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정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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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성」은 조선 초에 기악곡으로 전하던 작자 미상의 고려시대 속악곡이다. 『고려사』 「악지」에 따르면, 1029년 무렵 나성 축성 기념으로 만들어졌으며, 나라 사람들이 기뻐하며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가사는 상실한 채 기악곡으로 전하여 조선 초기 왕실 연회에서 꽃을 올릴 때 「금강성」 가락에 맞춰 노래 불렀으나 태종대 이후로 실전된 것으로 보인다.
금강성 (金剛城)
「금강성」은 조선 초에 기악곡으로 전하던 작자 미상의 고려시대 속악곡이다. 『고려사』 「악지」에 따르면, 1029년 무렵 나성 축성 기념으로 만들어졌으며, 나라 사람들이 기뻐하며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가사는 상실한 채 기악곡으로 전하여 조선 초기 왕실 연회에서 꽃을 올릴 때 「금강성」 가락에 맞춰 노래 불렀으나 태종대 이후로 실전된 것으로 보인다.
당악은 중국 전래의 속악과 그 체제에 의하여 창작된 악곡을 포괄한 궁정음악의 한 갈래이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당나라의 속악으로 한정되었지만, 고려시대 이후로는 중국 속악을 지칭하는 의미로 바뀌었다. 통일신라시대에 성행하였으며, 고려시대에는 통일신라의 당악을 바탕으로 송조의 속악을 수용하면서 전개되었다. 광종대를 시작으로 문종대에 활발해졌으며, 예종대에 절정을 이루었다. 조선시대에는 고려 전래 당악 외에 새로운 당악을 창제하였으나, 양란 이후로 쇠퇴일로로 치달아 현재 「보허자」와 「낙양춘」을 비롯한 일부 창작곡들만 연주되고 있다.
당악 (唐樂)
당악은 중국 전래의 속악과 그 체제에 의하여 창작된 악곡을 포괄한 궁정음악의 한 갈래이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당나라의 속악으로 한정되었지만, 고려시대 이후로는 중국 속악을 지칭하는 의미로 바뀌었다. 통일신라시대에 성행하였으며, 고려시대에는 통일신라의 당악을 바탕으로 송조의 속악을 수용하면서 전개되었다. 광종대를 시작으로 문종대에 활발해졌으며, 예종대에 절정을 이루었다. 조선시대에는 고려 전래 당악 외에 새로운 당악을 창제하였으나, 양란 이후로 쇠퇴일로로 치달아 현재 「보허자」와 「낙양춘」을 비롯한 일부 창작곡들만 연주되고 있다.
「명안지곡」은 고려시대부터 연주되어 온 제례아악의 하나이다. 고려시대에는 선농과 문선왕묘 제례의 전폐 절차에서 등가가 각각 태주궁과 협종궁으로 연주하였으나, 조선 전기에 오직 문선왕묘의 전폐악으로만 쓰이게 되었고, 곡 이름도 「명안지악」으로 바뀌었다. 세종대에 「명안지악」의 악보가 신제아악으로 대체되었으며, 그 악조도 남려궁으로 바뀌었다. 이후 제례악이 15곡으로 축소되었고, 그 중 남려궁이 바로 문선왕묘 제례의 전폐악 「명안지악」의 악보로 쓰였다.
명안지곡 (明安之曲)
「명안지곡」은 고려시대부터 연주되어 온 제례아악의 하나이다. 고려시대에는 선농과 문선왕묘 제례의 전폐 절차에서 등가가 각각 태주궁과 협종궁으로 연주하였으나, 조선 전기에 오직 문선왕묘의 전폐악으로만 쓰이게 되었고, 곡 이름도 「명안지악」으로 바뀌었다. 세종대에 「명안지악」의 악보가 신제아악으로 대체되었으며, 그 악조도 남려궁으로 바뀌었다. 이후 제례악이 15곡으로 축소되었고, 그 중 남려궁이 바로 문선왕묘 제례의 전폐악 「명안지악」의 악보로 쓰였다.
