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은사 석조 여래 좌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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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영은사 석조여래좌상
담양 영은사 석조여래좌상
조각
유물
문화재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금현리(노채마을)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불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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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금현리(노채마을)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불좌상.
내용

전체 높이 26㎝, 불상 높이 160㎝. 1986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영은사는 금현리사지로 전하는데, 광주 댐 입구 동쪽에 있는 금현리 노채마을의 동쪽 구릉에 있다. 이 절은 1976년에 창건된 신흥 사찰이며, 대한 불교 법화종 소속이다.

대웅전 안에는 석불좌상이 대·중·소형으로 3구가 봉안되어 있다. 대형이 문화재로 지정된 불상이다. 이 불상은 예전부터 이곳에 노천불로 전해 왔다고 한다. 소형 석불은 주변 구릉에 있던 것을 옮겨 온 것이다.

대형 석불은 불신과 광배(光背 :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머리나 등의 뒤에 광명을 표현한 둥근 빛)가 1석으로 되어 있어 그 형식이 영암 도갑사 석조여래좌상(보물, 1963년 지정)과 비슷하다. 오랫동안 노천에 불신이 방치되었던 탓으로 각 부분의 형식이 뚜렷하지 못하다.

상호(相好 : 부처의 몸에 갖추어진 훌륭한 용모와 형상)는 원만상에 가까우며 소발(素髮 : 민머리)의 머리칼에 둥그렇고 높은 육계(肉髻 :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가 얹혀 있다.

이마에 백호(白毫 : 부처의 두 눈썹 사이에 있는 희고 빛나는 가는 터럭)를 끼웠던 구멍이 보이며 눈은 희미하며 잘 보이지 않고 콧날은 우뚝하다. 양쪽 귀는 짧은 편으로 어깨가 닿지 않으며 목에는 삼도가 있다.

법의(法衣 :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는 통견(通肩 : 어깨에 걸침)인데 어깨 부분에서 몇 줄기 선명하게 나타내다 밑으로 내려오면서 간략화하여 잘 보이지 않는다. 수인(手印)은 오른손을 무릎에 얹은 형태의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어깨선은 거의 직각을 이루고 있어 인근의 궁산리마애약사여래좌상과 광주쌍촌동극락암마애불좌상과 비교가 된다.

무릎 아래의 대좌 부분은 매몰되어 있어서 형식을 파악할 수 없다. 광배는 주형 거신광으로 원형의 두광(頭光 : 부처나 보살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이 1줄의 선으로 돋아져 있다. 그 주변에는 높이 16cm의 화불 7구를 역시 돋을새김하였다.

이 불상이 있던 절터는 기록이 없어서 알 수 없다. 불상의 조성 시기는 각 부분에서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많이 계승하고 있으면서 어깨선이 거의 직각이고 상호의 풍만감이 없으며 법의가 간소화되었다. 그래서 고려시대 전반기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호남(湖南)의 불교문화(佛敎文化)와 불교유적(佛敎遺蹟)』(최인선 외, 백산서당, 1998)
「주암(住岩)댐 수몰지구(水沒地區) 미술사분야(美術史分野) 조사보고(調査報告)」(정영호, 『주암댐 수몰지구 지표조사보고서』, 전남대학교박물관, 1985)
집필자
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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