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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윤봉조의 시 · 소 · 서(書) · 기 등을 수록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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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윤봉조의 시 · 소 · 서(書) · 기 등을 수록한 시문집.
서지적 사항

22권 11책. 목판본. 서문과 발문이 없어 편집·간행 경위가 자세하지 않다. 규장각 도서·장서각 도서·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권1∼6에 시 690편 1,080여 수, 권7·8에 소(疏) 25편, 권9에 소(疏) 17편, 차(箚)·계(啓)·의(議) 각 1편, 권10·11에 서(書) 68편, 권12에 서(序) 23편, 권13에 기(記) 20편, 제발(題跋) 20편, 권14에 설(說) 1편, 잠(箴) 1편, 응제문(應製文) 17편, 상량문 2편, 권15에 잡저 1편, 권16에 잡저 2편, 제문 15편, 권17에 제문 8편, 축문 1편, 애사(哀辭) 3편, 비명 6편, 권18에 비명 4편, 묘갈 8편, 권19에 묘갈 13편, 권20에 묘지명 17편, 권21에 묘표 15편, 권22에 행장 5편, 시장(諡狀) 7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 실용문이 10권 가까이 차지하고 있어 저자의 사회적 위치를 가늠하게 한다. 특히, 정치 현장에서 실질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던 문서류 중 「위진사이덕보등소하제생재진변무소(爲進士李德普等疏下諸生再陳辨誣疏)」·「청문출죄인최석정원찬합계(請門黜罪人崔錫鼎遠竄合啓)」·「청전참의조태억삭탈관작계(請前參議趙泰億削奪官爵啓)」 등은 노론(老論)의 입장에서 소론(少論)의 비위 사실을 신랄하게 공격한 것이다.

저자의 상소문체는 당시에 이름 높았던 것으로, 성균관유생 시절부터 후대 고위 관직을 역임할 때까지 노론계의 당론을 대변하였다. 또한, 제문·축문·신도비명·행장 등도 노론계 정객이나 학자들과 연관된 것이 주종을 이룬다.

서(書)에서는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밝혔다. 「답한장령원진(答韓掌令元震)」에서는 심성론(心性論)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물은 호론(湖論)의 대표적 학자인 한원진에게 지나친 격론을 피하라고 권고하였다. 객기에 흐르고 승부에 집착해서 토론하는 양측에 모두 해롭게 되는 결과를 지적하고, 구체적인 철학적 쟁점을 밝히는 일은 사양하였다.

종제(從弟)인 윤봉구(尹鳳九)와 주고받은 편지는 모두 18편에 이르러 주목된다. 정엽(鄭曄)의 『근사록석의(近思錄釋疑)』에서 의심나는 부분에 대하여 원문을 열거하고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기도 하였다. 윤봉구는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의 일인으로 이름 높은 성리학자인 만큼 성리학에 대한 논의가 많다.

서(序)·기(記) 등에서는 그의 문장력을 엿볼 수 있다. 「송조사취명규왕근벽성서(送趙士聚明奎往覲碧城序)」에는 벽성의 적지(謫地)로 아버지를 찾아가는 젊은이에게 선비의 ‘특립자수(特立自守)’하는 도리를 면려하는 내용이 곡진하게 표현되었다. 「분충서난록서(奮忠紓難錄序)」에서는 사명당(四溟堂)이 임진왜란 때 승군(僧軍)을 조직하여 국난을 구제할 수 있었던 사상적 근거를 유가(儒家)의 입장에서 따지고 책의 성격을 밝히고 있다.

「탐라후풍기(耽羅候風記)」에서는 1728년(영조 4) 49세에 제주도로 유배되고 이듬해 육지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항해할 때 자연 조건에 절대 순응하면서 극히 조심하여 재난을 모면할 수 있었던 경험과 그로부터 터득한 관직에서의 처세법에 대한 감회를 기술하고 있다. 「미발설(未發說)」은 성리학에 대한 견해를 가장 적극적으로 개진한 글로, 저자의 주변 인물들이 주장했던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의 호론적(湖論的) 입장을 엿볼 수 있다.

「학역천견(學易淺見)」은 총 53장의 전문적인 학술서이다. 삭주(朔州)와 영도(瀛島: 제주도)에 유배되었을 때 역학(易學)을 연구한 결과, 특히 『계몽도설(啓蒙圖說)』 중 의심나는 곳의 문제점을 들어 견해를 밝혔다. 주희(朱熹)와 호방평(胡方平)의 견해를 비교하고 이황(李滉)의 『계몽전의(啓蒙傳疑)』 중의 도설을 참고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작업이다.

여기서 저본으로 거론된 『계몽도설』은 서명응(徐命膺)이 1772년(영조 48)에 주희의 『역학계몽(易學啓蒙)』을 부연하여 도해(圖解)했던 책일 수는 없다. 주희의 계통을 이은 송인(宋人) 호방평의 『역학계몽통석(易學啓蒙通釋)』과 관련된 것으로, 당시에 이미 유행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거론된 여러 서책과 함께 우리나라의 역학 연구사를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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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건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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