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하급 관리를 채용하기 위해 실시한 시험.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조선시대 하급 관리를 채용하기 위해 실시한 시험이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와는 달리 과거제도 이외에도 모든 관원을 시험을 통해 선발하고자 했는데 취재가 바로 그것이다. 취재는 이조, 예조, 병조 등에서 시행되었다. 이조에서는 수령 · 지방 교관 · 역승 · 도승 지방 관리 취재, 음자제 취재, 서제 · 녹사 · 도류 · 서리 취재 등을 시행하였다. 예조에서는 전공이 있는 기술직을 담당할 사람을 취재하였는데, 이들은 해당 기술 아문의 체아직을 받았다. 병조에서도 능력이 탁월한 군인이나 군졸들을 취재로 선발하였다.

목차
정의
조선시대, 하급 관리를 채용하기 위해 실시한 시험.
내용

내용

취재에는 수령(守令) · 지방 교관 · 역승(驛丞) · 도승(渡丞) · 서제(書題) · 음자제(蔭子弟) · 녹사(錄事) · 도류(道流) · 서리(書吏) 를 선발하는 이조 취재(吏曹取才), 의학(醫學) · 한학(漢學) · 몽학(蒙學) · 왜학(倭學) · 여진학(女眞學) · 천문학 · 지리학 · 명과학(命課學) · 율학(律學) · 산학(算學)을 전공한 기술관(技術官)화원(畵員) · 도류 · 악생(樂生) · 악공(樂工)을 선발하는 예조 취재(禮曹取才), 내금위(內禁衛) · 별시위(別侍衛) · 친군위(親軍衛) · 갑사(甲士) 등 특수 군인과 인반 군졸을 선발하는 병조 취재가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과거만이 시험을 통한 유일한 입사로(入仕路)였으나, 조선시대에는 관원은 물론 서리(胥吏)까지도 시험을 통해 선발하게 되었다. 종래 무시험으로 선임되던 음서(蔭敍)도 시험을 보는 문음 취재(門蔭取才)로 바뀌었고, 서리들도 종래 무시험으로 선발되던 것이 이과 취재(吏科取才) 시험을 거쳐 선발하게 되었다. 그런데 뒤에 하급 서리를 선발하는 시험을 이전 취재(吏典取才)라 하고, 이과 취재는 상급 서리를 선발하는 시험만을 뜻하게 되었다. 이과 취재와 이전 취재는 세조 때 상급 서리가 녹사, 하급 서리가 서리(書吏)로 각각 일원화되면서 녹사 취재와 서리 취재(書吏取才)로 『경국대전』에 규정되었다.

이조 취재는 사서(四書)와 오경(五經) 중 일부, 『대명률(大明律)』 · 『경국대전』 중의 일부를 시험하는 강(講), 제술(製述) 및 서산(書算 : 조선 후기에는 書籌라 하였음.) 중에서 직임에 맞는 것을 시험하였다.

수령 취재의 경우 강서(講書)는 사서와 일경 및 『대명률』 · 『경국대전』을, 제술은 치민방략(治民方略)을 시험하였다.

지방 교관 취재의 경우는 매년 정월에 40세 이상자를 대상으로 하였는데, 강서 시험 과목은 사서와 삼경이었다. 단 문과 회시의 강서 시험에 합격한 사람이라면 시험을 보지 않고 임용하였다. 역승 · 도승 · 서제 취재의 경우는 강서는 『경국대전』을, 제술은 계본(啓本) · 첩정(牒呈) · 관(關 : 동등한 관청 사이에 조회(照會) 등을 위해 교환되던 문서) 중에서 하나를, 글쓰기와 계산하는 분야는 해서(楷書)와 행산(行算)을 시험하였다.

음자제 취재는 매년 정월에 공신 및 2품 이상의 아들 · 손자 · 사위 · 동생 · 조카( 원종공신인 경우에는 아들 · 손자만 해당됨)와 실직(實職) 3품관의 아들 · 손자 및 이조 · 병조 · 도총부 · 사헌부 · 사간원 · 홍문관의 관원과 부장(部將) · 선전관을 지낸 이의 아들로서 20세 이상된 자에게 응시 자격을 주며, 강서는 사서와 오경의 각 한 책씩 시험하였다.

녹사 취재의 경우 강서는 사서와 오경의 각 한 책과 『대명률』 · 『경국대전』을, 제술은 계본 · 첩정 · 관 중에서 하나를, 서산은 해서 · 언문(諺文) · 행산을 시험하였다. 도류 취재의 경우 강서는 사서 · 오경의 각 한 책을, 서산은 해서를 시험하였다.

