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 21.2㎝, 가로 29.0㎝. 1책 46면(23장).
목차 없이 ‘속악가사 상(俗樂歌詞 上)’ 아래 전반부에 악장이, 후반부에 악보가 배치되어 있다.
(1) 전반부는 종묘(宗廟) 악장 · 경모궁(景慕宮) 악장 · 무안왕묘(武安王廟) 악가(樂歌)로 구성되어 있다. 악장은 제례 절차 순으로 악곡명 아래에 한문과 한글 가사를 모두 썼다.
① 종묘 종묘 악장에는 용광정명(龍光貞明)의 ‘용(龍)’자를 ‘열(烈)’로 변경한 흔적이 선명하게 나타나며, 가사의 반 정도 분량에 일제강점기 때 사용한 노랫말을 첨지하여 수정한 이력이 명확하게 남아있다.
「영신 희문(迎神熙文)」 · 「전폐 희문(尊幣熙文)」 · 「진찬 풍안지악(進饌 豊安之樂)」 · 「초헌 희문(初獻 熙文) 보태평(保太平) 11성」 · 「기명(基命)」 · 「귀인(歸仁)」 · 「형가(亨嘉)」 · 「집녕(輯寧)」 · 「융화(隆化)」 · 「현미(顯美)」 · 「용광정명(龍光貞明)」 · 「중광(重光)」 · 「대유(大猷)」 · 「역성(繹成)」 · 「아헌 소무(亞獻 昭武) 정대업(定大業) 11성 종헌의동(終獻儀同)」 · 「독경(篤慶)」 · 「탁정(濯征)」 · 「선위(宣威)」 · 「신정(神定)」 · 「분웅(奮雄)」 · 「순응(順應)」 · 「총유(寵綏)」 · 「정세(靖世)」 · 「혁정(赫整)」 · 「영관(靈觀)」 · 「철변두 옹안지악(徹籩豆 雍安之樂)」 · 「송신 흥안지악(送神 興安之樂)」 순서로 기록되어 있다.
② 경모궁 악장 경모궁 악장은 1809년 남공철이 고친 가사를 수록하였으며, 악장의 끝에 남공철이 주3 기록을 남겨 놓았다.
「영신 어휴곡(迎神 於休曲) 계희운지악(啓熙運之樂)」 · 「전폐 제명곡(奠幣 齊明曲)」 · 「진찬 혁우곡(進饌 赫佑曲) 숙안지악(肅安之樂)」 · 「초헌 인입 제권곡(初獻 引入 帝眷曲)」 · 「초헌 진색곡(初獻 震索曲)」 · 「인출 유길곡(引出 維吉曲)」과 「아헌 인입 독경곡(亞獻 引入 篤慶曲) 보융은지악(報隆恩之樂) 종헌동(終獻同)」 · 「아헌 휴운곡(休運曲) 종헌동」 · 「인출 휘유곡(引出 徽柔曲)」 · 「철변두 유분곡(徹籩豆 有芬曲) 강안지악(康安之樂)」 · 「송신 아례곡(送神 我禮曲) 경안지악(景安之樂)」 순서로 기록되어 있다.
③ 어제(御製) 무안왕묘 악가 무안왕묘의 악가는 정조(正祖)가 지은 것이다.
「영신 왕재곡(迎神 王在曲)」 · 「전폐 힐향곡(奠幣 肹蠁曲)」 · 「송신 석하곡(送神 錫蝦曲)」 순서로 기록되어 있다.
⑵ 후반부는 종묘 영녕전(永寧殿) 제악보(祭樂譜) · 경모궁 제악보장 · 무안왕묘 제악보로 구성되어 있다. 악보는 제례 절차 순으로 악곡명 아래에 주4과 한문 가사, 가야금과 거문고의 주5 등으로 기록하였다. 반복 선율은 중복 게재하지 않았다.
① 종묘 영녕전 제악보
㉠ 경효전 악장 종묘 영녕전 제악보가 아닌 경효전 악장이 나온다. 경효전 악장 뒷부분 3장(6면)이 단절되어 있다고 한다.