「무열지곡」은 조선 전기 세종대에 처음 지어져 회례와 양로연에서 무무와 함께 헌가가 아뢰던 아악곡이다. 1432년에 그 곡명과 악장이 처음 지어졌으나 이듬해에 기존 악장을 일부 수정하여 새롭게 지었다. 『악학궤범』에 전하는 「무열지곡」은 총 4자 16구로서 전반 8구는 태조의 무공을, 후반 8구는 태종의 무공을 찬양하였다. 두 악장은 각각 1자1음씩 32음이 하나의 악곡을 이루었고, 이를 반복 연주함으로써 두 수의 악장을 노래한다. 세종 말기 4종의 신악이 창제된 뒤로 「무열지곡」은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되었다.
무열지곡
「무열지곡」은 조선 전기 세종대에 처음 지어져 회례와 양로연에서 무무와 함께 헌가가 아뢰던 아악곡이다. 1432년에 그 곡명과 악장이 처음 지어졌으나 이듬해에 기존 악장을 일부 수정하여 새롭게 지었다. 『악학궤범』에 전하는 「무열지곡」은 총 4자 16구로서 전반 8구는 태조의 무공을, 후반 8구는 태종의 무공을 찬양하였다. 두 악장은 각각 1자1음씩 32음이 하나의 악곡을 이루었고, 이를 반복 연주함으로써 두 수의 악장을 노래한다. 세종 말기 4종의 신악이 창제된 뒤로 「무열지곡」은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되었다.
「문명지곡」은 조선 전기 세종대에 처음 지어져 회례와 양로연에서 문무와 함께 등가가 아뢰던 아악곡이다. 1432년에 곡 이름과 악장이 처음 지어졌으나 이듬해에 기존 악장을 일부 수정하였다. 『악학궤범』에 전하는 「문명지곡」은 총 4자 16구로서 전반 8구는 태조의 문덕을, 후반 8구는 태종의 문덕을 찬양하였다. 두 악장은 각각 1자1음씩 32음이 한 곡을 이루었고, 이를 반복 연주함으로써 두 수의 악장을 노래 부른다. 세종 말기 4종의 신악이 창제된 뒤로 「문명지곡」은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되었다.
문명지곡 (文明之曲)
「문명지곡」은 조선 전기 세종대에 처음 지어져 회례와 양로연에서 문무와 함께 등가가 아뢰던 아악곡이다. 1432년에 곡 이름과 악장이 처음 지어졌으나 이듬해에 기존 악장을 일부 수정하였다. 『악학궤범』에 전하는 「문명지곡」은 총 4자 16구로서 전반 8구는 태조의 문덕을, 후반 8구는 태종의 문덕을 찬양하였다. 두 악장은 각각 1자1음씩 32음이 한 곡을 이루었고, 이를 반복 연주함으로써 두 수의 악장을 노래 부른다. 세종 말기 4종의 신악이 창제된 뒤로 「문명지곡」은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되었다.
「성안지곡」은 고려시대부터 연주되어온 제례아악의 하나이다. 고려시대에는 선농과 문선왕묘 제례의식의 초헌 절차에서 등가가 각각 ‘태주궁’과 ‘협종궁’으로 연주하였으나, 조선 전기에 오직 문선왕묘의 작헌악으로만 쓰이게 되었고, 곡 이름도 「성안지악」으로 바뀌었다. 이후 세종대에 「성안지악」의 악보가 신제아악으로 대체되었으며, 그 악조도 남려궁과 고선궁으로 바뀌었다. 이후 제례악이 15곡으로 축소되었고, 그 중 ‘남려궁’과 ‘고선궁’이 바로 문선왕묘 제례의 작헌악 「명안지악」의 악보로 쓰였다.
성안지곡 (成安之曲)
「성안지곡」은 고려시대부터 연주되어온 제례아악의 하나이다. 고려시대에는 선농과 문선왕묘 제례의식의 초헌 절차에서 등가가 각각 ‘태주궁’과 ‘협종궁’으로 연주하였으나, 조선 전기에 오직 문선왕묘의 작헌악으로만 쓰이게 되었고, 곡 이름도 「성안지악」으로 바뀌었다. 이후 세종대에 「성안지악」의 악보가 신제아악으로 대체되었으며, 그 악조도 남려궁과 고선궁으로 바뀌었다. 이후 제례악이 15곡으로 축소되었고, 그 중 ‘남려궁’과 ‘고선궁’이 바로 문선왕묘 제례의 작헌악 「명안지악」의 악보로 쓰였다.