서리 취재의 경우 서산인 해서와 행산만을 시험했다. 서리는 3년마다 제주도 · 평안도 · 함경도 연변의 각 고을은 제외한 여러 읍(邑)의 교생(校生) 가운데 나이가 많고 실력이 떨어지는 자를 도호부 이상에서는 2인, 군 이하에서는 1인씩 정해 뽑되 교생이 없을 경우에는 역(役)이 없는 평민으로 대치할 수 있었다.

예조 취재는 각 기술학의 전공자인 제학생도(諸學生徒), 잡과 합격자인 권지(權知), 전직 기술관 등을 대상으로 4계절의 첫 번째 달인 1월, 4월, 7월, 10월에 시험하였다. 시관은 예조와 전문 기술 관청의 제조였으며, 제조가 없는 경우는 해당 조(曹)의 당상관과 함께 하였다. 시험 과목은 각각의 전공 서적들을 시험하였다. 시험 방법은 강서, 사자(寫字), 역어(譯語), 그림, 계산 등 다양하였다. 강서 시험은 책을 보지 않고 암송하는 배강과 책을 펴놓고 하는 강론 등을 두루 사용하였다.

의관 취재는 의서 강서, 역관 취재는 강서, 사자, 역어, 천문학 취재는 강서, 그림, 지리학 취재는 강서, 명과학 취재는 강서, 율학 취재는 강서, 산학(算學)은 계산, 화원 취재는 그림, 도류 취재는 강서, 악공 취재는 당악 · 진찬악 · 청평악 등을 시험하였다. 예조 취재에 선발된 기술관은 해당 기술 아문의 녹관체아직(祿官遞兒職)이나 군직체아직(軍職遞兒職)을 받았으며, 차점자는 외직에 임명되었다.

병조 취재는 시취(試取)라고도 한다. 병조 취재 시험 과목은 기사(騎射) · 기창(騎槍) · 격구(擊毬) 등이 요구되었으며, 시험의 종류에 따라 목전(木箭) · 철전(鐵箭) · 편전(片箭) 등으로 구별하였으며, 사격 거리가 달랐다. 시험 시기는 부정기적으로 실시되었다. 특수 군인이나 일반 군졸로서 병조 취재에 합격한 자는 일정 기간 이상 복무한 뒤 하급 관원으로 서용될 자격을 얻었다.

변천

조선 전기 『경국대전』에 규정되었던 취재에 대한 규정은 조선 후기에는 변경된 부분들이 있다. 이조 취재의 경우 지방 교관, 도류, 음자제, 서리 등의 취재는 아예 폐지되었다. 일부 시험 과목의 폐지된 취재도 있었다. 수령 취재에서는 제술 시험을, 역승 · 도승 · 서제 취재에서는 글쓰기와 계산 등이 폐지되었다. 예조 취재에도 변화된 사항이 있었다. 시관 항목에서 예조 당상관이 유고였을 경우 해당 기술 관청의 제조가 예조의 낭관이 함께 시험을 보이고, 해당 기술 관청의 제조가 유고인 경우 예조 당상관과 해당 기술 관청의 낭관이 함께 시험 보이며 낭관이 없는 기술 관청이라면 예조 당상관과 낭관이 시험 보인다고 하였다. 의관 · 역관 취재 시험 과목은 조선 후기 잡과 시험 과목의 변화에 따라 과목들이 축소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경국대전(經國大典)』
『대전회통(大典會通)』

단행본

임용한, 『조선전기 관리등용제도 연구』(혜안, 2008)

논문

이성무, 「이조초기의 기술관과 그 지위」(『유홍렬박사화갑기념논총』, 1971)
한영우, 「조선초기상급관리성중관-성중관의 녹사로의 일원화과정-」(『동아문화』 10, 서울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 1971)
신해순, 「조선초기의 하급서리-이전-」(『사학연구』 35, 한국사학회, 1982)
나영훈, 「17-18세기 사복시 관직 운영의 실제와 참상관의 관로 -장서각 소장 "사복시선생안" 분석을 중심으로-」(『장서각』 38, 한국학중앙연구원, 2017)
나영훈, 「17-18세기 전생서의 관직 운영과 참하관의 관로」(『동양고전연구』 69, 동양고전학회, 2017)
관련 미디어 (2)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