「영신 희문 경천명지악(敬天命之樂)」 · 「전폐 희문 경천명지악」 · 「진찬 숭안지악」 · 「초헌 희문 경천명지악 인입」 · 「기명」 · 「역성 인출」 · 「독경」 · 「영관」 · 「소무 아헌 인입 광대숭지악」 · 「독경」 · 「영관 인출」 · 「소무 종헌 인입」 · 「독경」 · 「영관 인출」 · 「철변두」 · 「송신」 순서로 기록되어 있다.
㉡ 종묘 영녕전 제악보 거문고[玄琴]와 가야금(伽倻琴)의 격도지법(擊挑之法)이 붉은 점[此紅点]으로 표시되어 있고, 대금의 숨구멍이 표시되어 있다. 전반부 종묘 악장과 비교해서 「전폐 희문」 · 「초헌 희문」 · 「중광」 · 「종헌의 정대업 11성」, 「철변두 옹안지악」 · 「송신 흥안지악」 악보는 선행 악곡과 선율이 같아서 중복 게재하지 않았다.
「희문 영신장」 · 「기명」 · 「귀인」 · 「형가」 · 「집녕」 · 「융화」 · 「현미」 · 「용광정명」 · 「대유」 · 「역성」 · 「진찬」 · 「소무」 · 「독경」 · 「탁정」 · 「선위」 · 「신정」 · 「분웅」 · 「순응」 · 「총유」 · 「정세」 · 「혁정」 · 「영관」 순서로 기록되어 있다.
② 경모궁 제악보 전반부 경모궁 악장과 비교해서 「전폐 제명곡」 · 「초헌 제권곡」 · 「종헌 3곡」 · 「철변두 유분곡」 · 「송신 아례곡」 악보는 선행 악곡과 선율이 같아서 중복 게재하지 않았다. 「어휴곡 영신장」 · 「진색곡」 · 「유길곡」 · 「혁우곡」 · 「독경곡」 · 「휴운곡」 · 「휘유곡」 순서로 기록되어 있다.
③ 「낙양춘(洛陽春)」 · 「만(慢) 제1·2·3·4·5장」 경모궁 제악보 뒤에 가사 없이 「낙양춘」 미전사와 미후사 환입까지 기록하고, 「(여민락) 만」은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중 해동장(海東章), 근심장(根深章), 원원장(源遠章), 석주장(昔周章), 금아장(今我章)의 가사가 들어가 있다.
④ 무안왕묘 제악보 앞에 나오는 악보와 필체가 다르고 격도지법은 표시되어 있지 않다. 전반부의 정조가 지은 무안왕묘 악가와 비교해서 악보의 한문가사는 정조가 지은 원래 악장 위에 1902년 관제(關帝)로 격상된 후 서정순(徐正淳)이 새로 지은 악장으로 첨지한 것이다. 「초헌 힐향곡」 · 「아헌 힐향곡」 · 「종헌 힐향곡」 악보는 「전폐 힐향곡」과 선율이 같아서 중복 게재하지 않았다.
「왕재곡」 · 「힐향곡」 · 「석하곡」 · 「송신」 순서로 기록되어 있다.
무안왕묘 제악보 다음에 9장(18면)이 낙장되어 있는데, ‘속악원보 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악장요람』은 전반부가 『악장가사(樂章歌詞)』와 유사하고, 후반부가 『속악원보(俗樂源譜)』와 유사하여 이들 문헌과 함께 조선 후기 궁중 의례에서 사용된 제례악과 속악의 악장과 음악에 관한 연구를 가능케 한다. 또한, 악보에 표시된 거문고와 가야금의 격도지법을 통해 현재 종묘제례악과 「낙양춘」에 편성되지 않은 거문고 · 가야금의 연주법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악장요람』은 순조대 무동과 대금차비로 활약했던 김형식이 익힌 책보로, 이를 통해 주6들이 궁중 의례에서 노랫말과 선율을 연주하기 위해 이 책자를 활용했음을 알 수 있으며, 한글 가사를 나란히 써 정확한 발음과 가창이 가능하도록 한 점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