「숙안지곡」은 고려시대부터 연주되어온 제례아악의 하나이다. 고려시대에는 원구와 선농 제례의 철변두 절차에서 등가가 각각 대려궁과 태주궁으로 연주하였으나, 조선 전기에 곡 이름이 「숙안지악」으로 바뀌었고, 선농과 우사의 제례의 전폐 절차에 태주궁으로 연주되었다. 세종대에 그 악보가 신제아악으로 대체되었으며, 악조도 남려궁으로 바뀌었다. 이후 제례악이 15곡으로 축소되었고, 그 중 ‘남려궁’이 「숙안지악」의 악보로 쓰였다. 조선 전기에는 선잠의 전폐악으로도 쓰였으나, 현재 세 제례가 폐절됨에 따라 이 악곡도 연주되지 않고 있다.
숙안지곡 (肅安之曲)
「숙안지곡」은 고려시대부터 연주되어온 제례아악의 하나이다. 고려시대에는 원구와 선농 제례의 철변두 절차에서 등가가 각각 대려궁과 태주궁으로 연주하였으나, 조선 전기에 곡 이름이 「숙안지악」으로 바뀌었고, 선농과 우사의 제례의 전폐 절차에 태주궁으로 연주되었다. 세종대에 그 악보가 신제아악으로 대체되었으며, 악조도 남려궁으로 바뀌었다. 이후 제례악이 15곡으로 축소되었고, 그 중 ‘남려궁’이 「숙안지악」의 악보로 쓰였다. 조선 전기에는 선잠의 전폐악으로도 쓰였으나, 현재 세 제례가 폐절됨에 따라 이 악곡도 연주되지 않고 있다.
「영춘악령」은 고려시대 당악 소곡에 해당하는 산사의 하나이다. 송대의 사작(詞作)으로 작자는 미상이며, 전단·후단이 각각 4구 3측운인 쌍조 51자[전단 26자, 후단 25자]의 변체에 속한다. 악곡 이름에 붙은 ‘영(令)’은 곧 ‘소령(小令)’으로 편폭이 짧은 사(詞)를 일컫는 용어이며, 그 가락이 비교적 명쾌하다. 곡의 악보는 전하지 않고 오직 가사만이 『고려사』 악지에 전하는데, 조선시대의 문헌에는 이 곡을 연주하였다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는다. 중국의 아름다운 경치와 그 흥취를 늙기 전에 즐기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춘악령 (迎春樂令)
「영춘악령」은 고려시대 당악 소곡에 해당하는 산사의 하나이다. 송대의 사작(詞作)으로 작자는 미상이며, 전단·후단이 각각 4구 3측운인 쌍조 51자[전단 26자, 후단 25자]의 변체에 속한다. 악곡 이름에 붙은 ‘영(令)’은 곧 ‘소령(小令)’으로 편폭이 짧은 사(詞)를 일컫는 용어이며, 그 가락이 비교적 명쾌하다. 곡의 악보는 전하지 않고 오직 가사만이 『고려사』 악지에 전하는데, 조선시대의 문헌에는 이 곡을 연주하였다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는다. 중국의 아름다운 경치와 그 흥취를 늙기 전에 즐기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태평년만」은 고려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궁정에서 연주하였던 당악의 하나이다. 『고려사』 악지에 악보가 없이 가사만 수록되어 전한다. 가사는 전단·후단을 갖춘 쌍조 45자[전단24자, 후단 21자]로 이루어졌으며, 작자는 미상이다. 곡이름에 곡조가 길고 박자가 느린 사(詞)를 가리키는 ‘만’자가 붙었지만, 가사가 45자에 불과하여 그 박자가 특히 느린 악곡에 속한다. 고려 이래로 조선 후기까지 「태평년만」 외에 「태평년지악」, 「태평년」, 「태평년지곡」 등으로도 불리었으나, 현재 실전되어 연주되지 않고 있다.
태평년만 (太平年慢)
「태평년만」은 고려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궁정에서 연주하였던 당악의 하나이다. 『고려사』 악지에 악보가 없이 가사만 수록되어 전한다. 가사는 전단·후단을 갖춘 쌍조 45자[전단24자, 후단 21자]로 이루어졌으며, 작자는 미상이다. 곡이름에 곡조가 길고 박자가 느린 사(詞)를 가리키는 ‘만’자가 붙었지만, 가사가 45자에 불과하여 그 박자가 특히 느린 악곡에 속한다. 고려 이래로 조선 후기까지 「태평년만」 외에 「태평년지악」, 「태평년」, 「태평년지곡」 등으로도 불리었으나, 현재 실전되어 연주되지 않고 있다.
