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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론(少論)

    조선시대사단체

     조선시대 붕당(朋黨)의 한 정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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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조선시대사
    유형
    단체
    성격
    정치단체
    시대
    조선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조선시대 붕당(朋黨)의 한 정파.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소론은 서인(西人)에서 분파되었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仁祖反正)을 계기로 정권을 잡은 서인은 반정 정사공신(靖社功臣) 김류(金瑬)를 중심으로 한 훈서(勳西, 또는 功西)와 반정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관망했던 김상헌(金尙憲)이 영도한 청서(淸西)로 양분되었다. 이후 훈서는 노서(老西), 청서는 소서(少西)로 각각 바뀌었다.
    양분된 서인 세력은 인조 말에 이르러 훈서파는 원두표(元斗杓)의 당인 원당(原黨)과 김자점(金自點)의 당인 낙당(洛黨)으로 분파되었다. 또 청서파도 사림의 청의(淸議)를 앞세우는 회덕(懷德)과 괴산(槐山)의 사류(士類)들이 중심이 되어 결합된 산당(山黨), 그리고 한성에 거주하면서 권세에 아부하는 세력을 중심으로 결합된 한당(漢黨)으로 분파되었다. 그러나 효종·현종 때에 산당 출신인 송시열(宋時烈)을 구심점으로 서인은 다시 일당으로 뭉치게 되었다. 소론은 이와 같이 규합된 서인에서 숙종 때 분파된 당파이다.
    분당의 계기는 1680년(숙종 6) 당시 남인인 영의정 허적(許積)의 유악남용 사건(油幄濫用事件)과 서인 김석주(金錫胄)·김익훈(金益勳)에 의해 고변된 허적의 서자 허견((許堅)의 역모 옥사로 남인이 대거 숙청된 이른바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 뒤, 정권을 잡은 서인 사이에 남인 숙청에 대한 의견상의 대립으로 분파되었다. 즉, 1682년(숙종 8) 노장파인 김익훈 등의 과격한 남인 탄압을 반대한 소장파 한태동(韓泰東) 등이 김익훈 등을 탄핵하는 소를 올려 발단이 되었다. 이에 송시열 등 노장파도 한태동의 상소를 반박해 소장파와 대립하게 되었다.
    이 대립은 송시열과 제자인 윤증(尹拯)의 개인적인 감정으로 더욱 격화하였다. 이에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노장파를 노론, 한태동을 중심으로 한 소장파를 소론이라 지칭하게 되었다. 이로써 남인·북인과 함께 사색붕당이 성립되었는데, 소론의 중심 인물은 [표]와 같다.
    [표] 소론에 소속된 중 심인물
    성 명생 몰 년학 통관 직
    김춘택(金春澤)북헌(北軒)1670∼1717  
    남구만(南九萬)낙천(藥泉)1629∼1711 영의정
    박세채(朴世采)현석(玄石)1631∼1695김상헌(金尙憲)좌의정
    박태보(朴泰輔)정재(定齋)1654∼1689 예조좌랑
    오도일(吳道一)서파(西坡)1645∼1703 병조판서
    윤증(尹拯)명재(明齋)1629∼1711 벼슬 사양
    윤지완(尹趾完)동산(東山)1635∼1718 우의정
    조지겸(趙持謙)우재(迂齋)1639∼1685 부제학
    최석정(崔錫鼎)명곡(明谷)1646∼1715남구만(南九萬)영의정
    한중혁(韓重爀) ?∼1697  
    한태동(韓泰東)시와(是窩)1646∼1687 교리
    이 무렵의 정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까지는 노론이 정권을 잡았다. 그 뒤 한때 남인이 득세했으나, 1694년(숙종 20) 갑술옥사(甲戌獄事)를 계기로 소론이 정권을 잡았다. 그 뒤 남인은 일선에서 물러나고 정국은 노론·소론에 의해 좌우되었다.
    경종·영조 때에는 노론·소론의 당세가 백중해 천하양분의 형국이었다. 즉, 경종·영조 때의 소론 출신 4대신이 이를 대변해 주고 있는데, 경종 때에는 유봉휘(柳鳳輝)·이광좌(李光佐)·조태구(趙泰耉)·최석항(崔錫恒)을 들 수 있다. 영조 때에는 유봉휘·이광좌·조태억(趙泰億)·최규서(崔奎瑞)를 들 수 있다.
    1762년(영조 38) 장헌세자(莊獻世子)주 01)의 폐위와 아사 사건을 계기로, 이를 동정하는 파와 영조의 처사를 옹호하는 파로 양분되었다. 전자를 시파(時派), 후자를 벽파(僻派)라고 했는데, 소론은 시파에 속하였다.
    시파·벽파의 대립은 결국 소론·노론의 대립으로 날이 갈수록 심화되었다. 영조 말에는 영조 즉위에 공이 많은 노론의 벽파가 우세했으나, 정조 때에는 장헌세자를 동정한 소론인 시파가 득세하였다. 그 뒤 순조 때에는 다시 벽파가 정권을 잡았다. 1801년(순조 1)의 신유박해(辛酉迫害)를 계기로 시파인 소론과 이에 동조한 남인 세력은 몰락하고 노론 독주시대가 조선 말기까지 지속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붕당론(朋黨論)

    • 당의통략(黨議通略)

    • 『이조당쟁사연구』(강주진,서울대학교출판부,1971)

    • 『韓國政爭志』(幣原坦,三省堂,1907)

    • 「조선시대 붕당론의 전개와 그 성격」(정만조,『조선후기 당쟁의 종합적 검토』,한국정신문화연구원,1992)

    • 「조선후기 노소론의 대립과 그 정론」(이은순,『조선후기 당쟁의 종합적 검토』,한국정신문화연구원,1992)

    • 「병자호란과 정치문화적 여파」(홍순창,『하성이선근박사고희기념한국학논총』 ,1974)

    • 「예송과 노소분당」(강주진,『아세아학보』 5,1968)

    • 「한국당쟁사」(성낙훈,『한국문화사대계』 Ⅱ,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1965)

    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思悼世子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홍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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