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2책. 목활자본. 1901년 아들 인석(寅錫), 조카 승태(升泰)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장석룡(張錫龍)의 서문과 동생 준문(駿文)이 작성한 연보가 있고, 권말에 박영학(朴英鶴)의 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권1에 시 63수, 소(疏) 2편, 권2·3에 서(書) 50편, 서(序) 1편, 기(記) 6편, 잠(箴) 1편, 잡저 2편, 제문 3편, 권4는 부록으로 만장 33편, 제문 4편, 가장·행장·묘갈명·묘지명·실록 등이 수록되어 있다.
소의 「시폐소(時弊疏)」는 언관(言官)으로 있을 때 임금에게 올린 것으로, 국가의 모든 폐단은 안일하게 지내려는 습관에서 생겨나 차츰 기강이 문란해진다고 논술하고, 이어 군정(軍政)·전정(田政)·환정(還政)의 세 가지 정책에 대한 자기의 의견을 개진, 이를 개혁할 것을 촉구하였다.
「흥학소(興學疏)」 역시 간관 때에 올린 것으로 국가의 흥폐가 문교진흥의 존폐에 달려 있다고 전제하고, 옛날 중국의 요·순과 주(周)·진(秦)의 정치실례를 들어 논술하였으며, 이어 인재교육의 방책으로 교수선발제도의 개혁, 과목의 변경, 학규개정 등을 건의하였다.
서(書) 중에 재상 김도희(金道喜)에게 보낸 서한은 당시 과거제도의 폐습에 관한 문제점을 지적한 것으로, 심장적구(尋章摘句)하는 시문학은 경세지문(經世之文)이 아니므로 과거시험 과목에서 제외할 것을 강조하였다.
이밖에도 방백이나 승지 등과 주고받은 글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 당시의 정치·경제·사회문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