「풍중류령」은 고려시대에 궁정에서 연주하였던 당악 소곡의 하나이다. 『고려사』 악지에 가사만 남아 있으며 조선 이후 전승되지 않은 실전곡으로, 작자는 미상이다. 전후·후단으로 이루어진 쌍조 형식의 사(詞)로 글자 수는 총 65자이다. 자수상 중조임에도 ‘영’이 붙은 특이한 사례다. 이는 기존 소령 사패에 가사를 붙이는 과정에서 자수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가사 내용은 남녀 간의 애정과 그리움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풍중류령 (風中柳令)
「풍중류령」은 고려시대에 궁정에서 연주하였던 당악 소곡의 하나이다. 『고려사』 악지에 가사만 남아 있으며 조선 이후 전승되지 않은 실전곡으로, 작자는 미상이다. 전후·후단으로 이루어진 쌍조 형식의 사(詞)로 글자 수는 총 65자이다. 자수상 중조임에도 ‘영’이 붙은 특이한 사례다. 이는 기존 소령 사패에 가사를 붙이는 과정에서 자수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가사 내용은 남녀 간의 애정과 그리움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하운봉」은 조선 후기까지 연주되었던 고려 전래의 당악이다. 『고려사』 악지에 산사로 가사만 수록되어 전하며, 작자는 북송대의 유영이다. 가사는 전단·후단을 갖춘 쌍조 91자에 전단·후단이 각각 8구 5평운으로 이루어졌다. 고려시대의 명칭은 「하운봉만」으로, 곡이름에 붙은 ‘만’자는 이 곡이 곡조가 길고 박자가 느린 사악임을 나타낸다. 조선 태종대에 「하운봉」 가락에 ‘어리’의 시를 배합하여 시악화 되었고, 곡이름도 「하운봉」으로 바뀌었다. 이후 조선 후기까지 내내 연례악으로 활용되어 왔으나 현재 실전되어 연주되지 않고 있다.
하운봉 (夏雲奉)
「하운봉」은 조선 후기까지 연주되었던 고려 전래의 당악이다. 『고려사』 악지에 산사로 가사만 수록되어 전하며, 작자는 북송대의 유영이다. 가사는 전단·후단을 갖춘 쌍조 91자에 전단·후단이 각각 8구 5평운으로 이루어졌다. 고려시대의 명칭은 「하운봉만」으로, 곡이름에 붙은 ‘만’자는 이 곡이 곡조가 길고 박자가 느린 사악임을 나타낸다. 조선 태종대에 「하운봉」 가락에 ‘어리’의 시를 배합하여 시악화 되었고, 곡이름도 「하운봉」으로 바뀌었다. 이후 조선 후기까지 내내 연례악으로 활용되어 왔으나 현재 실전되어 연주되지 않고 있다.
「한궁춘만」은 고려시대 궁정에서만 연주하였던 송나라의 사악이다. 작자 미상으로, 『고려사』 악지에 가사만 전하며 이후 전승되지 않아 실전된 작품이다. 전단 47자, 후단 49자 총 96자의 쌍조 형식으로 장조에 속한다. 전단·후단이 각각 5평운이다. 「한궁춘만」과 「한궁춘」은 이칭으로 통용되었다. 곡이름에 ‘만사’의 뜻인 ‘만’자가 붙어 있어 이 곡이 곡조가 길고 박자가 느린 사악임을 나타내었다. 가사 내용은 봄부터 겨울까지의 계절 변화와 세월의 빠름, 태평성대에 누리는 즐거움을 노래하였다.
한궁춘만 (漢宮春慢)
「한궁춘만」은 고려시대 궁정에서만 연주하였던 송나라의 사악이다. 작자 미상으로, 『고려사』 악지에 가사만 전하며 이후 전승되지 않아 실전된 작품이다. 전단 47자, 후단 49자 총 96자의 쌍조 형식으로 장조에 속한다. 전단·후단이 각각 5평운이다. 「한궁춘만」과 「한궁춘」은 이칭으로 통용되었다. 곡이름에 ‘만사’의 뜻인 ‘만’자가 붙어 있어 이 곡이 곡조가 길고 박자가 느린 사악임을 나타내었다. 가사 내용은 봄부터 겨울까지의 계절 변화와 세월의 빠름, 태평성대에 누리는 즐거움을 노래하였다.
