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눌은 자신의 수행과 깨달음의 경험을 근거로 다양한 납자들을 교화해주는 방법으로 삼종의 수행문을 설정하였다. 성적등지문은 성성(惺惺)과 적적(寂寂)을 균등하게 닦아가는 수행문에 해당하는데, 지눌 자신이 『육조단경』을 읽고 경험한 상태가 근거가 되었다. 『육조단경』의 “ 진여의 자성이 일으키는 염(念)에 대해서 말하자면, 육근의 경우 비록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작용을 할지라도 그 온갖 경계에 물들지 않은 채 진성은 그대로 항상 자재하다.”는 대목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작용은 성성에 해당하고, 온갖 경계에 물들지 않은 채 진성은 그대로 항상 자재하다는 것은 적적에 해당한다.
일찍이 『육조단경』에서 주2은 수행을 의미하는 선정과 지혜를 의미하는 깨달음을 일체(一體)로 간주하는 정혜일체(定慧一體)를 제시하였다. 정과 혜는 각각 마음의 안정과 집중 그리고 마음의 자각과 깨달음에 해당한다. 혜능의 제자 하택신회(荷澤神會, 670~762)는 이것을 공적영지(空寂靈知)의 개념으로 전개하였다. 공적은 적적한 경지로서 몸으로 단정하게 앉는 행위이고, 영지는 성성한 경지로서 마음을 또렷하게 깨어 있는 상태로 유지하여 어떤 유혹에도 물들지 않는 것에 해당한다.
지눌은 신회의 공적영지의 공적과 적지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를 통해서 성성과 적적에 대하여 먼저 성성을 성취한 이후에 적적의 경지를 얻는다든가 먼저 적적을 성취한 이후에 성성의 경지를 얻는 것처럼 선후 내지 점차의 관계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지눌은 『권수정혜결사문』에서 “고요하게 반연을 잊고 올올하게 단좌하여 바깥 경계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을 거두어 안으로 비춰야 한다. 적적으로는 반연심을 다스리고, 성성으로는 혼침을 다스려야 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