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경행(景行), 호는 방호(方壺). 청송 출신. 아버지는 판서에 추증된 조지(趙址)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습독(習讀) 권회(權恢)의 딸이다. 재종숙인 조개(趙介)에게 입양되었으며, 김언기(金彦璣)의 문인이다.
임진왜란 때 중형인 조형도(趙亨道), 종형인 조준남(趙俊男) 등은 의병으로 나갔으나, 노친봉양 때문에 함께 나서지 못한 뜻을 시로 남겼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에는 고을 사람들과 함께 창의하고 사재를 털어 군수물자를 조달하였고, 1629년 행의(行義)로 천거되어 의영고주부(義盈庫主簿)가 되었으나 곧 사퇴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이 포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의거를 획책하였으나, 다시 화의가 성립됨을 전하여 듣고 그만두었다. 1664년(현종 5)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 이어 부호군이 되었다.
효성이 지극하여 선영 아래 풍수정(風樹亭)을 지어 늙도록 어버이를 사모하니, 이민성(李民成)·이준(李埈) 등 고을선비들이 시를 지어 한권의 책을 만들었다. 저서로는 『방호집(方壺集)』 5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