「해패령」은 고려시대 궁정에서 연주하였던 송나라 사악이다. 작자 미상으로 『고려사』 악지에 가사만 남아 있으며 조선시대 이후로는 전승되지 않아 실전된 작품이다. 북송 안궤도의 사 「옥계추감」을 정체로 삼되, 운율 구성의 차이로 변체로 여겨진다. 전단·후단 각 33자의 쌍조 형식이며 각각 6구 4측운으로 이루어졌다. 가사는 총 66자로 중조에 해당하지만, 고려 유입 당시 ‘영(令)’ 범주로 분류되어 곡명에 ‘영’이 붙었다. 가사 내용은 여인의 용모와 아름다움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해패령 (解佩令)
「해패령」은 고려시대 궁정에서 연주하였던 송나라 사악이다. 작자 미상으로 『고려사』 악지에 가사만 남아 있으며 조선시대 이후로는 전승되지 않아 실전된 작품이다. 북송 안궤도의 사 「옥계추감」을 정체로 삼되, 운율 구성의 차이로 변체로 여겨진다. 전단·후단 각 33자의 쌍조 형식이며 각각 6구 4측운으로 이루어졌다. 가사는 총 66자로 중조에 해당하지만, 고려 유입 당시 ‘영(令)’ 범주로 분류되어 곡명에 ‘영’이 붙었다. 가사 내용은 여인의 용모와 아름다움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행향자만」은 고려시대 궁정에서 연주하였던 송나라 사악이다. 북송대의 작품으로 작자는 미상이다. 『고려사』 악지에 악보 없이 가사만 남아 있으며, 『고려사』 악지 외에는 이 곡을 연주하였다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는다. 총 96자의 전단·후단으로 이루어진 쌍조의 만사이다. 곡명에 ‘자(子)’와 느린 곡을 뜻하는 ‘만(慢)’이 붙어 이 곡이 박자와 장단이 매우 느린 악곡임을 알 수 있다. 절에서 향을 올리는 의식과 관련된 곡으로 추정된다. 가사는 왕궁의 장려한 풍경과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행향자만 (行香子慢)
「행향자만」은 고려시대 궁정에서 연주하였던 송나라 사악이다. 북송대의 작품으로 작자는 미상이다. 『고려사』 악지에 악보 없이 가사만 남아 있으며, 『고려사』 악지 외에는 이 곡을 연주하였다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는다. 총 96자의 전단·후단으로 이루어진 쌍조의 만사이다. 곡명에 ‘자(子)’와 느린 곡을 뜻하는 ‘만(慢)’이 붙어 이 곡이 박자와 장단이 매우 느린 악곡임을 알 수 있다. 절에서 향을 올리는 의식과 관련된 곡으로 추정된다. 가사는 왕궁의 장려한 풍경과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헌천수」는 고려시대부터 당악정재의 반주음악으로 사용되어 온 당악이다. 고려시대에는 「헌선도」 정재와 「연화대」 정재에 ‘일난풍화’사와 ‘낭원인한’사와 함께 4종의 「헌천수」계 악곡이 쓰였으나, 조선 전기에 2종으로 재정리되었고, 그 중 「헌천수【만】」은 「하성명」 정재의 반주음악으로도 쓰였다. 「헌천수」계 악곡들은 고려 전래의 당악정재와 함께 조선 후기까지 연주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연주되고 있는 「헌천수」는 삼현육각 편성의 무용음악인 「염불타령」의 아명일 뿐, 고려 전래의 당악과는 무관하다.
헌천수 (獻天壽)
「헌천수」는 고려시대부터 당악정재의 반주음악으로 사용되어 온 당악이다. 고려시대에는 「헌선도」 정재와 「연화대」 정재에 ‘일난풍화’사와 ‘낭원인한’사와 함께 4종의 「헌천수」계 악곡이 쓰였으나, 조선 전기에 2종으로 재정리되었고, 그 중 「헌천수【만】」은 「하성명」 정재의 반주음악으로도 쓰였다. 「헌천수」계 악곡들은 고려 전래의 당악정재와 함께 조선 후기까지 연주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연주되고 있는 「헌천수」는 삼현육각 편성의 무용음악인 「염불타령」의 아명일 뿐, 고려 전래의 당악과는 무관하다.
