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손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판의금부사, 우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갑자사화|기묘사화
  • 본관인동(仁同)
  • 사망 연도1534년(중종 29)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정언|홍문관응교|홍문관직제학|승정원우승지|전라도관찰사|이조참판|우참찬|호조판서|병조판서|판의금부사|우의정|영의정
  • 출생 연도1453년(단종 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병휴 (경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8월 25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판의금부사, 우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사호(士浩) 또는 자활(子活). 성주(星州) 출신. 장순효(張純孝)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장경원(張敬源)이고, 아버지는 군수 장중지(張重智)이며, 어머니는 고승안(高承顔)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85년(성종 16) 별시 문과에 급제한 뒤 정언 · 회령판관을 역임하고, 1496년(연산군 2) 홍문관에 들어와 부응교 · 응교를 지냈다.

1499년 사인(舍人)으로 춘추관편수관을 겸해 『성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듬해 홍문관의 직제학 · 부제학, 승정원동부승지 · 좌부승지 · 우승지를 거쳐 도승지에 오르고 곧 외직으로 전라도관찰사에 나갔다.

1504년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먼 지방에 부처(付處)되었다가 중종반정으로 풀려나 경상도관찰사에 보임되었으며, 이듬해 한성부좌윤이 되었다. 이어 대사헌정국공신(靖國功臣) 박영문(朴永文)의 불법을 탄핵하는 등 언론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듬해 이조참판 · 형조판서 · 우참찬을 거쳐 1509년(중종 4) 호조판서로서 경연특진관을 겸해 폐지된 저화(楮貨) 재사용을 주장했고, 좌참찬으로 군량확보책을 건의하기도 하였다.

1515년부터 호조판서 · 병조판서를 역임하면서 노모의 연로함을 들어 계속 사직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이에 대해 사신(史臣)은 그의 탐오(貪汚)와 회뢰(賄賂)로 공론이 비등하자, 거짓으로 사직을 요청했다고 비난하였다.

1518년 병조판서 역임 시 조광조(趙光祖)를 중심으로 하는 사림파현량과(賢良科) 실시에 반대했다가 이듬해 김안로(金安老)의 일파로서 사림을 축출하려 했다는 삼사의 탄핵으로 파면되었다.

기묘사화로 조광조 일파가 축출되자, 복직되어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를 역임한 뒤 다시 이조판서 · 판의금부사를 거쳐 판중추부사가 되었다. 이 때 나이 70으로 궤장(几杖)을 받기도 하였다. 이어 권신, 김안로가 정권을 장악하자, 그에 의해 우의정에 오르고, 좌의정을 거쳐 1533년 영의정에 올랐다가 이듬 해 죽었다.

사람됨이 용렬하였으며 김안로와 한편이 되어 재상이 되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모두 비루하게 여겼다고 한다.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참고문헌

  • - 『성종실록(成宗實錄)』

  •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 『중종실록(中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대동기문(大東奇聞)』

  • - 『전고대방(典故大方)』

주석

  • 주1

    : 벼슬아치에게 어느 곳을 지정하여 머물러 있게 하던 형벌. 우리말샘

  • 주2

    : 이조에 속한 종이품 벼슬. 이조 판서의 아래이다. 우리말샘

  • 주3

    : 조선 시대에 둔, 형조의 으뜸 벼슬. 품계는 정이품이다. 우리말샘

  • 주4

    : 조선 시대에, 호조에 속한 으뜸 벼슬. 품계는 정이품이다. 우리말샘

  • 주5

    : 조선 시대에 둔, 병조의 으뜸 벼슬. 품계는 정이품으로, 군사와 국방에 관한 일을 총괄하였다. 우리말샘

  • 주6

    : 욕심이 많고 하는 짓이 더러움. 우리말샘

  • 주7

    : 뇌물을 주고받음. 또는 그 뇌물. 우리말샘

  • 주8

    : 조선 시대에 둔, 의금부의 으뜸 벼슬. 품계는 종일품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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