28호분 출토 금귀걸이 (陜川 玉田 二十八號墳 出土 金귀걸이)
합천 옥전 28호분 출토 금귀걸이는 경상남도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에 자리한 대가야 고분군인 합천 옥전 28호분에서 출토된 금귀걸이 한 쌍이다. 특이하게 중심고리에 노는고리가 하나 걸려 있고 그것에 다시 3줄의 수식이 매달려 있다. 귀걸이의 중간 부분에는 속이 빈 구슬 여러 개가 금사슬로 엮여 있고 맨 아래에 심엽형과 원추형 드림이 달려 있다. 2019년 12월 26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합천 옥전 M4호분 출토 금귀걸이는 경상남도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에 자리한 대가야 고분군인 옥전 M4호분에서 출토된 금귀걸이 한 쌍이다. 대가야의 전형적 귀걸이로 중간장식과 드림의 형태에서 대가야적 특색을 잘 보여준다. 특히 산치자형 드림은 6세기 대가야 장인들이 만들어낸 독특한 의장이며 일본열도로 전파되어 크게 유행하였다. 2019년 12월 26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합천 옥전 M4호분 출토 금귀걸이 (陜川 玉田 M四號墳 出土 金귀걸이)
합천 옥전 M4호분 출토 금귀걸이는 경상남도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에 자리한 대가야 고분군인 옥전 M4호분에서 출토된 금귀걸이 한 쌍이다. 대가야의 전형적 귀걸이로 중간장식과 드림의 형태에서 대가야적 특색을 잘 보여준다. 특히 산치자형 드림은 6세기 대가야 장인들이 만들어낸 독특한 의장이며 일본열도로 전파되어 크게 유행하였다. 2019년 12월 26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합천 옥전 M6호분 출토 금귀걸이는 경상남도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에 자리한 대가야 고분군인 합천 옥전 M6호분에서 출토된 금귀걸이 한 쌍이다. 중간장식의 형태는 신라 귀걸이와 유사하고 수하식은 대가야의 산치자형 끝장식으로 되어 있어 두 양식을 결합한 독특한 혼합양식이다. 6세기 전반 가야 지역의 교류 양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2019년 12월 26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합천 옥전 M6호분 출토 금귀걸이 (陜川 玉田 M六號墳 出土 金귀걸이)
합천 옥전 M6호분 출토 금귀걸이는 경상남도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에 자리한 대가야 고분군인 합천 옥전 M6호분에서 출토된 금귀걸이 한 쌍이다. 중간장식의 형태는 신라 귀걸이와 유사하고 수하식은 대가야의 산치자형 끝장식으로 되어 있어 두 양식을 결합한 독특한 혼합양식이다. 6세기 전반 가야 지역의 교류 양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2019년 12월 26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대가야 권역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하는 가야의 금관. 대가야금관.
가야금관 (加耶金冠)
대가야 권역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하는 가야의 금관. 대가야금관.
고구려의 수도 집안과 평양에서 출토된 금동관. 조우관.
고구려금동관 (高句麗金銅冠)
고구려의 수도 집안과 평양에서 출토된 금동관. 조우관.
삼국시대 백제의 금동관과 부속된 금속제 관식(冠飾).
백제 금동관 (百濟 金銅冠)
삼국시대 백제의 금동관과 부속된 금속제 관식(冠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