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계월 ()

목차
관련 정보
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 송계월 전후면
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 송계월 전후면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잡지 『신여성』의 기자로 활동한 언론인. 항일운동가 · 소설가 · 평론가.
이칭
이칭
송적성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1911년 12월 10일
사망 연도
1933년 5월 31일
출생지
함경남도 북청
관련 사건
경성여자상업학교 동맹휴교| 1930년 서울여학생 만세운동
목차
정의
일제강점기 잡지 『신여성』의 기자로 활동한 언론인. 항일운동가 · 소설가 · 평론가.
생애

1911년 함경남도 북청군 신창에서 송치옥과 이순희 사이의 6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경성여자상업학교 시절인 1930년 서울여학생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졸업 후 『신여성』의 기자로 활동하면서 여성차별과 해방에 관한 많은 글을 썼다. 1933년 5월 31일 23세의 젊은 나이에 고향에서 장결핵(腸結核)으로 사망하였다.

활동사항
  1. 학생운동

송계월(宋桂月)은 어부이자 신창사회청년구락부 및 북청 노동연맹 회원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사상 방면의 책과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하였다. 신창공립보통학교 재학 시절에는 신창 지역 3·1만세운동을 주도하였던 은사 김용식의 영향을 받았다.

보통학교 졸업 후 열다섯 살에 "서울에 대한 동경심과 더 배우겠다는 향학열"로 상경하여 1927년 4월 경성여자상업학교에 입학하였다. 재학기간 중 교장의 친인척 교사 채용, 한국인 교사의 부당 해임, 학교 설비 미비라는 학교의 불법행위에 저항해 3차례 동맹휴교를 주도하였다. 이로 인해 서대문형무소에 두 번이나 구류되었다.

또한 1929년에 일어난 광주학생운동의 후발적 성격을 지닌 1930년 서울여학생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종로구 가회동 자신의 하숙집을 회합 장소로 제공하고, 대표자 회의를 통해 1930년 1월 15일 여학생 만세운동을 결의 및 결행하였다. 1930년 1월 31일 긴밀한 연락관계였던 근우회 서무부장 허정숙(許貞淑), 이화전문학교 이순옥,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최순옥 등과 함께 보안법 위반으로 검사국에 송치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2개월가량 투옥된 뒤 3월 22일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의 선고를 받고 3월 26일 출감하였다.

  1. 사회운동

1931년 2월 경성여상을 졸업한 뒤 2개월여 간 정자옥 백화점 점원으로 근무하면서 사회로 진출한 신여성들이 겪는 사회모순을 체험하였다. 1931년 4월에 개벽사의 기자 제의를 받고 잡지 『신여성』의 기자로 활동하면서 『혜성』, 『별건곤(別乾坤)』, 『어린이』 등의 개벽사 발간 잡지에도 글을 썼다. 첫 기사는 『신여성』 1931년 4월호에 송적성(宋赤城)이라는 필명으로 쓴 「내가 신여성이기 때문에」이다. 이 글에서 '진정한 신여성'이란 '개성의 자각과 사회의식을 가지고, 가정부인과 노동여성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에 공명하며 현실의 여성 차별 문제를 날카롭게 포착하는 기사를 썼다. 또한 「가두 연락의 첫날」, 「공장 소식」, 「젊은 어머니」, 「신창 바닷가」 등의 소설도 집필하였다.

송계월은 수감 생활 중 얻은 위병과 폐병을 치료하기 위해 신창 고향에 가서 요양하던 중 1932년 5월에 자신에 대한 악소문[demagogy]을 들었다. 송계월이 '처녀 출산'을 하였다는 가짜뉴스가 몸을 회복하고 서울에 돌아온 1932년 가을 이후에도 끊이지 않고 잡지 『여인』의 가십란에 실리면서 공론화되었다. 송계월은 소문의 생산자인 이갑기와 최정희의 실명을 드러내고 신여성을 조롱하는 '가십란'을 통해 이윤을 도모하는 황색 저널리즘을 비판하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였다. 이를 통해 저널리즘의 윤리적 책임을 제기하고 소문을 수사학이 아닌 정치학으로 쟁점화하였다.

참고문헌

『송계월 전집 1: 서사편』(진선영 편, 역락, 2013)
『송계월 전집 2: 담론편』(진선영 편, 역락, 2013)
「추문의 데마고기(Demagogy)화, 수사학에서 정치학으로」(진선영, 『여성문학연구』 30, 한국여성문학학회, 2013)
「어느 신여성의 경험이 말하는 것: 여기자 송계월」(박정애, 『여성과사회』 14, 한국여성연구소, 2002)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박정애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