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연기설화는 불교의 전파와 교화를 위하여 사찰이나 암자와 관련된 내용으로 구성된 설화이다. 사찰·암자의 창시, 절터를 잡게 된 유래, 절의 명명 등에 관한 불교설화이다. 주로 불보살의 영험·이적, 불상 경문 및 고승 등에 관련된 내용이다. 『삼국유사』에는 64편의 사찰연기설화가 수록되어 있다. 이런 설화는 승려·신도들에 의하여 만들어진다. 해당 사찰의 신성화, 불교 사상의 생활화로 불교에 귀의케 하려는 목적이다. 하지만 민간에 전승되는 동안 종교적 색채가 옅어진다. 사찰연기설화는 문학적 상상력과 서사문학 발전에 기여하였다.
사찰이나 암자 등의 창시 유래나 절터를 잡게 된 유래, 절 이름의 명명(命名) 유래에 관한 불교설화이다. 주로 불보살(佛菩薩)의 영험 · 이적이나 불상경문(佛像經文) 및 고승 등에 관련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찰연기설화 · 불사창시설화라고도 한다. 대체로 문헌설화로 전해지고 있으나 구전설화도 많다.
문헌 자료는 대개 사찰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지(寺志) · 사적기(事蹟記) · 중수문(重修文) · 비명(碑銘) · 탑기(塔記) 등에 기록되거나 조각되어 전해진다. 『삼국유사』는 64편이나 되는 사찰연기설화를 수록하고 있어 중요한 자료집으로 평가된다. 구전설화나 문헌설화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보아 크게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사찰연기설화는 사찰 주변의 인물들인 승려 · 신도들에 의하여 만들어지는데, 이들은 구전되고 있는 기존의 민간설화나 불경, 기타 불교 문헌에 실린 설화를 차용하여 해당되는 사찰의 연기설화를 창출해 낸다. 설화 창작의 동기는 해당 사찰의 신성화를 통한 불교의 대중화, 불교 사상의 생활화로서 불타에 귀의하게 하려는 종교적 목적에서 이루어진다. 여기에 영험성과 신령성을 추구하는 민간 신앙적 사고도 크게 작용하게 된다.
설화 형성의 계기가 되는 것은 해당 사찰의 창건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다는 사실들이다. 예를 들어 사찰 창건의 사실을 예고해 주는 데 전조(前兆)가 되는 영이담(靈異譚), 사원의 터를 정하게 되는 사건에 관련된 신이담(神異譚), 사원의 명칭을 명명하게 된 유래담 등이 서로 어울려 하나의 사찰연기설화를 이루게 된다. 이 때 이야기를 하거나 듣는 향유층은 설화 내용을 과거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에 결부시킴으로써 해당 내용을 사실화하려고 한다. 이러한 단계를 거쳐 사찰연기설화는 구체적 사물인 사찰과 연결되면서 전설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
이와 같은 불교적 의도 아래, 사찰연기설화는 처음 부분과 끝 부분에 불사 창건과 관련된 사실을 첨부하는 형식의 틀을 만들어 어떤 민간설화라도 그 속에 대입시키면 액자화되면서 사찰연기설화로 바꾸어질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 구조는 사찰연기설화의 종류나 성격이 다양해질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우리 나라의 경우 불교가 처음 전래된 이래 삼국시대는 물론, 고려조 · 조선조를 통하여 수많은 사찰이 세워졌기 때문에 여기에 따르는 사찰연기설화도 대단히 많이 창작되었다. 그 결과 이 설화는 한국 불교설화의 중심을 이루게 되었다. 구전 또는 문헌으로 전해져 오는 사찰연기설화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우리 나라가 아득한 옛날부터의 불연지(佛緣地)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그 인연에 의한 창사의 계기를 말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서축(西竺)의 아육왕(阿育王)이 보낸 황금으로 절을 지었다는 동축사연기설화(東竺寺緣起說話), 과거 가섭불 시대(迦葉佛時代)의 절터였다는 사실에 입각하여 절을 지은 영취사(靈鷲寺)연기설화, 부처님의 가사(袈裟)를 씻는 불연지였기에 절을 세웠다는 만어사(萬魚寺)연기설화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 성물(聖物) 즉 불탑이나 불구(佛具) 등이 출현하거나 그 밖의 상서로운 조짐이 나타남으로써 절의 터가 마련되고, 절의 이름도 지어지는 경우이다. 무왕과 그 왕비가 행차하는데 연못 가운데에서 미륵 삼존(彌勒三尊)이 출현함을 보고 절을 세웠다는 미륵사(彌勒寺)연기설화, 경덕왕이 백률사(柏栗寺)에 행차하였을 때 땅속에서 돌부처를 캐내게 되었기 때문에 이름을 짓게 되었다는 굴불사(掘佛寺)연기설화, 사면에 여래불을 조각한 돌이 하늘에서 떨어졌으므로 그곳에 절을 지었다는 대승사(大乘寺)연기설화 등이 그것이다.