「환환곡」은 문소전에서 태조를 제사할 때 쓰인 초헌악의 미칭이다. 1432년에 새로이 악장을 지어 당악 「중강령」의 선율에 얹어 불렀다. 악조는 황종청궁이며, 악장은 4자 8구로서 태조의 무용과 건국의 위업을 찬양하였다. 임진왜란 이후로 원묘제가 폐지됨에 따라 폐절될 위기에 처하였으나, 숙종 때부터 진연의 음악으로 연주되기 시작하여 잔치 음악으로 그 전승이 유지될 수 있었다. 잔치 음악으로 쓰인 「환환곡」은 기악곡으로 추정되나, 현재 이 곡은 연주되지 않고 있다.
환환곡 (桓桓曲)
「환환곡」은 문소전에서 태조를 제사할 때 쓰인 초헌악의 미칭이다. 1432년에 새로이 악장을 지어 당악 「중강령」의 선율에 얹어 불렀다. 악조는 황종청궁이며, 악장은 4자 8구로서 태조의 무용과 건국의 위업을 찬양하였다. 임진왜란 이후로 원묘제가 폐지됨에 따라 폐절될 위기에 처하였으나, 숙종 때부터 진연의 음악으로 연주되기 시작하여 잔치 음악으로 그 전승이 유지될 수 있었다. 잔치 음악으로 쓰인 「환환곡」은 기악곡으로 추정되나, 현재 이 곡은 연주되지 않고 있다.
「후인자」는 「봉래의」 정재에서 퇴장 음악으로 연주하던 기악곡이다. 죽간자를 든 기녀가 퇴장할 때 관현으로만 연주하였다. 세종대에 창제된 선초 속악 7음음계 기반의 곡으로, 『세종실록』에 악보가 전한다. 8음이 등장하며 12행 구조, 32정간 단위 박 체계를 가진다. 원래 「봉래의」의 반주음악이었으나 성종대 당악·향악의 악공 시험곡, 「연화대」 정재의 반주로도 활용되었다. 조선 전기 여러 당악정재에서 다양한 ‘인자’곡이 쓰였으나 대부분 악보가 전하지 않아, 현존하는 「전인자」·「후인자」는 당시 인자 음악을 파악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후인자 (後引子)
「후인자」는 「봉래의」 정재에서 퇴장 음악으로 연주하던 기악곡이다. 죽간자를 든 기녀가 퇴장할 때 관현으로만 연주하였다. 세종대에 창제된 선초 속악 7음음계 기반의 곡으로, 『세종실록』에 악보가 전한다. 8음이 등장하며 12행 구조, 32정간 단위 박 체계를 가진다. 원래 「봉래의」의 반주음악이었으나 성종대 당악·향악의 악공 시험곡, 「연화대」 정재의 반주로도 활용되었다. 조선 전기 여러 당악정재에서 다양한 ‘인자’곡이 쓰였으나 대부분 악보가 전하지 않아, 현존하는 「전인자」·「후인자」는 당시 인자 음악을 파악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휴안지악」은 조선 세종대에 처음 지어져 가례와 빈례에 연주되었던 아악곡이다. 1431년 예조에서 올린 회례의주에서 처음 정해졌으며, 가사는 4자6구로서 1자1음씩 총 24음으로 이루어졌다. 그 악보는 신제 조회아악의 ‘황종궁22’이며, 실제 연주에서는 행사가 있는 달의 월률(月律)이 적용되었기 때문에 황종궁22의 12궁 중 어느 한 궁으로 연주하였다. 세종 후기에 4종의 신악이 창제된 뒤로 조회아악이 자연 폐기됨에 따라 여타의 조회아악과 함께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되었다.
휴안지악 (休安之樂)
「휴안지악」은 조선 세종대에 처음 지어져 가례와 빈례에 연주되었던 아악곡이다. 1431년 예조에서 올린 회례의주에서 처음 정해졌으며, 가사는 4자6구로서 1자1음씩 총 24음으로 이루어졌다. 그 악보는 신제 조회아악의 ‘황종궁22’이며, 실제 연주에서는 행사가 있는 달의 월률(月律)이 적용되었기 때문에 황종궁22의 12궁 중 어느 한 궁으로 연주하였다. 세종 후기에 4종의 신악이 창제된 뒤로 조회아악이 자연 폐기됨에 따라 여타의 조회아악과 함께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