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2책. 석인본. 1932년 14대손 한표(漢杓)가 야사(野史)·읍지(邑誌), 다른 사람의 전기 등에서 저자의 유문을 모아 간행하였다. 권두에 13대손 순형(淳馨)이 쓴 서문, 권말에 14대손 한표·운표(運杓)와 12대손 종훈(鍾勛)이 쓴 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권1·2는 시 117수, 문(文) 5편, 권3은 부록으로 연보·유사·행장·신도비명·묘갈·묘지명·증정경부인고성이씨묘지명(贈貞敬夫人固城李氏墓誌銘)·산도후기(山圖後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는 1539년(중종 34)에 종사관이 되어 원접사(遠接使) 소세양(蘇世讓), 종사관(從事官) 박충원(朴忠元)·오희맹(吳希孟)·조사수(趙士秀) 등과 함께 중국 사신 화찰(華察)·설정총(薛廷寵)을 맞이하면서 지은 것들이다. 대개 중국 사신이나 원접사·종사관 등의 시에 차운(次韻)하여 지었는데, 원운(元韻)도 아울러 수록하고 저자를 밝혀 놓았다.
당시 사신을 맞이하면서 중국 사신과 주고받은 시를 모은 시집인 『황화집(皇華集)』과 원접사와 종사관들이 서로 주고받은 시를 모은 시집인 『동사집(東槎集)』에 수록된 시를 옮겨 놓은 것으로 보인다. 그 형식은 사언율시·칠언절구·오언율시 등으로 되어 있다.
문은 중종의 능인 정릉(靖陵)에 쓴 지문(誌文), 책문(策文)·묘갈제사(墓碣題辭)·묘갈명, 자손을 경계하기 위해 지은 글 등으로 되어 있다. 이 중 묘갈명은 홍문관 전한(典翰)을 지낸 친구 엄흔(嚴昕)의 것으로, 그의 문집 『십성당집(十省堂集)』에도 수록되어 있다.
부록으로 실린 유사는 노수신(盧守愼)의 문집인 『소재문집(蘇齋文集)』,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기타 역사 서적에서 저자에 관한 기록을 모은 것이며, 세주(細註)로 출전을 밝혔다. 행장·신도비명·묘지명 등은 아들 성민(聖民)이 지었고, 묘갈은 중기의 문신 이홍주(李弘胄)가 지었다.
조선 전기의 한문학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