셋째, 불타의 힘을 빌려 국가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호국불교적 관점에서 이루어진 경우이다. 여기에는 문무왕이 왜병을 진압하고자 절을 지었다는 감은사(感恩寺)연기설화, 법사 명랑(明朗)의 지시에 따라 당나라의 군대를 진압하기 위하여 지어 효험을 보았다는 사천왕사(四天王寺)연기설화, 장춘랑(長春朗) · 파랑(罷朗)의 혼이 왕의 꿈에 나타나 부처의 힘으로 당나라 소정방(蘇定方)의 군대를 물리치게 해 달라고 소원을 청하였기에 창건되었다는 장의사(壯義寺)연기설화 등 진호국가적(鎭護國家的)인 주술적 설화가 이에 해당한다.
넷째, 초기 승려들의 순교시의 이적이나 고승들의 영험이적에 의하여 사찰이 건립되는 경우이다. 이차돈(異次頓)의 순교이적에 의하여 불교가 공인되고 그로써 불사를 세웠다는 자추사(刺楸寺)연기설화, 아도(阿道)가 성국공주(成國公主)의 병을 고치자 소원을 말하라는 왕에게 절을 세워 달라 하여 왕명으로 세웠다는 흥륜사(興輪寺)연기설화, 욱면(郁面)이라는 여인이 이적을 보임으로써 세워지게 되었다는 보리사(菩提寺)연기설화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다섯째, 국왕이나 일반 불교 신도들의 보시나 축원을 위한 재물 공여로 이루어지는 사찰에 관련된 설화의 경우이다. 여기에는 왕가의 복을 빌기 위하여 재물을 기부하고 사찰을 창건한 봉성사(奉聖寺)연기설화, 최유덕(崔有德)이라는 사람이 자기 집을 기증하여 절로 만들었다는 유덕사(有德寺)연기설화, 두 사람의 친구가 벼슬을 버리고 산에 들어가 중이 되어 절을 짓고 살았다는 단속사(斷俗寺)연기설화 등이 해당된다.
여섯째, 일반인의 효성과 선행이 계기가 되어 절이 이루어지는 경우이다. 여기에는 거사(居士) 신효(信孝)가 어머니의 육식을 마련하고자 자기 다리의 살을 베어 드렸고, 끝내 그의 집도 절로 하였다는 효가원(孝家院)연기설화, 김지성(金志誠)이 돌아가신 부모의 극락왕생을 위하여 지었다는 감산사(甘山寺)연기설화, 김대성(金大城)이 현세의 부모를 위하여 지었다는 불국사(佛國寺)연기설화 등이 해당된다.
사찰연기설화는 불교의 포교와 불교 사상의 이해라는 종교적 목적에서 생성, 전파되지만, 이것이 민간에 널리 전승되는 동안 종교적 색채는 탈락되어 가면서 한편으로는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확장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후대 서사문학의 발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또한, 사찰연기설화의 연기 부분이 삭제되면서 불교설화로서의 의미보다는 독자적 내용으로 전승되는 설화들도 많다. 예를 들면, 효행설화로서 전승되고 있는 홍효사 유래담인 손순매아(孫順埋兒)는 후대에 전승되고 있는 수많은 비슷한 종류의 효행설화를 형성하게 한 대표적인 예가 된다. 관음사(觀音寺)연기설화가 고전소설 「심청전」의 근원설화라는 사실도 특기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